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왕태후 류씨(明懿王太后 柳氏: ?~1112)는 고려 제15대 숙종의 왕비이다. 본관은 정주(貞州·황해북도 개풍군)이며, 아버지는 유홍(柳洪), 어머니는 경주 김씨 김원황(金元晃)의 딸이다.
1077년 무렵에 문종의 셋째 왕자인 왕옹(숙종)과 혼인하여 명복궁주(明福宮主)라고 불렸다. 1083년 문종이 사망하고, 문종의 장자인 순종이 즉위하였다. 다시 3개월 뒤 순종이 세상을...
선종에게는 왕비가 세 명 있었는데, 셋 다 이자연의 손녀이다. 또한 시어머니라 할 수 있는 문종의 왕비 세 명은 모두 이자연의 딸로서 사숙태후의 고모들이다. 즉 사숙태후는 인주 이씨의 번성이 한창이던 시절 왕비가 되었다 할 수 있다. 자식은 1남 2녀로 헌종과 일찍 죽은 딸, 그리고 수안택주(遂安宅主)가 있다.
태후는 선종이 왕자(국원공·國原公)였던 시절에...
김은부는 공주절도사 출신으로 거란의 침입으로 남하한 현종을 보필한 공을 인정받아 딸 셋을 왕비로 들인 바 있다.
태후는 처음 궁에 들어가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렸으며, 1047년 맏아들 왕훈(순종)을 낳고, 1049년 둘째아들 왕운(선종)을 낳은 뒤 1052년 왕비로 책봉되었다. 1054년 장남이 태자로 책봉되면서 그녀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졌다. 이후 그녀는 숙종...
재혼녀가 왕비가 되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조선시대 영조는 과부와 혼인할 수 없어 66세에 15세의 정순왕후와 혼인하지 않았던가! 이는 고려와 조선의 성에 대한 관념 차이를 명백히 보여준다.
당시 왕궁에는 성종의 누이인 천추태후의 아들 왕송(뒤에 목종)도 있었다. 981년 성종 즉위 시 왕송은 우리 나이로 두 살이었고, 선정왕후의 나이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둘이...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굴되기 전까지는 신라의 선화공주가 백제 무왕의 왕비이고, 미륵사를 창건하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왔다.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와 백제 서동의 혼인 일화는 ‘서동요’라는 향가로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전해져 왔던 것이다. 그런데 ‘금제사리봉안기’가 발굴되면서 무왕의 비이자 미륵사 창건에 기여한 인물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성씨의 변경은 고려시대 왕비들에게 일상사였다. 고려 왕실은 다처제였고, 그중 최소한 1명 이상을 종실에서 택했으므로 동성 왕비가 많았다. 이들은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성씨를 칭해 동성혼이 아닌 것처럼 하였다. 이는 단순히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제 그 성씨집단의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대목왕후의 남편이었던 광종은 호족세력을 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경덕왕의 왕비는 김순정(金順貞)의 딸 삼모부인(三毛夫人)이었으나 아들이 없어 출궁되고, 743년(경덕왕 2) 4월에 만월부인이 후비로 입궁하였다. 그러나 만월부인 역시 쉽게 아들을 낳지 못했다. 입궁한 지 15년 만인 758년(경덕왕 17)에 겨우 아들을 낳았다. 신라 제36대 혜공왕이다.
765년(경덕왕 24) 6월 경덕왕이 세상을 떠나자 혜공왕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즉위 당시...
알영은 혁거세와 혼인하여 왕비가 된 뒤에는 혁거세가 6부를 돌며 위무할 때 동행하여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도록 권장하여 토지의 이로움을 다 얻게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혁거세는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고 7일 후에 몸뚱이가 땅에 흩어져 떨어졌으며, 왕후인 알영 역시 세상을 떠났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서...
그런데 왕비도 투기를 하였지만 관나부인만 처벌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관노부가 왕비의 출신인 연나부에 비해 세력이 약했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연나부는 명림답부의 쿠데타 이후로 고구려에서 강력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고국천왕 이후 지속적으로 왕비를 배출하였으며, 중천왕대에도 연나부 출신으로 여겨지는 명림어수가 254년(중천왕 7년)까지 국상으로...
열여덟 살에 혼인해 서른여섯에 왕비가 된 원경왕후는 18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남편의 성공을 본인의 성공이라 여기며 살아온 세월이었다. 원경왕후가 왕비가 된 이후의 행적을 보면 태종과 의논하지 않은 일들이 종종 있다. 그리고 이 일들이 국왕 권위에 도전한 ‘사건’으로 비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 일들로 왕비 자리에서 쫓겨날...
그녀는 자신의 친손녀 두 명(헌애왕태후, 헌정왕후)을 경종의 왕비로 들였다. 또 친손주(성종)는 경종의 누이(문덕왕후)와 혼인시켰다. 현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근친혼을 거듭했는데,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권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이 혼인에는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이었던 그녀의 의사가 강력히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981년 경종이 돌잡이...
장화왕후(생몰년 미상) 오씨는 고려 태조의 두 번째 왕비이자, 고려 제2대 왕 혜종의 어머니이다. 고향은 나주의 목포(현재의 나주시 영산동 소재 영산포)이며, 할아버지는 부돈(富伅), 아버지는 다련군(多憐君)이다.
태조와 장화왕후의 만남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태봉국의 수군 장군으로 목포에 내려온 왕건이 무지개를 좇아갔더니 시냇가에서 왕후가 빨래를 하고...
신라 최고의 귀족 가문
삼모부인(三毛夫人)은 신라 제 35대 경덕왕의 첫 왕비였다. 삼모부인이 왕비가 되었던 것은 집안의 배경이 남달랐던 덕분이다. 아버지는 김순정(金順貞)으로, 신라 제2관등인 이찬(伊飡)이었다. 김순정은 일본에까지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성덕왕 25년(726년)에 사망하자 일본에서 애도하는 글과 직물을 부의로 보낼 정도였다. 삼모부인의 어머니에...
27일 ‘도깨비’ 측에 따르면, 김소현과 김민재는 극 초반 담기는 사극 부분에서 각각 왕비와 왕으로 깜짝 등장할 예정이다. 도깨비 김신 역의 공유와 운명적으로 얽히고설키게 되는 중요한 인물들이다.
김소현은 '도깨비' 측을 통해 “이응복 감독님과의 인연으로 ‘도깨비’에 출연하게 됐다. 좋은 배우 분들과 스태프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선시대의 왕실 잔치인 진연은 왕과 신하 중심의 외진연, 왕비와 대왕대비 등 여성 중심의 내진연으로 이원화해 치르고 밤에는 야진연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세자가 베푸는 잔치도 함께한다. 당연히 준비할 게 많았다. 먼저 잔치를 주관하는 특별 관청을 설치한다. 이 관청이 바로 진연청이다. 당시 진연청의 책임자로는 요즘으로 치면 부총리에 해당하는 의정부...
황 총리는 싸란 짜른쑤완 태국 대사에게 “푸미폰 국왕의 서거에 대해 시리킷 왕비와 유가족, 태국 국민에게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한다”며 “태국 국민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한 푸미폰 국왕의 유지를 받들어 계속 발전과 안정을 이뤄나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는 이어 “지난 9일∼11일 아시아협력대화(ACD) 제2차 정상회의 참석차 태국을...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녀는 당시 프랑스 패션을 선도했다.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은 프티 트리아농 궁에서 파티나 가면무도회를 열어 사교에 몰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호사(豪奢)는 당시 프랑스 왕실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오히려 다른 왕비에 비하면 그녀가 쓴 돈은 많은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치의 여왕으로 낙인 찍혀 재정을 파탄 낸...
우선 명성황후 사진의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왕비로서의 그녀의 행적에 대한 정확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다. 명성황후의 행적을 기록한 대표적 역사서인 ‘고종실록’과 ‘매천야록’의 내용이 너무 다르다. 물론 ‘정사’와 ‘야사’라는 입장 차이를 고려할 수 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예를 들어 ‘매천야록’에는 그녀가 연일 연회를...
‘태양왕’으로 불린 루이 14세는 루이 13세와 안 도트리슈 왕비가 결혼 23년 만에 낳아 태어나자마자 ‘신의 선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루이 13세가 사망했을 때 겨우 다섯 살로, 1643년 왕위에 올랐다.
고전주의 예술을 꽃피운 루이 14세는 열다섯 살 때 ‘밤의 발레’에 아폴로 역으로 출연, ‘태양왕’의 호칭을 얻기도 했다. 루이 14세는 마자랭의 후임으로...
여기서 말하는 가족이란 일왕의 가족들, 특히 왕비와 세자 부부 그리고 손녀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자신이 중태에 빠진 후에 벌어지는 행사의 연속으로 자신의 가족들이 처할 어려움을 우려했다. 특히 고령인 왕비에 대한 배려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의 미치코(美智子) 왕비는 역사상 처음으로 왕족이 아닌 일반인 중에서 아키히토가 직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