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370년께, 일본은 610년께 만드는 방법이 전해졌고, 서양에 전해진 것은 751년 이슬람과 당나라가 맞붙은 탈라스 전투 때이다.
이 전투에서 당나라는 크게 패해 약 2만 명이 포로로 잡혔는데, 그중 몇몇이 제지공(製紙工)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757년 사마르칸트에 제지공장이 세워졌고, 이라크엔 793년께, 이집트는 960년, 스페인에 도착한 것은 1151년이다. 그...
이후 당나라로 들어오면서부터는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와 당나라와의 교류가 훨씬 빈번해진다. 이와 같은 유구한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현재 중국 지도부와 우리나라 간의 사드 갈등은 잠시 스쳐가는 일시적 문제일 뿐, 좋거나 싫거나 두 나라는 서로 교류하고 살 수밖에는 없다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받았다.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여야 할까?...
송덕봉은 남편이 함경도 종성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취한 첩과의 소생인 딸 4명을 자신의 딸처럼 잘 다독여 가족 질서에 편입하고자 했다. 유희춘은 이런 모습에 감동하여 아내를 당나라 문종 때 효성으로 뛰어난 상곡부인(上谷夫人)과 같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아버지는 설승충, 혹은 설영충인데 당 고종 때 신라에서 당나라로 이주했다. 설요의 묘지명(墓誌銘)에는 신라왕 김씨의 후손인데 신라왕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들에게 ‘설’국을 식읍(食邑)으로 봉해주고 설을 성씨로 삼게 했다고 하였다. 설승충은 태종무열왕의 아들인 김인문(金仁問)과 함께 당나라로 건너가 당에서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이 되었다. 좌무위장군은...
문무왕이 “나의 선왕께서 당나라에 군사를 청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평정하였던 것은 비록 군사적 공로라고 하나, 또한 문장의 도움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강수의 아내는 부곡(部曲) 출신의 대장장이 딸이었다. 부곡은 특수한 계층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군현 백성들과 신분적인 차이가 있었다. 강수의 부모가 탐탁지...
중국은 당나라 때부터 ‘항방제도(行坊制度)’를 실시하여 산업인과 상업인들의 영업 장소를 도로를 경계로 블록(block: 단지團地·구역)으로 나누어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 구역에 모여 영업을 하도록 했다. 이런 구역을 ‘방(坊:동네 방)’ 혹은 ‘항(行:거리 항)’이라고 불렀다. 방은 블록 내의 안쪽이고 항은 바깥쪽이다.
방은 시쳇말로 치자면...
중국 주재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회장인 외르크 부트케는 최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글에서 “1000년 전 세워졌던 실크로드는 영토확장과 문화적 패권주의, 경제력이 절정에 달했던 당나라 시기의 중국 황금기를 뒷받침했다”며 “시진핑 주석은 이달 초호화 국제포럼을 통해 실크로드를 재창조하려는 야심 찬 계획을 소개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과거제도는 중국에서는 수나라 때 처음 시작하였고, 당나라 때에 이르러 확고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광종 때 중국으로부터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부 명문집안의 자제들이 조상의 공로에 힘입어 과거를 치르지 않고서도 관직에 등용되는 이른 바 소수의 ‘음직(蔭職:조상의 음덕에 힘입어 관직을 얻는다는...
중국에서도 위진남북조 시대 유유(劉裕)가 세운 송나라와 당나라 이후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나라를 구별하기 위해 왕의 성씨를 따서 ‘유송(劉宋)’, ‘조송(趙宋)’으로 나누어 부르는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일제는 1910년 조선을 병탄한 이후, 조선총독부를 두어 조선을 다스리면서 이미 그들의 나라가 되어 버린 조선을 그 이전의 조선, 즉 1910년 이전의 조선과...
그러자 신부가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 ‘군재독작(郡齋獨酌)’에 나오는 “평생 오색 실로 순임금의 의상 깁고 싶어라[平生五色線 願補舜衣裳]”라는 시구를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임금에 대한 충심을 드러내는 내용이기에 신랑이 놀라 물었다. “그대는 어찌 그 구절을 좋아하시오? 이 시는 남자라면 괜찮지만 여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데 말이오” 하니...
중국 당나라 사람의 시에 “날이 저물자 궁중에서는 몰래몰래 촛불을 서로 건네어, 귀족들 집에서는 가벼운 연기가 피어오르네(日暮漢宮傳蠟燭 輕煙散入五侯家)”라는 구절이 있다. 백성들에게는 불의 사용을 엄금한다고 해놓고서 귀족들끼리는 슬그머니 불을 사용했다는 뜻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특권층이 문제이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李白, 자가 ‘태백太白’이어서 흔히 이태백이라고도 칭한다)의 시 가운데 혼자 술을 마시는 정황을 읊은 게 있다. ‘월하독작(月下獨酌)’, 즉 ‘달빛 아래서 혼자 술을 마시며’라는 제목의 시이다. 꽃 사이에 술 한 동이를 차려놓은 이백은 함께 마실 친한 사람이 없자 술잔을 들어 달을 맞아들인다. 그랬더니 달이 그림자를 데리고 와서...
서태후(1835.11.29~1908.11.15)는 한고조 유방의 처인 여후, 당나라의 측천무후와 함께 중국 3대 악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청나라는 서태후가 사망한 후 3년 지나 신해혁명으로 멸망했다. 그러나 서태후는 보수파의 수장으로 권력만을 추구해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치스러운 생활로 국가 재정을 좀먹어 결국 나라를 멸망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서태후는 청나라...
인(仁)이 없는 의(義)는 알알 모래알로 공포 조직을 만들고, 의(義)가 없는 인(仁)은 물렁팥죽의 당나라 군대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조직 문화에서 무엇을 하면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의 기준과 상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의(義)다. 의(義)는 영어로 justice다. 영어권에서는 ‘법(Jus)’과 ‘정의(Justitia)’를 같은 개념으로 인식한다. 영어의 ‘정의(Justice)’는...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참됨이 있다’는 뜻의 당나라 고승 임제선사의 말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을 빚대 “어떠한 위기상황이 닥치더라도 주인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지행합일의 정신으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좋은 사람’과 ‘좋은 리더’를 비교하며 직원들에게 잘 대해주기만 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지금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참됨이 있다'라는 당나라 고승 임제선사의 말을 인용해 "어떠한 위기상황이 닥치더라도 주인정신으로 위기를 돌파하고 지행합일의 정신으로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좋은 사람’과 ‘좋은 리더’를 비교하며 직원들에게 잘 대해주기만 하는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성장시켜...
“백제 장군 계백(607~660.8.20은 단 5000명의 결사대로 신라의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군사 5만 명과 대적하다 죽음을 맞았다는 점에서 ‘충절의 표상’으로 부를 만하다.”(아동문학가 박연아 ‘계백’)
그는 660년 당나라 신구도대총관(神丘道大摠管) 소정방이 지휘하는 수군 13만 명과 신라 대장군 김유신이 이끄는 육군 5만 명이 수륙 양면에서 백제를 침공했을 때...
시안은 진시황제가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후 수도로 삼으면서 화려한 당나라의 문화를 꽃피웠던 지역으로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하던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역사적 장소이다. 역사와 함께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더러 중국 서부 지역 관광을 위한 관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가장 먼저 관광 상품이 개발되었던 지역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 백장(百丈: 720~814) 선사는 90세가 되어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 주위에서 농기구를 감춰버렸다. 그러자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며 종일 굶었다(조오현 편, ‘선문선답’).
선사의 밥이 밭일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이치를 백장 선사 같은 고승이 몰라서 노동을 고집했겠는가....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젊은 시절, 당나라로 함께 유학을 떠났다. 길을 가던 도중, 원효는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유심(唯心)의 도리를 깨닫고 되돌아왔던 반면, 의상은 원래의 계획대로 유학을 떠났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두 사람 모두 신라의 고승이 되었기에, 각자의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