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충청대망론을 한 껏 높이며 대선주자로 나섰던 고(故)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인제 전 의원, 안희정 전 충남지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등은 모두 최종 승자는 되지 못했다.
윤 후보는 이어 재경광주전남향우회 주최 초청간담회에 참석해 “제게 호남은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라며 “제가 대통령이 되면 절대 호남...
101일 전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20.4%)가 이회창 후보(30.2%)에 밀렸지만, 정몽준 후보와 극적으로 단일화를 이루면서 이 후보를 2.3%포인트(P) 차로 따돌리고 당선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는 이 같은 ‘대세론’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체로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오차범위 안팎...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대통령 퇴임 후의 마음고생을 토로하며)
△ “국민이 믿을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해야지.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거짓말하고 그러면 안 되지” (2000.3.10 김대중 정권에게)
△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달빛정책이라도 내놓으면서 비판해야 한다”(2001.9.26. 한광옥(韓光玉) 민주당 대표의...
수돗물 보급률이 10% 정도밖에 안 된 시절에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셨다는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그랬고, 고시원을 방문한 뒤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는 정몽준 전 서울시장 후보가 그랬다.
이번 20대 대선에서도 어김없이 가난을 ‘무기’로 들고나온 후보가 있다. 자신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웹툰으로 알리고, 부유했던 타 후보의 어린 시절 사진과 자신의...
16대 대선 때도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가 48.9%,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46.6%로 거의 절반씩 나눠 가졌다. 14대와 15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거대 양당이 팽팽하게 맞설수록 중도층의 표심은 중요하다. 중도층의 표심이 어디로 가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 때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8대 대선 때...
만일 이회창 후보가 됐으면 IMF (외환)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서 감방 갔을 것”이라며 “(민주당 경선후보) 정세균 전 국무총리의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암시의 결론은 이재명이 되면 문재인 대통령은 불행해진다는 거고 그 불행의 끝은 감방 간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정 전 총리는 같은 날 민주당 세종·충북 경선에서 “이대로라면 대선 승리는 쉽지...
이어 "이회창 총재가 그랬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다.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고 오직 나만 따르라고 명령했다. 구성원간의 자유로운 소통을 차단하고 민주적인 당 운영을 무너뜨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지금 이 대표는 성공의 기억과 권력에 도취해 있다"며 "이 대표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대선 후보들을 올려놓고, 자신이 기획 연출한 예능...
이 대표는 또 "후보들이 중심이 되려면 이회창 총재가 실패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이 총재 중심으로 선거 치르던 게 '후보 중심 선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공정한 경쟁의 틀을 만드는 것이 후보 중심 선거"라며 "전당대회 때 룰 관련해서 이야기 한마디도 안 하고, 당에서 오라는 이벤트 하나도 안 빠지고...
김종필·이회창·고건·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고배를 마셨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도 출마 선언 3주 만에 대권 도전을 포기했다.
경기도지사가 대권에 도전하면 반드시 낙선한다는 ‘경기도지사 징크스’도 이에 해당된다. 1997년 이인제 전 지사, 2007년 손학규 전 지사가 대권 도전에 실패하며 정설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두사람은 그 이후에도 여러번 대권에...
청와대 관계자는 최 원장의 사퇴와 관련해 "문민정부 이후 감사원장의 현황을 보면 15대 이회창, 21대 김황식 두 감사원장은 국무총리 지명으로 중도사퇴했다. 그리고 16대 이시훈, 18대 이종남, 19대 전윤철, 23대 황찬현 원장은 임기 만료로 물러나신 것"이라면서 "황찬현 원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되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계속하다가...
특히 송영길 대표는 "이회창씨 같은 경우에 김영삼(YS) 정부에 의해서 감사원장·총리로 발탁됐고 YS를 배신하고 나와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도 언급했다.
그는 윤석열 전 총장을 겨냥해 “수사하고 사람 잡아넣는 일로 평생을 살아온 분이 대통령이 되시겠다(고 한다)”며 “대통령은 국민을 주권자로 모신다. 국민은 지켜야 할...
앞서 1999년에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충남 예산군 조상 묘에서 쇠막대기가 잇따라 발견됐는데, 이 총재 친척과 지역 주민들은 “(이 총재의) 1997년 대선 출마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설에 무게가 실렸다.
한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은 10여 년 전 전북 완주·충남 공주·논산에 산재해 있던 조상 묘를 세종시로 한꺼번에 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9룡'(龍)의 한 명으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으나 결국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를 지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출범한 김대중 정부에서는 김종필 박태준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총리직을 맡았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1998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공수처의 필요성은 20여 년 동안 제기됐다.
공수처는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ㆍ기소권ㆍ공소유지권을 가져와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고 독립성을 높이는 것이 골자다. 이 같은 내용의 공수처 설치안은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공수처 출범은...
이회창의 신한국당은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통합민주당과 합당하면서 간판을 한나라당으로 바꿨다. 한나라당은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약 15년간 유지됐다. 민주화 이후 ‘최장수 당명’인 한나라당을 2012년 새누리당으로 교체한 것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새누리당은 5년 뒤 탄핵과 함께 사라졌다. 탄핵풍은 보수당의 궤멸로 이어졌다. 새누리당이 3년 새...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제기되며 곤경에 빠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7년 외환 위기로 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접어들자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97년 11월 민주당과 합당해 새롭게 ‘한나라당’을 창당하게 된다. 신한국당은 1년 9개월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많은 잡음과 삐걱거림 속에서 통합당은 국민의당으로 새롭게...
지상욱 후보는 2002년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그림자수행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지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서울 중·성동갑을 지역구 유권자로부터 선택을 받아 의정 활동을 수행한 바 있다.
한편 '암벽 여제'로 잘 알려진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김자인은 오영환 경기 의정부갑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회의원 남편을 두게 됐다.
오영환...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오후 8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공수처 설치는 2002년부터 이미 이회창, 노무현 후보가 함께 공약했던 사안"이라며 "권력형 비리를 막을 수 있는 특별 사정기구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공수처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윤 총장의 행보는 26년 전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총재를 떠올리게 한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법조인이란 공통점이 있다. 이 전 총재는 1960년 판사로 임용된 후 1989년 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장 겸직)을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이 전 총재는 판사 시절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각종 계엄법 위반 사건에...
이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1998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표도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2012년에도 한나라당 여러 의원이 공수처법을 발의했고 2016년 새누리당 대표로 뽑힌 당 대표도 역시 공수처 설치를 찬성했었다”며 “자신들도 오랫동안 추진해왔던 것을 이제 와서 반대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