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성 앞으로 관리된 1200억 원은 견훤이 후백제 일으킨 시점부터 연봉 1억씩 모아야 벌어지는 돈.”, “이순신 장군이 태어났을 때부터 연봉 2억4000만 원을 한 푼도 안 쓰고 지금까지 모아야 할 돈.”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의 중심에 선 화천대유, 관계사 천화동인의 배당금, 로비 정황이 쏟아지면서 700억 원 약정설, 실탄 350억 원 로비 자금 등 막대한...
후백제 견훤의 침공 등으로 나라를 보전하기 힘들어진 경순왕은 935년 태조 왕건에게 편지를 보내 항복 의사를 밝혔다. 그해 12월 경순왕이 신하들을 이끌고 개경에 도착하니 왕건은 크게 환영하며 낙랑공주와 혼인시켰다. 동시에 태조 자신도 경순왕의 백부 김억렴의 딸(태조의 제5비인 신성왕태후 김씨)과 혼인하여 이중으로 혼인 관계를 맺었다.
망국의 임금 부인이...
또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는 고려에 귀순한 뒤 딸 하나를 태조의 비(동산원부인)로, 또 다른 딸 두 명은 정종의 비(문공왕후, 문성왕후)로 바쳤다.
김행파와 달리 박영규는 후백제의 왕실 출신이었다. 그런데 왕규가 세 딸을 모두 비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가 박영규와 맞먹을 정도의 실력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막강한 힘을 가졌던 왕규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는...
정종은 견훤의 사위 박영규의 딸(문공왕후, 문성왕후), 청주 호족(남원부인)과, 광종은 황주황보씨(대목왕후), 혜종의 딸(경화궁부인)과 혼인했다. 넷째 아들 문원대왕 왕정은 정주유씨(문혜왕후)와 혼인했고, 다섯째 아들은 승려이다. 둘째 딸 흥방공주도 정주유씨 원장태자와 혼인했다. 즉, 태후는 신라와 후백제, 고려 왕실, 그리고 태조의 제1비와 6비를 배출한 정주유씨...
장화왕후는 태조에게 나주라는 지역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견훤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하였다. 또 그녀 집안의 경제력은 고려의 후삼국 통일에 중요한 재원이 되었다. 그녀는 고려의 건국을 연 또 한 명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나주시에는 장화왕후와 태조가 만났다는 샘인 완사천(전라남도 기념물 제93호)이 전해오고 있다.
삼국사기는 후백제의 시조 견훤이 900년 이후 936년까지 37년간 전주에 도읍을 정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헌 기록이나 고고학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동고산성 일대를 후백제 도읍으로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전주시는 2013년부터 후백제 유적지인 동고산성 성곽과 회랑도, 왕궁 등을 복원하는 사업을 실시하고...
‘태조왕건’은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김영철), 그의 심복이었다가 고려를 건국하게 되는 왕건(최수종),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서인석) 등 3인의 활약상을 그렸다.
이 밖에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명장 이순신의 일대기를 그린 ‘불멸의 이순신’(2004), 고구려 후기부터 멸망까지 연개소문의 생애를 그린...
동의보감 ‘허준’, 삼국기 ‘김유신’, 태조왕건 ‘견훤’, 무인시대 ‘이의방’ 등 이미 숱한 사극에서 굵직한 배역을 맡으며 사극의 지존으로 불린 그지만 최영 장군으로 돌아온 서인석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다. 당대 최고 용장이자 권력에는 담을 쌓고 오로지 왕과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강직한 무임으로 돌아온 서인석. 백발 노장군의 하늘을 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