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때 충남 서산시 음암면 유계리 경주김씨 김한량(金漢良·1700~1752)과 혼인하여 29세에 요절하기까지 서산의 여성으로 살았다. 청취당의 7년 동안의 혼인생활은 182수의 한시로 남아 ‘청취당집(淸翠堂集)’으로 엮였다. ‘청취당집’은 1803년에 외손 박종규(朴宗圭)에 의해 편찬되었는데, 청취당 사후 70여 년 만의 일이다.
청취당의 남편 김한량은 관직에 나아가기를...
신격호가 일본에서 사업 기반을 다지는 사이, 첫 번째 부인인 노씨는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고 한다.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 서미경씨도 빼놓을 수 없다. ‘롯데의 별당마님’으로 불리는 서미경씨는 제1회 미스롯데(1977) 출신으로 영화 배우로 활동하다 돌연 자취를 감췄다. 그러다가 37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신격호의 세 번째 부인으로 깜짝 등장해...
NRG 故 김환성의 사망 원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환성은 1997년 NRG 1집 앨범 'New Radiancy Group'으로 데뷔했으며, '할 수 있어' '티파니에서 아침을'등의 곡이 인기를 끌며 꽃미남 아이돌로 입지를 굳혔다.
김환성과 NRG 멤버들은 1세대 아이돌로서 중국 한류 붐을 이끈 NRG는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김환성은 2000년 6월...
추정화와 이해성 두 연출가는 어두운 시대에 떠밀려 요절한 두 실존 인물의 비극을 뒤집었다. “한 번만 더 날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라고 마지막 대사를 외치며 비상과 초월의 에너지를 내뿜는다. 관객들은 눈시울을 적시고 ‘이상’과 ‘김상옥’을 실체화하며 스스로의 삶을 추스른다. 두 연출가는 그것이 공연이 지닌 판타지의 힘임을...
이날 방송에서 성현아는 돌아가신 엄마와 요절한 여동생의 묘소를 방문했다. 이후 성현아는 묘소 근처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가수 문주란을 만났다.
문주란은 성현아와 비슷한 삶을 겪었다. 그는 "현아 씨 사건을 보고 참 가슴이 아팠다. 같은 연예인 동료로써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왜나하면 참 억울한 소리도 많고, 많이 다치기도 한다....
사망 원인은 급성심정지로 천재 음악가의 요절 소식이 음악계가 비탄에 빠지기도 했다.
故 권혁주는 한국 음악영재의 1세대로, 3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6세에는 음악저널 콩쿠르에서 최연소 대상을 차지하며 바이올린 신동으로 불렸다. 11세에 러시아 유학길에 오른 그는 러시아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특히 19세이던 2004년에는 세계적으로...
40세 미만에 요절했다고 하는데 죽음을 앞두고 “곡하지 말고 상여가 나갈 때에는 북이나 음악으로 인도해 달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다.
참으로 사람은 가고 없으나 그 자유정신은 역사의 물결을 타고 도도히 흘러 우리 곁으로 왔다. 삶과 죽음 모두 기꺼이 받아들인 그녀의 자유의지가 현재 각박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예종이 즉위한 지 14개월 만에 요절하자 소혜왕후의 둘째 아들(성종)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소혜왕후가 왕실로 되돌아오기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자세한 기록이 없다. 다만 예종의 아들을 제치고 본인 아들을 보위에 앉혔다는 결과 자체가 그 어떤 기록 못지않게 그녀의 야망과 정치적 역량을 말해준다.
궁으로 돌아온 소혜왕후는 가족들의 명복과 안위를...
사령운에게는 사혜련(謝惠連 397~433)이라는 요절(夭折)한 종제(從弟)가 있었는데, 사혜련이 남긴 대표작이 바로 눈을 노래한 설부(雪賦)다.
중국 역사상 눈을 노래한 문학작품 중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 글은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쳐 잔설부(殘雪賦), 의고설부(擬古雪賦), 신설부(新雪賦) 등의 작품으로 이어진다. 사혜련의 글 중에서 밤새 하얗게 내린 눈과, 이 눈이...
결국 그는 폐병으로 34세에 요절했다.
박에스터의 둘째 언니 신마리아는 정신여학교 교사, 넷째 동생인 김배세는 세브란스 부속 간호학교 1회 졸업생으로 간호사, 그의 딸인 신의경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로 가족이 한국 여성의 귀감이 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31세에 요절한 박원희(1897~1928)는 충남 대전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투쟁적이었다. 학교에 안 보내주는 어머니에 맞서 단식투쟁 끝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철원보통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1920년 김사국과 결혼, 다시 일본에서 유학하며 어렵사리 공부하였다.
간도에서 청년교양운동 교사로 운동가로 헌신하다 귀국 후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매창은 서른여덟에 요절했는데 죽은 뒤 13년이 지나 시집 ‘매창집’이 출판되었다. 시집 발문에는 “수백 편의 시가 있어 한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더니 지금은 거의 흩어져 없어졌다. 1668년 10월에 아전들이 외우며 전하던 여러 형태의 시 58수를 얻어 개암사에서 목판에 새긴다”고 기록돼 있다. 이런 측면에서 매창은 기녀로서 분명 특수한 지점에 위치한다.
이정후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또 다른 아역배우 출신이자 요절한 배우 이애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애정은 지난 2007년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1987년생인 이애정은 KBS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송혜교의 아역이었던 문근영과 더불어 한채영의 아역으로 출연하며 주목받았다.
이후 드라마 '점프'와 MBC '주몽' 등에 출연하며 아역 때부터 다져온 탄탄한...
아역 출신 이정후가 요절했다. 향년 32세.
13일 TV 리포트에 따르면, 이정후는 암으로 투병 중에 숨졌으며 12일 발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1984년생(프로필상 1986년생)인 이정후는 1989년 MBC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김희애의 딸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MBC 드라마 '야망'에서 인형 같은 외모로 주목받았으며, '장희빈' '굿바이 솔로' '태조왕건...
동치제와 광서제 모두 서태후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다가 요절했다.
청나라는 동치제 시절 30년간 자강 운동인 양무운동을 펼쳤으나 청일전쟁의 패배로 무위로 돌아갔다. 특히 서태후는 청일전쟁 패배의 원흉으로 꼽히고 있다. 군함 살 돈을 횡령해 자신의 정원인 이화원을 건설했다는 얘기가 아직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물론 실제로 횡령했는지 여부는 지금껏...
또 일본의 경우 1만엔 권에는 계몽 사상가로서 게이오 대학을 설립한 후쿠자와 유기치, 5000엔 권에는 감수성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24세로 요절한 여류소설가 히구치 이치요의 초상화가 들어 있다.
그리고 중국의 5 위안화에는 중국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오쩌뚱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다.
우리나라 은행권에는 건국 이후 지금까지 이승만...
그런데 그 녀석이 4년 전 극진한 간호와 간절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종합병원적 지병으로 요절’한 뒤부터는 개고기를 딱 끊었다. 지금도 가끔 그놈이 생각나면 책을 물어뜯어 찢었다고 예배당 종 치듯이, 오뉴월 개 패듯이 팬 걸 후회하곤 한다. 보고 싶다.
전에 어떻게 먹었나 싶을 정도로 개고기를 봐도 식욕이 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고기 먹는 사람들을...
‘상록수’를 영화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단행본 간행에 힘을 쏟다가 1936년 장티푸스에 걸려 35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타계한 지 80년이 되는 올해, 그의 일상과 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필경사에 시비가 세워졌다. 필경사 앞에는 그의 유품과 친필 원고, 집필 책상 등 자취도 확인할 수 있는 심훈기념관이 있다.
이렇게 한국문학의 ‘청년문학’으로서의 면모를 강화하고 부추긴 것은 단연 작가들의 요절이었다. 천재는 요절한다더니 한국문학의 구성원들이 꼭 그 꼴이었다. 나도향, 이상, 김유정, 윤동주, 기형도 등은 서른을 못 채우고 돌아갔고, 김소월, 박용철, 이효석, 오장환, 김환태, 박인환, 신동엽 등도 한창 때인 30대에 숨을 거두었다. 비교적 완결성 있는 문학 생애를 남긴...
불과 두 달 뒤 그가 몰던 차가 버스와 충돌해 사망했다.
28세로 요절했지만 빅토르 최가 남긴 영향은 아직도 막대하다.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 곳곳에 그를 기리는 벽이 세워져 있다. 쇼트트랙의 안현수 선수는 러시아로 귀화했을 때 그의 이름을 따 빅토르 안으로 개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