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건국 신화에는 혁거세의 왕비가 알영(閼英)으로 나타나는데 혈연적으로 아로의 친어머니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제2대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과는 남매간이다. 한편 남해차차웅의 왕비는 아루부인(阿婁夫人)으로 나타난다. 아로는 이 아루부인과 같은 인물이면서도 남해차차웅과 남매 관계에 있다고 하였던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로는 왕의 딸로 태어나 왕의 누이...
KBS 2TV 수목드라마 '추리의 여왕' 후속작 '7일의 왕비'에서 배우 박민영, 이동건, 연우진이 주연으로 활약하게 된다.
'7일의 왕비'는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인 단 7일간 왕비의 자리에 있다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를 둘러싼 중종과 연산군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사극이다.
박민영은 단경왕후 역을 맡아 이동건과 연우진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게...
그런데 12대 점해(沾解)이사금 시기에 왜국 사신 갈나고(葛那古)를 접대하는 자리에서 “너희 나라 왕을 소금 굽는 노비로 삼고, 왕비를 밥 짓는 여자로 삼겠다”고 희롱하였다. 이것이 일본과 외교문제를 일으켰다. 왜왕이 이를 듣고 노하여, 장군 우도주군(于道朱君)을 보내 신라를 침입한 것이다. 조분이사금까지 전쟁에 나설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그때...
해당 사진을 본 팬들은 “아무렇게나 입어도 예뻐요”, “미소가 진짜 백만 불짜리!”, “드라마에서도 얼른 보고 싶어요!” 등 무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박민영은 지난 1일 방송된 tvN ‘내 귀에 캔티2’에서 배우 이준기의 캔디 ‘바니바니’로 활약했다. 박민영은 KBS2 새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 연우진과 호흡을 맞춘다.
광개토태왕비의 글씨체는 중국의 어느 비석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자체이자 서체이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질박하면서도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다. 같은 시기 중국에서 유행한 글씨와는 판이하다. 의도적인 장식성이 전혀 없이 그저 편안하게 썼는데도 그 안에 무한히 깊은 매력이 깃들어 있다.
겉으로 볼 때는 조선의 토종 소나무인 홍송(紅松)의 힘차게 뻗은...
15세가 되던 1638년(인조 16) 왕비로 책봉되어 가례를 올렸다. 인조의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가 1635년(인조 13) 42세라는 나이에 출산하다가 숨지자, 1637년(인조 15)부터 계비 간택이 논의되었다. 대신들은 인열왕후의 상기(喪期)가 끝난 데다 백성들에게 국모가 없어서는 안 된다며 대례를 하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인조는 청 황제에게 치욕스럽게 항복하고, 왕세자와...
조선 제14대 선조의 왕비이다. 성은 박씨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번성부원군 박응순(朴應順)이며, 어머니는 전주 이씨 이수갑(李壽甲)의 딸이다. 박응순은 인성왕후와 10촌 관계이다. 슬하에 자녀는 없다.
15세가 되던 1569년(선조 2) 12월 왕비에 책봉되어 가례를 행했다. 몸이 허약해서 오랫동안 앓는 바람에 결국 아이를 낳지 못했다. 자신이 국왕의 서손(庶孫)...
배우 박강현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진행된 연극 '나쁜자석' 프레스콜에서 멋진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같은 극의 자석처럼 서로 밀어낼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그려낸 연극 '나쁜자석'은 오는 5월 28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공연된다.
조선 제13대 명종의 왕비이다. 성은 심(沈)씨이며 본관은 청송이다. 아버지는 청릉부원군 심강(沈鋼), 어머니는 전주 이씨 이대(李薱)의 딸이다. 슬하의 1남이 순회세자(順懷世子, 1551∼1563)이다.
1532년(중종 27) 5월 심강의 맏딸로 태어나 11세에 두 살 아래인 경원대군의 부인이 되었다. 1545년(인종 1) 7월 인종이 승하하고 동생인 경원대군(명종)이 즉위함으로써...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 任氏, 1109~1183)는 고려 인종의 제3비로, 1126년 인종이 이모였던 두 왕비와 이혼하고 맞이하였다. 본관은 정안(전남 장흥)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 어머니는 수주(樹州, 인천시 부평) 이씨로 문하시중 이위의 딸이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외할아버지는 꿈에 황색 깃발을 집의 문에 세웠는데 깃발 꼬리가 궁궐 치미를 싸고돌며 휘날리는...
이자겸은 다른 성씨가 왕비가 되면 자신의 권세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무리하게 이 혼인을 성사시켰다. 왕은 왜 이 결정을 받아들였으며, 조정 신료들은 무엇을 했는가? 사정이 있기는 했다.
예종이 사망했을 때 인종은 14세였고, 삼촌이 6명이나 있었다. 그간 고려 왕실에서는 형제가 왕위를 계승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 왕위가 인종에게 가지 않을 수도...
예종의 부왕인 숙종은 인주 이씨에게 세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고자 정주 유씨 출신인 명의태후 1명만 왕비로 두었다. 그러나 예종은 다시 인주 이씨와 혼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예종의 혼인에 대해 좀 더 들여다보자.
예종의 제1비는 경화왕후(敬和王后)로 선종과 정신현비의 딸이다. 정신현비는 인주 이씨 이예의 딸이니 예종은 첫 번째...
언니는 숙종의 왕비인 명의왕태후이다. 군군(郡君)이란 귀족부인들에게 주어지는 벼슬(외명부) 칭호이며, 그녀의 본관 정주의 별칭인 하원군을 써서 하원군군이라 한 것이다.
유씨 부인은 1103년 25세로 여진족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운 윤관 장군의 아들 윤언영과 혼인한다. 25세라니! 우리는 전통시대의 혼인이라면 무조건 꼬마신랑, 꼬마각시를 연상한다. 그런데...
사료에 의하면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년)의 첫 번째 왕비인 삼모부인은 김순정의 딸이었다. ‘삼국사기’와 ‘일본서기’에서는 신라의 고위 귀족인 김순정만을 기록한 데 반해 ‘삼국유사’에서는 그의 아내인 수로부인에 대한 일화를 남겼던 것이다.
수로부인의 일화에서 향가와 관련하여 늙은이[老翁]가 등장하고 있다. 노옹이 ‘헌화가’에서 꽃을...
혜명왕후(惠明王后)는 신라 제36대 효성왕(재위 737∼742년)의 왕비이다. 혜명왕후는 이찬(伊飡) 김순원(金順元)의 딸이다. 김순원 세력은 성덕왕 대에 이어 효성왕 대에도 유력 귀족가문이었다. 김순원은 성덕왕 19년(720)에 그의 딸인 소덕(炤德)을 성덕왕의 후비로 들여보냈다. 효성왕은 김순원의 외손자이다.
김순원은 그의 딸 혜명을 효성왕 3년(739)에 왕비로...
신라 제31대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년)의 두 번째 왕비이고, 제23대 효소왕(孝昭王, 재위 692∼702년)과 제24대 성덕왕(聖德王, 재위 702∼737년)의 어머니이다. 신문왕이 즉위한 해인 681년에 첫째 왕비의 아버지인 김흠돌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김흠돌의 모반은 진압되었고, 그의 딸인 김씨 왕비는 연좌되어 궁 밖으로 쫓겨났다. 이후 683년에 신문왕이 신목왕후를...
보도부인(保刀夫人)은 성은 박씨이고, 신라 제23대 법흥왕(法興王, 재위 514∼540)의 왕비이다. 보도부인의 다른 이름으로는 ‘삼국유사’에는 파도부인(巴刀夫人), ‘울주천전리각석’에는 부걸지비(夫乞支妃)가 전한다.
법흥왕은 527년에 불교를 공인하고, 529년에 살생을 금지시킨 왕이다.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한 후에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하고 출가하였는데...
조선의 다른 왕비들 행장에서는 볼 수 없는 이 말이 왜 유독 이렇게까지 강조되고 있는 것일까? 또 ‘경계를 신중히 했다’고 하는데, 경계를 하는 일차적인 대상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인선왕후 바로 자신이 아니었을까 한다. 즉 스스로 새벽에 우는 ‘암탉’은 되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인선왕후에게 ‘암탉’이 울면 어떻게 되는지를 뼈저리게...
그런데 세자빈 자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왕비로 올라간 특이한 전력을 가졌다. 1461년 장순왕후가 세자빈으로 있다가 죽고 나서 1468년 예종이 즉위할 때까지 왕실은 6년 이상을 예종의 세자빈 없이 지냈다. 세종 때 현덕왕후 권씨가 세자빈 봉씨 폐출 후 바로 후궁에서 세자빈으로 올라갔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인 일이다.
‘태상왕이 명하여 소훈 한씨를 왕비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