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을 강조한 인선왕후의 캐릭터는 이렇게 형성된 것이 아닐까 한다.
‘암탉 운운’은 요즘 여성들에게는 그다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인순왕후의 ‘암탉론’은 당시의 정치적인 역학관계 속에서 그녀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인조에게 강빈은 정적일 수 있었다.
강빈은 다소곳하기보다는 적극적인 세자빈이었다. 다음 세대의 권력자인 세자와 세자빈은 현 왕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경계의 대상이 된다. 적극적이고 능력 있는 강빈은 시아버지 인조에게 매우 위협적인 존재였던 것이다. 강빈은 숙종 때에 복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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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긴 실랑이 끝에 겨우 어보가 인조의 손으로 넘어간 것이다.
흔히 인목대비를 광해군의 불쌍한 폐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 들어가 보면 그녀는 광해군의 실질적 정적이었으며, 또 인조반정에도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한 왕실의 만만치 않은 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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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혜왕후의 존재감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후 안순왕후는 소혜왕후와 사이좋게 대비 노릇을 했다. 여기서 ‘사이좋게’가 중요한 반전이다. 그것은 제안대군을 지켜내는 방법이었다. 왕위 계승에서 밀린 ‘대군’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인데, 그 위험으로부터 아들을 지켜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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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후궁에서 세자빈이 되는 길이 열려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처첩 구분은 민감한 문제였고 또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덕왕후가 세자빈으로 올라간 것은 딸을 낳았다는 것 외에 시아버지 세종으로부터 남다른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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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사후에는 아들이 즉위해 태후로서 최고의 지위를 누렸다.
명의왕태후는 고려 전기 왕실 여성 중 가장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여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거기에는 그녀의 아내 및 어머니로서의 덕성이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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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0년(인종 18) 정화(貞和), 1253년(고종 40) 광숙(匡肅)이라는 시호를 추가하였다.
사숙태후는 고려의 문벌귀족 정치가 성하던 시절 대표 문벌가문의 딸로서 섭정을 하며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여성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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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녀의 맡은 일에 능숙하여 모든 사람들이 흠모하였고, 현숙한 행실은 고대의 유명한 현부(賢婦)에 못지않았다”고 하여 그녀의 품성을 보여준다. 인예태후는 자손의 번성과 함께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서 인주 이씨의 번성, 나아가서는 고려 문벌귀족의 시대를 연 인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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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왕후의 삶은 고려시대의 재혼, 가계 계승에 대해 여러 가지 점을 시사한다. 그녀는 모계혈통이 중시되던 고려시대에 남편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개인적인 삶은 그다지 행복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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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의 효는 효도란 부모님의 의식주를 봉양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부모의 마음까지도 헤아리는 것에 있음을 깨닫게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은의 효는 효도의 행위가 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딸 역시도 동일하게 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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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씨녀는 아버지의 딸이자 남편의 아내로서 가장 바람직한 모습을 가진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씨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여성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다. 설씨녀는 주어진 상황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살아내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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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온달은 아단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장사를 행하려는데, 상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관을 어루만지며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돌아갑시다”라고 하니 그제야 상여가 움직였다. 평강공주는 신분의 벽을 넘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책임을 진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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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는 중동,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생활하는 난민에게 조명과 에너지를 공급하는 기부 활동을 해왔다. 지난해에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총 3080만 유로(약 383억 4000만 원)를 기부했다. 또 유럽에 난민을 위한 대피소를 짓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유엔과 함께 만든 이케아의 쉼터는 지난해 런던의 디자인 박물관에서 올해의 디자인 상을 받기도 했다.
앞두고 “곡하지 말고 상여가 나갈 때에는 북이나 음악으로 인도해 달라”는 파격적인 유언을 남겼다.
참으로 사람은 가고 없으나 그 자유정신은 역사의 물결을 타고 도도히 흘러 우리 곁으로 왔다. 삶과 죽음 모두 기꺼이 받아들인 그녀의 자유의지가 현재 각박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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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혜왕후는 “수신이란 나뭇가지를 꺾는 일처럼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라고 했다. 수신에 힘쓴 소혜왕후의 말년이 흉흉했던 것은 지나친 권력 행사 끝에 찾아올 파멸을 예견하지 못해서였다. 세월을 잘 헤쳐 온 끝에 맞이한 참담한 결과여서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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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태후의 아이는 왕이 되지 못했고, 그녀의 아이는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공식 사서가 어찌 승리자의 기록이 아니겠는가!
현종은 왕위에 오른 뒤 그녀를 효숙(孝肅)왕태후라고 추존하고, 무덤을 원릉(元陵)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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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북한의 주요 요직을 지냈다. 그러나 노년기엔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란 것으로 지극한 모성도 보였다. 아버지 덕에 잘된 자신처럼 자녀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랐으리라. 90세 넘어 세상을 떠난 그를 북한에서는 크게 애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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