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부인이 두 집안의 가교 역할을 한 것이다.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았던 천명부인은 아들 김춘추가 왕위에 오른 뒤 문정태후(文貞太后)에 추존되었다. 다른 자매들이 왕과 왕비가 되었다면, 천명부인은 왕모(王母)로서의 지위를 누린 것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1989년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사망했을 때는 “왜 사죄도 않고 죽었냐”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배봉기는 평생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면서 살다가 1991년 10월 오키나와 자택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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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은 “경계도 없고 신분 고하도 없는 창공을 날고 있노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했던 하늘에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청연’(2006)의 주인공이 박경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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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귀국한 뒤에는 공군 창설에 참여하는 한편 역사를 기록하는 ‘한국연감’을 발간하고 장학사업을 하였다. ‘권기옥장학금’의 우선순위는 항공인재와 여학생, 역사의식이 올곧은 젊은이였다. 권기옥이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1988년 4월 19일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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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월은 ‘가십난’을 통해 이윤을 좇는 황색 저널리즘을 비판하면서 저널리즘의 윤리적 책임을 제기하고 신여성을 괴롭히는 소문을 정치학으로 쟁점화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1933년 5월 31일 고향에서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23세,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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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을 목격한 박자혜는 조선총독부의원의 간호부로서 민족차별을 겪었고, 3·1 만세운동을 주도하면서 ‘민족’의 저항과 단결된 힘을 알았다. 가정을 돌볼 수 없었던 신채호와의 결혼과, 그에 대한 묵묵한 지원은 항일활동을 사명으로 여겼던 박자혜의 필연적 실천 방식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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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논란에 굴하지 않고 단체 활동에 관계하거나 중국을 오가거나 배우 활동을 하며 살았다. 강향란 이후 단발을 선택하는 여성은 늘어갔다. 이들에게 단발 행위는 전통적인 조선여성의 삶을 넘어 여성이 직접 꾸려가는 새로운 삶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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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릉은 본래 경기도 파주의 장릉(長陵, 인조와 인렬왕후의 능) 옆에 있었는데 풍수지리상 불길하다고 1856년(철종 7) 10월 11일 현재의 서울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한 헌릉(獻陵,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의 오른편 언덕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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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경험으로 정치 감각이 있었고 늘 명분을 중시했다. 그녀의 정치적 리더십이 일반 백성을 위한 여러 정책에 발휘되었다면 후세 그녀에 대한 평가가 좀 더 긍정적이었을 것이다. 정순왕후는 1805년(순조 5) 1월 12일 61세를 일기로 창덕궁에서 승하하여 영조의 원릉(元陵)에 합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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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선왕 영조가 사랑했던 사람이며 선왕의 성덕(聖德)에 누가 될까 염려하여 끝내 사약을 내리지 않았다.
마침내 1799년(정조 23) 3월 4일 62세가 된 화완옹주를 용서하라는 하교를 내렸다. 그 후 화완옹주는 서울 도성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1808년(순조 8) 5월 17일 71세에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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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영조의 부마가 되었는데도 항상 겸손하고 검소하였다. 그가 39세의 나이로 병사하자 영조는 매우 슬퍼하며 정효(貞孝)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없어 맏형 한정(漢楨)의 셋째 아들 이주(頤柱)를 후사(後嗣)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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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부인들이 쓰는 관(冠)인 고고(姑姑)를 내려주자 그녀는 고고를 쓴 채 큰 잔치를 베풀어 자신의 위세를 과시했다. 충선왕의 또 다른 후비인 순비(順妃)가 몽골로부터 고고를 하사받은 기념으로 연 축제에서 숙창원비는 순비에게 지기 싫어 옷을 다섯 번이나 갈아입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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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지보다 14년 더 먼저 사망한 것이다. 남편 이제현은 “아, 내가 불행하게도 아내를 갑자기 잃었으나, 돌아보아도 그 영혼을 위로할 길이 없다”며 슬퍼했지만, 곧이어 새 장가를 두 번이나 갔을 뿐만 아니라 첩까지 별도로 두었다. 인생이 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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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지 종과 맞바람을 피웠다가 남편에게 걸려 결국 내침을 당했던 것이다. 최씨를 내쫓은 이의민은 그 뒤 양가집 규수 중 얼굴이 예쁜 여자가 있으면 데려가 결혼하고는 다시 버리는 일을 반복하였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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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관직 생활을 위하여 30년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행위는 차마 하지 못할 짓인데 하물며 자식이 있는데”라며 거절했던 것이다. 그 후 그녀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전하는 기록이 없어 잘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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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소부인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지소부인은 변하지 않는 이상이 더 가치가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지소부인이 지키고자 했던 삼종지의와 불법 등의 이상은 그를 딸과 아내가 아닌 그 자신으로 빛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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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연대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 당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결국 승리를 거머쥐게 되는 강력한 동력이었다. 그리고 김춘추는 진골귀족으로서 처음으로 왕위에 올랐다. 문희 역시 가야계 귀족으로서 처음으로 왕비가 되었다. 문희는 신라 중대의 첫 번째 왕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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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민주주의를 완성해야 하고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지속적인 발전을 함께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 장관은 1986년부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주로 여성사를 주제로 연구와 저술활동에 매진했다. 역사교육연구회장, 한국여성사학회장을 역임했으며 2002년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2010년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내며 사회적 발언을 해왔다.
김유신이 신라 사회의 주류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명을 세우는 것이 우선시되어야 했다. 천관은 알고 있었으나 원망하는 마음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신라 사람들은 천관의 마음에 공명하였고, 천관의 노래는 널리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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