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 두 섬이 현(울진)의 정동 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두 섬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1900년 10월 25일, 고종 칙령 제41호는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명확히 규정했습니다.
우리나라 자료는 물론 일본의 고지도, 문헌 등에서도 독도는 ‘조선의 땅’으로...
고종실록 28권에도 "광화문에 나아가 왕세자가 쌀을 하사하는 행사 거행"이라고 쓰여 있다.
이처럼 월대는 궁궐과 백성을 연결해주는 위민(爲民)의 성격도 있다. '쌀을 나누어줌'이라는 뜻의 사미(賜米)와 더불어 임금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는 공간이 바로 월대였다.
문화재청은 복원 과정 중이던 지난 8월에 월대 어도(임금이 다니는 길)의 가장 앞부분을...
◇1454년: 세종실록 지리지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 지리지는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
◇1625년: 다케시마(竹島, 울릉도) 도해 면허일본 막부가 돗토리번에 살고 있는 오야·무라카와 양가에 다케시마(竹島, 울릉도) 도해를 면허함.
◇1693년: 안용복 일본 납치안용복, 박어둔 두 사람이 울릉도에서 어업을 하다가 일본 선원들에게...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상직현은 고종 재위 시절 활동한 무관이다. 주로 국왕 호위와 궁궐 및 도성 방어를 담당했던 군관 등의 관직에 임명됐는데, 당시 국왕의 신변 보호를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문화재청은 6월 공개한 ‘독서당계회도’와 7월 공개한 어보 보관함 ‘보록’ 등 해외 문화재 환수에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에...
“새 조약의 주지로 말하면, 독립(獨立)이라는 칭호가 바뀌지 않았고 제국(帝國)이라는 명칭도 그대로이며 종사는 안전하고 황실(皇室)은 존엄한데, 다만 외교에 대한 한 가지 문제만 잠깐 이웃 나라에 맡겼으니 우리나라가 부강해지면 도로 찾을 날이 있을 것입니다.”
100여 년 전인 1905년, 고종실록에 기록된 이완용의 말과 중첩되어 보인다면 우연일까.
명성황후의 행적을 기록한 대표적 역사서인 ‘고종실록’과 ‘매천야록’의 내용이 너무 다르다. 물론 ‘정사’와 ‘야사’라는 입장 차이를 고려할 수 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매천야록’에는 그녀가 연일 연회를 베푸느라 국고를 탕진한 것으로 돼 있으나, ‘고종실록’에는 사치와 관련된 어떤 언급도 없다. 거기에 두 역사서의 신뢰성에도...
바로 그 전해에 엄비를 잃은 고종에게 왕녀의 탄생은 큰 기쁨이었다. 산모 양씨에게 복녕당(福寧堂)이라는 당호를 내리고, 다음 날 산실에 아기를 보러 갔다, 실록은 왕녀 탄생이 이토록 환영받은 전례가 없다고 적었다.
덕혜옹주는 서녀(庶女)라는 이유로 일제의 제지에 의해 왕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다가 여섯 살이 되어서야 황적에 입적됐다. 열세 살 때는 일제의...
그가 고종이다. 아버지 3년상을 마치고도 말이 없던 고종은 긴 침묵 끝에 현자 열(說)을 발탁해 그의 도움으로 선정을 폈다. 왕이 침묵하고 있을 때 신하들이 이렇게 말했다. “사물을 잘 아는 것을 명철하다 하며 명철해야만 비로소 규범을 만들 수 있습니다.”[知之曰明哲 明哲實作則] 그런데 왕이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다는 것이다. 열은 곧 부열(傅說)이다.
시경에는...
고려시대에도 부채를 내려준 기록이 있는데, 조선 고종 31년(1894) 9월 3일 군국기무처가 폐지를 건의할 때까지 이 풍속이 지속됐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8년 4월 28일에 중국 사신 백언(白彦)이 단오사선 풍속에 관해 묻고 명나라에서는 그런 풍속이 있다며 은근히 부채를 요구했다. 이에 세종이 공조(工曹)에 명해 둥글부채 10자루, 쥘부채 88자루를 만들어 주게 했다....
고종실록 1년(1864)에 “3월 30일(그때는 이날이 입하였나 보다) 경오일 신시 3각에 입하에 대한 개화를 올릴 때 종묘서 사직서 영희전 영녕전 효문전 경모궁 육상궁 선희전 경호궁 경수궁에는 전례대로 개화하고, 규장각 의정부 승정원 한성부에는 똑같이 불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왕이 알았다고 전교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렇게 중시했던...
문화재청은 그동안 환수문화재의 보존관리를 위해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대한제국 고종 황제어새’ 등 23건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환수문화재 국보 지정 추진 소식에 누리꾼들은 “환수문화재 국보 지정 추진,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일”, “환수문화재 국보 지정 추진, 지금이라도 돼서 다행”, “환수문화재 국보 지정 추진, 외규장각...
1897년 고종이 청과의 종속관계를 청산하며 완전한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하면서 정한 국호는 대한제국이다. 우리나라 역사에 ‘이조’란 나라가 없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아무런 성찰 없이 조선을 ‘이조’로 쓰고 말한다면 이는 곧 스스로 역사를 전면 부정하는 ‘자학사관’으로 추락하고 만다. 따라서 ‘이조백자’는 ‘조선백자’로, ‘이조실록’...
독경을 통해 액을 내쫓다는 의미다.
또한 '고종실록'에도 왕실이 액을 내쫓는 의식에 대해 언급돼 있다. 병에 걸린 고종 임금은 치료 목적으로 푸닥거리를 벌이자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고종 8년 11월 25일자(1872년 1월 5일)에 실린 내용이다. 조정 대신들은 이 같은 고종의 태도를 평가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