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을 살아서 건너온 모든 사람들, 양계장의 닭들, 축사의 소 돼지들, 동물원의 백두산 호랑이와 북극곰들에게 나는 다 같은 중생으로서 동지애를 느낀다. 그리고 노동현장과 쪽방에서 더위를 이기지 못해 돌아가신 분들에게 애도를 보낸다. 아, 저 악몽의 여름. 내 작업실은 오피스텔 맨 꼭대기 층인데 천장이 펄펄 끓어서 방 안은 생선 굽는 오븐처럼 뜨거웠다....
고해중생을 피안으로 건너게 해주는 불법이 보벌이다. 이백의 ‘춘일귀산기맹호연(春日歸山寄孟浩然)’시에도 보벌이 나온다. 그는 맹호연보다 12세나 적었지만 벗처럼 형처럼 잘 지냈고, 시도 여러 편 써 보냈다.
“관직을 세상에 버려두고/청산에서 부처님 설법을 만나네/엄숙히 깨달음의 길 열어/부처님 뗏목으로 미혹의 내를 건넌다/고개 위 나무는 절 기둥에 모이고...
아 아승지(阿僧祗) 전세겁(前世劫)에 닦아 오신 원력으로 고해중생 건지시려 이 세상에 나오셨네.”
고해중생에게는 어떤 고(苦)가 있나. 우선 생명이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생(生)노(老)병(病)사(死)가 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이다. 몇 년 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나는 이제 생노병은 다 거쳤고, 사만 남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이 네 가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