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하자면, ‘명나라의 조선국 정헌대부로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와 삼도수군통제사를 겸한 (중략) 충무공의 신도비’라는 뜻이다. 맨 앞에 쓰인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의 ‘유명(有明)’은 어떤 의미일까?
고대로부터 중국에서는 나라 이름 앞에는 ‘有’라는 일종의 접두사를 습관적으로 붙여왔다. 나중에는 일반명사에도 붙였으니 ‘논어’에 나오는...
이에 아모개는 개경 기방에 명나라 사신들의 음식을 도적들과 빼돌렸지만 도적들은 아모개를 따돌렸고, 아모개는 그제야 자신이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모개는 다급히 자신의 몸을 스스로 다치게 해 도적들이 자신을 때린 뒤 물건을 훔쳐갔다고 고한다.
도적의 용모파기를 그려 방을 붙여 도적을 잡았지만, 아모개는 그 사람이 도적이 아니라고 했고 도적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명나라로 망명하기 위해 의주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때 조정을 두 개로 쪼개(이를 ‘분조’라 한다) 광해를 세자로 책봉하고 광해에게 임시조정을 맡긴다. 광해와 함께 여기에 대립군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 흥미롭다. 대립군이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군역을 대신해주는 사람인데 과연 광해와 함께 어떤 이야기로 관객에게...
유기는 주원장의 책사로,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개국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자는 백온(伯溫),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그가 저술한 ‘적천수(滴天髓)’는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해석한 명리학의 고전으로, 현재까지 명리학 연구자들의 교재로 활용된다.
중국 3대 책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직원들의 생계를...
조선 천민의 자식으로 태어난 변광조는 운명을 좇아 명나라로 갔다가 해적이 됐고, 나중에는 유구국(오키나와)의 거상이 된다. 그는 조선에서 전란이 일어나자 일본이 조선을 삼키면 자기가 구축한 상로(商路)가 쓸모없어질 것임을 알고는 어떻게든 조선을 도우려 한다. 이 과정에 일본 수군의 서진을 막고 있던 이순신, 한양 방어작전을 펼치던 권율에게 물자를 공급하며...
우황청심환은 송나라와 명나라 의서에 수록된 처방으로 중국이 그 원조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것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명약(名藥)이었다. 조선에서는 우황청심환을 우황청심원, 청심환, 청심원 등의 명칭으로 혼용하였다. 태종 때부터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부터 제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허준의 ‘동의보감’에 그 처방이 수록됐고, 이후 연구가...
외교적으로도 200년간 최대 현안이던 명나라 대명회전(大明會典)의 잘못된 기록(이인임이 이성계의 부친)을 수정하는 데 성공했다. 이이와 이항복, 이덕형과 류성룡 등 당대의 인재들을 중용했으며 이순신과 권율을 등용하고 화포를 정비하는 등 일본의 침략에도 대비했다.
한마디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명군으로 칭송받았을 왕이다. 그러나 왜란이...
“명 황제 앞으로 은자 4만5000냥 대소 합하여… 금 한 관과 족자에 은 장을 입혀… 또한, 군사 총 2만 명의 병력을 명나라에 파병토록 하겠나이다.” 광해는 힘없이 입을 연다. “경의 뜻대로 하시오.”
보다 못한 한 정승이 나서서 “너무 무리한 조공이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그러자 대신은 “대감, 이 나라가 있는 것이 누구의 덕이옵니까? 명이 있어야 조선이 있는...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황제가 된 후, 맨발로 함께 농사 짓고 얼굴에 진흙을 묻힌 채 장난을 치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리하여 친구들에게 벼슬을 주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들을 어전 모임에 초대했는데, 대신들 앞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자, 가차없이 처단했다. 체면 손상을 떠나 법도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공자 역시 동네의 오랜 친구 원양이 가르침을 어기자 지팡이로...
왕에게 바른말을 한 것을 가문의 영광처럼 기록해놓은 많은 인물들이 사실 왕실과 얼마나 긴밀한 친인척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은 마치 금광을 찾는 것처럼 흥미로웠다.”
초기의 조선은 명나라 법전 및 역사서인 대명회통의 조선왕조 계보에 이성계의 부친이 이인임으로 기록돼 있어 고민했다. 창건자의 아버지가 엉뚱한 이름으로 중국 역사서에...
명나라의 문인 황윤교(黃允交)는 고취유산(鼓吹遊山, 북 치고 나팔 불며 산놀이를 함), 청가설가무(聽歌說家務, 노래를 들으며 집안일을 말함), 송림작측(松林作厠, 솔밭에 뒷간을 만듦), 명산벽상제시(名山壁上題詩, 명산의 바위벽에 시를 지어 새김) 이런 걸 살풍경이라고 했다.
목은 이색의 ‘군수 이공(李公)의 방문에 감사하며’[謝郡守李公來訪]라는 시에는 이런 대목이...
명나라 조정에 반대해 난을 일으킨 반란군을 토벌해 명나라에서도 벼슬을 받았다. 병자호란 땐 백마산성에서 청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청군이 성을 우회해 서울로 진격하자 청군을 추격하기 위해 조정에 원병을 요구했다. 하지만 원병이 오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듬해 청이 명을 정벌하기에 앞서 조선에 파병을 요구하자 수군장으로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으나...
중국 명나라 때의 벼슬아치 여곤(呂坤)은 관리들을 경계하는 저서 ‘여공실정록(呂公實政錄)’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관리를 낸 것은 결코 술과 고기를 담는 부대로 만든 게 아니요, 비단을 걸어놓는 옷걸이로 만든 게 아니다. 또 하늘이 백성을 낸 것은 결코 관료를 위한 고기나 생선으로 만든 것이 아니요, 정부의 창고를 채우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다. 반성하면...
16일 방송된 MBC 드라마 ‘옥중화’ 22회에서는 황해도 감영 관비가 된 옥녀(진세연 분)가 황해도로 향하던 중 산적들에게 납치돼 명나라로 팔려가게 될 위기에 빠진 모습이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옥녀는 자신이 팔려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산적들의 본거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위험한 탈출 계획을 짜는 등 일촉즉발의 긴장감 넘치는 전개로 시청자의 가슴을 쫄깃하게...
한·중 FTA(자유무역협정)에서 우리 쪽에 금융 챕터를 양보해 준 것도 나중에 채찍으로 쓰고자 자본 의존도를 심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조선시대 광해군이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중립외교를 했던 지혜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안보와 외교는 미국에 의지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중국 명나라 중기의 대표 사상가 왕수인(王守仁)은 마음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조식은 단련해야 할 대상으로 본 것이다. 생각이 다르지만 두 사람의 도달점은 ‘세상을 바꾸는 큰 사람, 대장부’로 귀결된다. 이런 점에서 조식의 사상은 양명학에 가깝다.
남명의 자(字)는 건중(楗仲), 경남 합천군 삼가면 사람이다. 보잘것없는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와 숙부가...
명나라도 일본도 임란 이후 정권이 바뀌었다. 노쇠하고 무능한 국가권력은 국민에게 엄청난 해를 줄 뿐이다. 조선은 어인 일인지 임란과 호란을 거치고도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지배이념인 성리학은 양반 기득권을 위한 통치 이념으로 변질되었으며 피지배층은 더 이상 양반을 존경하지 않았다.
대원군의 섭정은 쇄국정치로 인해 잃어버린 10년을 만들었고 고종의...
특히 임진왜란 전에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해 전쟁에 대비하도록 했고, 전쟁 중에는 명나라 원군을 끌어들이는 등 외교·안보에 탁월한 인재다. 반 총장은 서애 선생과 자신의 이미지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반 총장은 하회마을의 서애 선생의 고택인 충효당(忠孝堂)에서 김관용 경북도지사, 오준 유엔 수석대사, 권영세 안동시장, 류상붕 풍산류씨...
흥미로운 일은 명나라가 어떤 연유에서인지 이성계 아버지의 이름을 ‘이인임’으로 잘못 기록한 점이다. 명나라의 정사에 왕조를 창건한 사람의 아버지 이름이 잘못 기재된 것은 당시로서는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었겠는가. 특히 이인임은 이성계의 정적으로, 이성계를 견제하고 그의 발목을 잡은 인물이었다. 조선은 1507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나라에...
극중 진세연은 스승 전광렬, 체탐인 부장 임호와 함께 명나라 사신을 암살하고 명나라 사신의 서신을 탈취하는 작전을 수행했지만 임무를 마치고 집결하기로 했던 장소에 도착한 진세연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있는 전광렬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에 진세연이 재빨리 약초를 구해 전광렬에게 응급처지를 시작했지만, 전광렬은 진세연에게 자신의 죽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