그는 왜 이처럼 제 이름자주 바꾸며 살아갈까 살아서 제 뜻 다 펼치지 못해 죽어서라도 이름값을 하려는 걸까 헌 옷도 몸에 잘 맞으면 새롭게 보이는 법인데 칙칙한 마른 비늘보다 삼베옷이 더 좋은가 보다 맨몸으로 바다를 휘젖고 다니다가 어부의 손에 알몸을 내맡겨 옷 하나 입혀줄 땅 제 몸 거둔 구릉 위 바람과 눈에 번갈아 섞이다가 햇살을 꼬깃꼬깃 접어넣고 있구나...
길을 걸으면 쏟아지는 발소리 앞다투어 나를 붙들고 목덜미를 내민 차선이 달려들고 배기가스에 몰려다니던 바람이 비틀댄다 교차로에 멈춘 생각 종종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서둘러 떠나고 낯선 세상은 언제나 나의 오른편에 서서 익숙한 왼쪽을 기웃거린다 어둠 속에서 치솟는 눈 밖의 세상 내려 비치는 햇살에 날개 접었던 꿈들이 브레이크를 뿌리치며 나아간다 도로는...
껴안을 줄 알고 있다
쓰러져 가는 하늘 저편, 흘러가는 강 위로 또 다른 강이 놓여 나, 서 있는 쪽으로 세월은 역류하여 버리고 온 발자국을 움켜쥔 채, 해묵은 다짐들 닦아내고 있는 둑방길 출렁거리는 강물 안에서 별들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다 내 안에 밀려드는 어둠 속으로 별빛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길영효 시집 ‘바람아, 너는 나를 밟고 가벼울 수 있는가’중에서)
다리는 물에 빠지지 않는다
다리는 물위에 누워 시간과 시간사이
멀고 가까운 인연을 꿰고 있다
매일 똑 같은 얼굴로 마주보며
체념은 강이 되고 그 물결 따라 노를 저으며
홀로
몸을 눕혀 사랑한다
바람이 슬며시 지나고
사람들의 눈길도 넘쳐 흐르면
물은 옆으로 비껴서서
길을 내어주고
언제나 홀로 남아도
다리는
밤낮을 두근거리며 있다
다리 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