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지도부가 보수적인 분위기로 흐르자 1992년 초 덩샤오핑이 상하이와 선전, 주하이 등 경제특구를 돌면서 경제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역설한 남순강화를 펼친 덕분이다.
후진타오 현 국가 주석도 지난 2003년 주석 자리에 오른 해 경제성장률이 10%에 이르렀다.
올해 중국은 정부가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바오바(保八)’정책을 포기했다....
올 들어 차기 상무위원으로 유력시됐던 보시라이 충칭시 전 당서기가 낙마하는 등 중국은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가장 치열한 권력투쟁을 겪는 등 권력 교체를 앞두고 정치권이 불안한 상태다.
후진타오 국가 주석을 필두로 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이 공산당 원로들의 자제인 태자당 인사인 보시라이의 축출을 주도하면서 공청단과 태자당, 장쩌민 전 주석이...
그러나 일각에서는 리 부장이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학생들에게 온정적이었다는 점과 당내 민주화 추진으로 당 원로들의 눈 밖에 났다고 지적했다.
현재 차기 주석으로 오를 시 부주석과 원자바오 총리의 뒤를 이을 리커창 부총리 외에 다른 상무위원의 보직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명경신문망은 전했다.
공산당은 이달 말 정치국 전체 회의를 열고 나머지...
보시라이 당서기의 실각 사태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시위 이후 중국 내 최대 정치 스캔들로 평가됐다.
이와 맞물려 그의 아내에 대한 재판이 열리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전직 당서기이자 공산당 정치국원의 부인이 외국인 살해 혐의로 재판을 받는다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구카이라이에 대한 재판이 일방적으로 흘러갈...
현재 중국의 국영 언론들은 톈안먼 사태에 대해 일절 언급하고 있지 않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일 정례브리핑에서 일각의 톈안먼 시위 재평가 주장에 대해 이미 명확한 결론이 내려져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애초 톈안먼 사태를 반혁명 소요사태로 규정했다.
명확한 결론이 났다는 것은 사태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하다는 중국 정부의 생각을...
중국 톈안먼 운동의 지도자 왕단이 보시라이 사태가 중국 내 대중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왕단은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혼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며 “중국 지도부가 이 사건을 계기로 내부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전했다고 타이베이타임스가 27일...
미국이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진행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 대사관에 도피했던 반체제 물리학자인 팡리즈를 13개월간 보호했다가 안전하게 미국으로 망명시켰던 전례가 있었다.
미국은 천광청과 관련 팡리즈 사태와 같은 인내심과 끈기로 인권보호국으로서 위상을 높일 기회를 스스로 버린 셈이다.
특히 세대교체를 앞두고 중국 최고지도부 내 권력투쟁을 촉발하는 등 보시라이 사건은 중국 정계에 톈안먼 사태 이후 가장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보시라이의 최측근이며 ‘범죄와의 전쟁’을 주도해 인기를 얻었던 왕리쥔 전 충칭시 부시장이 지난 2월6일(현지시간) 청두 소재 미국 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하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왕리쥔은 지난 2일 충칭시...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도 두 자릿 수에 달했던 물가상승률과 경기둔화가 주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제성장률 8%가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는 인식 하에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한 4조위안(약 709조원) 규모의 대규모 부양책을 펼쳤다.
성장에만 치중해 안팎의 소리를 무시하다간 자칫 1976년과 1989년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서방국과의 관계를 단절시켰던 톈안먼 사태의 21세기판이 재현될 것이란 우려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차례의 톈안먼 사태는 중국의 체제와 양극화에 대한 학생권의 반란이 대중으로 확산하면서 수 만명의 사상자를 냈고, 미국이 이를 강경 보수파의 권력 장악 및...
실제로 1976년과 1989년 유혈 사태로 세계를 분노케 한 톈안먼사태 이후 잠잠했던 서민들 사이에 최근 심상치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난해부터 농촌서 도시로 생계비를 벌러 나온 농민공들의 시위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의 재스민 혁명 열기가 전해지면서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났다.
최근...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비팀장을 역임한 데 이어 2009년에는 톈안먼 사태 20주년 대비팀장 등을 맡았고, 2010년 5월 김정일 방중 당시에는 후 주석의 오른 팔 역할을 했다.
시 부주석은 타이즈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신중한 성격과 됨됨이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는 시 부주석의 이같은 점을 경계하고 있다. 서방...
홍콩에서는 이달 초 톈안먼 사태 22주년을 맞아 수만명이 참석해 희생자를 기리고 중국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원자바오 총리는 지난 27일 “중국의 부패와 불공정한 소득분배 등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등 공산당...
최근 수개월에 걸쳐 정부와 사회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의 시위가 잇따르면서 제2의 톈안먼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중국 광둥성에서 발생한 농민공 시위가 정부의 강력한 진압에 수그러들었으나 이들의 정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여전해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광둥성 쩡청시...
톈안먼 사태 발발 22주년을 맞아 홍콩에서 중국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대규모 촛불 시위가 열렸다.
홍콩 빅토리아 파크에서 4일(현지시간) 시위 관계자 추산 15만명이 참가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홍콩 경찰 추산으로는 7만7000명이 참가했다.
빅토리아 파크에 모인 시위자들은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며 지난 1989년 톈안먼...
지난 1989년 톈안먼 사태 당시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8%가 넘어 시위를 촉발시켰던 것도 중국 당국이 이번 사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중국 정부는 휘발유와 디젤 가격을 통제하고 있으나 올해 들어 국제원유 가격이 20% 오르면서 휘발유, 디젤 가격은 10% 상승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물가모니터링센터의 쉬롄중 소장은 “2분기 소비자물가...
톈안먼 사태는 후진타오가 중국의 최고권력자로 등극하는 수순이 됐다.
사태는 무력으로 진압됐고 상하이방을 대표하는 장쩌민이 총서기 자리에 올랐다.
장쩌민은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을 맡으면서 당과 정부의 전권을 장악했다.
중국의 개혁을 주도한 덩샤오핑은 상하이방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후진타오를 차차기 지도자로 지명하게 된다.
마침내...
중국 당국이 톈안먼 사태를 군화발로 짓밟은 후에는 진상조사 요구를 하다가 형극을 길을 가게 된다.
톈안먼 사태가 발생한 이틀후인 6월 6일 중국 공안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류샤오보는 강단에서 쫓겨나는 공직박탈 조치를 당하고서 작가의 길로 들어서 중국 민주화운동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그 때부터 중국 공안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