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촌 이내 혈족, 6촌 이내 인척’으로 규정된 근친혼 관련 법률 완화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무부가 가족 간 혼인을 금지하는 법률을 개정하기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헌법재판소가 2022년 ‘8촌 이내 혼인을 무효로 한다’라는 민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아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헌재는 “가까운 혈족 사이 혼인은 혈족 내 서열이나 영향력의 작용을 통해 개인의 자유롭고 진실한 혼인 의사를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초래하는 경우가 있고, 근친혼의 가능성은 혈족 사이에 성적 갈등·착취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6촌 사이인 A 씨와 배우자는 미국에서 결혼해 수년간 살다 국내로 들어왔다. 귀국 후 합의 이혼에 실패하자 배우자는 두...
클레오파트라는 당대 근친혼으로 이복동생과 혼인했지만 로마제국을 점령한 카이사르와 연을 맺었다. 아들까지 낳았지만 정부로 전락, 이후 세력을 키운 로마의 안토니우스를 자신의 남자로 만들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도와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을 치렀지만 패배하고 말았다. 클레오파트라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당시 신라 왕실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근친혼의 관행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용수는 폐위당한 진지왕의 아들이었다. 진지왕의 폐위 후 진평왕이 왕이 되었으므로 용수는 자칫하면 정적(政敵)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용수는 진평왕 대에 오히려 내성사신(內省私臣)으로 최측근에서 활동을 하였다. 또한 선덕왕대에도 지방 순찰을 다니고, 황룡사 9층탑 건립을...
고귀한 신분의 왕족들이, 동화 속 공주와 왕자에 대한 상상을 무참히 파괴할 정도로, 불쌍할 만큼 기형으로 태어난 것은 근친결혼이 원인이다. 1273년부터 1918년 1차 대전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이 해체될 때까지 750년 가까이, 영국과 프랑스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는 정치 안정, 왕권 세습, 세력 증강, 혈통 유지를 위해...
고려의 공주들은 거의 100%에 가깝게 근친혼을 하였다. 즉, 공주들의 결혼 상대는 대개 왕실내(王室內)의 남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궁인의 몸을 빌려 태어난 왕의 딸들은 일반 관인(官人)의 자제와 혼인하였다. 그리고 그녀와 혼인한 사람을 ‘나라의 사위’ 또는 ‘국왕의 사위’라는 의미로 ‘국서(國壻)’라고 불렀다.
고려 고종대(高宗代) 뛰어난 재판관으로 후대에 널리...
강종의 아버지인 명종도 인종과 공예태후의 아들이므로, 원덕태후와 강종의 혼인은 사촌간의 근친혼(近親婚)이라 하겠다.
강종은 1170년 최충헌(崔忠獻)이 의종을 폐위하고 옹립한 명종의 맏아들이다. 1173년 태자에 책봉되었는데, 무신란의 주역이었던 이의방(李義方)이 1174년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넣었다. 이 여성이 사평왕후(思平王后)로, 같은 해 이의방이...
신라에서 왕실 여성들은 대부분 근친혼을 하였는데, 왕녀인 명원부인 역시 왕실 전통에 따라 외삼촌과 혼인을 한 것이다. 여자형제로 미추(味鄒)이사금과 혼인을 한 광명부인이 있다.
남편 석우로는 대장군에 임명되었고, 각간으로 승진하여 군사 업무를 총괄하였다. 우로는 전쟁터에서 손수 불을 피워 부하들을 위로하여 존경을 받았으며,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난을...
현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근친혼을 거듭했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 혼인에는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그녀의 의사가 강력히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981년 경종이 돌잡이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뜨면서 성종이 왕위를 계승했다. 성종은 경종의 매부이자 광종의 사위였기 때문이다. 2년 뒤 그녀가 죽자 성종은...
한국은 법률상 근친혼이나 중혼과 달리 동성혼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이밖에도 유럽국가 중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일랜드는 지난 5월 동성혼 합법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그 결과, (동성혼에 대해) 찬성이 반대보다 46만 7307표 앞서 동성혼이 공식 합법화된 바 있다.
이는 결과론적으로 볼 때, 사회적 소수에 대한 관용과 평등 보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