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진인 연구노트와 신문스크랩에는 임 창업회장의 이러한 열정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기업인이면서도 실험광이었던 고인은 대외활동보다는 연구실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인 지난 3월까지도 신문에 나온 회사 제품 뉴스를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열의를 보였다.
대상그룹 측은 고인의 삶을 기리기 위해 유품 전시를 검토 중이다.
공군은 "제6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김신 예비역 중장이 오늘 새벽 0시22분께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라고 밝혔다.
1922년 9월 21일 중국 상하이에서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태어난 김신 전 총장은 어머니 최준례 여사가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하자 할머니 곽낙원 여사를 따라 귀국했다.
1944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으로 중국 공군군관학교에서...
정치와 문화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후 3시40분께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향년 93세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평양 출신으로 평안남도 평양공립상업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민주당 선전차장·국제문제연구소 총무로 정계에 입문해 1960년 제5대 민의원으로 선출됐다. 강원도 철원·화천 등을 지역구로 제 5, 6...
‘개성출신 기업인’이자 문화재 수집가로 유명한 호림(湖林) 윤장섭 유화증권·성보화학 명예회장이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22년 개성에서 태어난 윤 명예회장은 남쪽으로 넘어와 성보실업, 유화증권, 성보화학 등을 창업했다. 한국 기업계의 기초를 닦은 1세대 기업인으로 꼽힌다.
윤 명예회장은 회사 경영에서 무리한 사업 확장이나 기업 인수...
강영훈 전 국무총리가 10일 오후 3시 7분께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한국적십자사는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던 강 전 총리가 이날 오후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장례 절차는 대한적십자사 김성주 총재와 정원식 전 총재,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사회장으로 진행된다.
고인은 1922년 평안북도 창성 출신으로 육군 제3군단...
박경리 선생은 1926년 통영에서 태어나 2008년 원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토지문화재단 권오범 사무국장은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토지’를 번역하는 재러시아 고려인 작가 박 미하일씨가 최근 ‘토지’ 1부 1권의 번역을 마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만큼 곧 러시아어로 ‘토지’가 출간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은퇴 이후 양 창업자는 사회공헌에 의욕적으로 활동했다. 이런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1990년 자신의 아호인 ‘송촌’을 따 대신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대신송촌문화재단은 증권업계 최초의 순수문화재단으로, 양재봉 창업자의 사재를 기반으로 설립됐다. 기업 이윤이 사회 환원으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믿은 그는 지난 2010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였다.
원로 문화예술평론가 박용구 옹이 6일 오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102세.
1914년 경북 영주군 풍기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고보를 거쳐 일본 니혼 고등음악학교에서 수학했다. 1937년 일본 음악평론사 기자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춘향전’, ‘벌판’ 등을 무대에 올린 고인은 1940년 귀국해 신문 기고 활동을 하다가 중국...
'국민 조미료' 미원을 만들어 한국인의 입맛을 바꿔놓은 임대홍 대상그룹 창업주가 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대상그룹은 "임대홍 창업주가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면서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조용히 장례를 치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북 정읍 출신인 임대홍 창업주는 국산 조미료가 없던 시절 미원을 개발해 국민...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강인섭 전 국회의원이 20일 향년 80세의 나이에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6년생인 강 전 의원은 전북 고창 출생으로 이리 남성고와 한국외대 불어과를 졸업했다. 1962년 동아일보에 입사했다. 정치부 기자 시절부터 상도동을 출입하며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에 입문한 뒤에는 민자당 당무위원을...
정 전 원장은 증권원장이 되기 전에는 주미 재무관, 주미 경제담당공사 등에서 일했다. 이 덕에 그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잘 알려진 인물로 평가됐다. 1990년대 초에는 자본시장의 국제화와 개방이 주요 이슈였기 때문에 각 기관에서는 그의 국제적 감각이 필요했던 시기였다.
정 전 원장은 지난 2013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0세였다.
국내 증권사들의 당기 순이익은 홍 전 원장 취임 첫해인 1977년 60억300만원이었다. 그의 퇴임 직전인 1981년에는 174억1800만원으로 2.9배 늘었다.
홍 전 원장은 1982년 2월 초대 증권감독원장에서 퇴임한 뒤 삼미종합특수강 회장, 성곡학술문화재단 이사장,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2008년 7월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였다.
김성집 고문은 지난 1월 21일 노환으로 중앙대병원에 입원한 뒤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이며 장지는 경기도 안성 천주교 추모공원이다. 발인은 23일 오전 8시다.
김 고문은 한국이 태극기를 들고 처음 참가한 1948년 런던 올림픽 남자역도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한국에 첫 메달을 선물했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도 동메달을 목에...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가 20일 오후 1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고인은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 상업고등학교와 고려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1967년 제7대 국회 때 신민당 전국구 의원으로 정치권에 진출해 7선 의원을 지냈다.
지난 1971년 제8대 총선에선 부산 동래구에 출마해 당선됐고,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 통일민주당 부총재, 국회 5공비리조사...
한국 연극계의 가장 큰 별 배우 백성희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백성희는 지난 8일 오후 11시18분께 서울의 한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백성희는 한국 연극의 역사이자 최고의 배우로 후배 연극인의 롤모델이자 큰 별이었다. 지난 2013년 ‘3월의 눈’을 비롯해 지난 70여년동안 400여편의 연극에서 연기 이론을 넘어선 생명력 있는 연기로 수많은...
이 할머니는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노환으로 건강이 악화돼 경기도 성남 소재 요양원에서 생활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동국대 측은 고인이 떠나기 전 고액기부자에 대한 예우로 사후 장례 절차를 모두 지원한다고 안내했지만 이 할머니는 이를 극구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영정사진와 수의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원로배우 최명수씨가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8일 한국방송연기자협회에 따르면 최명수씨는 6일 자택에서 잠을 자던 중 숨을 거뒀다.
고인은 국내 최고령 배우로 알려졌으며, KBS1 '객사', '새벽' 등에 출연했고 KBS1 'TV소설 산유화'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1989년에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전신인 '우리 동네'에도 출연한 바 있다.
그는 2012년 88세의...
모린 오하라는 지난 24일 미국 아이다호 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 1920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모린 오하라는 1939년 ‘노틀담의 꼽추’를 시작으로 1940~1960년대 할리우드를 종횡무진하며 사랑받아.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47년 작 ‘34번가의 기적’이 있어. 1950년에는 서부영화 대표 배우 존 웨인과 여러 번 호흡을 맞췄으며 특유의 붉은색 머리와 흰 피부...
비철금속업체 이구산업을 창업한 손정환 명예회장이 노환으로 별세했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손 명예회장은 지난 26일 향년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빈소는 건국대학교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다음달 1일 오전 8시다.
손 명예회장은 1923년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1946년 서울시...
요기 베라 박물관은 23일(한국시간) 트위터를 통해 “요기 베라가 22일 미국 뉴저지주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그는 1943년 양키스와 계약한 뒤 1946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해 19시즌 동안 통산 타율 0.285 358홈런을 기록했다. 아메리칸리그 MVP를 세 차례 수상하고 올스타전에 15회 출전한 당대 최고의 포수였다.
이후 1964년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