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원내대표는 "군사 반란을 통한 권력의 찬탈이나 그 후에 민주화 운동 탄압 인권 탄압, 특히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무력 진압은 그로 인해 씻을 수 없는 책임을 져야 한다"라며 "피해자와 유족들은 더이상 어떻게 위로받을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적 역사 평가는 별개 문제로 그에 대한...
전씨 측 인사는 “장 전 부장은 밤새 빈소를 지킬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전 안기부장은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장으로 12·12 군사 반란에 가담하고 대통령 경호실장과 안기부장 등을 지낸 5공 시절 실세 인물이다.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안기부장에서 물러났다. 이후 5공 비리에 연루된 혐의 등으로 여러 차례 감옥 생활을 했다.
전 씨는 1997년에는 고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내란목적살인죄·군사 반란 혐의로 대법원에서 17년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에 국가보훈처도 전 씨가 국립묘지 안장 배제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날 오전 보훈처는 "국립묘지법 제5조 4항에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79조 제1항 제2호 등에 해당하는 죄로 실형을...
전 씨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으로 집권한 뒤 11대, 12대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1997년 법원이 뇌물 수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2205억 원의 추징금 납부를 명령하자 532억 원을 납부한 뒤 “예금자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며 사실상 납부를 거부했다.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후인 2003년에는 언론을 통해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다....
군사반란에 이어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 한 사실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전 씨는 사망 전까지 5ㆍ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사과나 책임성 있는 발언을 회피했다.
전 씨는 이날 오전 8시 45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향년 90세 일기로 사망했다. 자택에서 쓰러졌고 이 사실이 오전 8시 55분께 경찰과 소방에 신고됐다. 경찰은...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 씨는 박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긴 공백기를 활용해 하나회와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했다.
이듬해 5월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진행하고 헌정을 차지했다. 이에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발생하자 군사를 동원해 시민들을 진압했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실권을 갖게 됐다.
전 씨는 최규하...
이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데 이어 정권 찬탈을 위한 '12·12 군사반란'을 획책했다.
군사 반란을 통해 집권한 전 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 했으며 1988년 초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퇴임 후 내란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한편, 지난달 26일 12...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통해 군을 장악하고 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군사력을 동원해 유혈 진압을 해 논란이 됐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따라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으며 김영삼 정부 당시 반란수괴죄 및 살인,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정치적 이념이 달랐던 둘은 사사건건 부딪쳤고, 당시 재퍼슨은 군사력을 동원해 반란을 음모한 버를 향해 ‘사냥감을 포착하고, 돌진하는 매와 같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이후 매가 다시 등장한 건 1960년대 베트남전쟁 때입니다. 전쟁의 확대를 주장하는 미국 내 강경파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됐는데요.
반대로 확전을 반대하고, 한정된 범위 안에서 평화적...
노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인 전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았다. 군인 시절부터 주요 보직을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둘의 동반자 행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제5공화국 비리 청산 여론이 일자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요미우리 “서울 올림픽 개최로 국제 지위 향상”아사히 “전두환 측근으로 군사독재 정권 지지”산케이 “문 정권, 국가장으로 화해 도모하지만, 논쟁 예상”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일본 언론도 주목했다. ‘올림픽을 성공시킨 대통령’부터 시작해 ‘민주화를 선언한 군 출신 대통령’, ‘전두환의 측근’ 등 다양한 평을 내놨다.
27일 요미우리신문은...
그는 "고인은 어쨌든 대한민국을 민주정부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역할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북방 외교 등으로 여러 성과를 낸 공이 있다"면서도 "다들 익히 아는 것처럼 고인에게는 12ㆍ12 군사반란 등에 참여했던 큰 과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근에 논란이 된 전두환 대통령 일가와는 다르게 고 노태우 대통령 일가는 그에 대한...
이들은 “노태우씨는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의 2인자로 전두환과 함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던 책임자 중 한 명으로, 반란수괴·내란수괴·내란목적 살인·뇌물수수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받은 중대 범죄자”라며 “광주와 국민 앞에 진심어린 사죄와 참회가 없는 찬탈자이자 학살의 책임자를 국가장으로 장례를...
노 전 대통령은 1996년 대법원에서 군사반란 등 죄명으로 무기징역과 17년형이 확정됐다. 1997년 12월21일 사면·복권됐지만, 2006년에는 다른 12·12 쿠데타 주역들과 함께 서훈도 취소됐다.
그러나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 장지와 장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 서거한 경우...
일례로 충청북도는 지난 4월 청남대학교 내 노태우 동상에 '1979.12.12 신군부의 수괴로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 장악', '계엄군을 동원해 5‧18민주화운동 무력 탄압' 등의 역사적 평가를 담은 안내판 설치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동안 추진한 외교·경제·부동산 등의 몇몇 분야의 정책과 방향에 대해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우선 당시...
12·12 군사반란과 수천억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15대 대통령 선거 이틀 후 김영삼 정부에 의해 사면복권 됐다.
1959년 결혼한 부인 김옥숙 여사와의 사이에서 딸 노소영 씨, 아들 노재헌 씨를 두고 있다. 아트센터 나비의 관장인 노소영 씨는 1조 원대 재산 분할을 놓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혼 소송...
그는 "5공 정권 탄생 과정에서 저지른 군사반란, 5·18 광주 학살에 대해 그동안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며 "제가 최고 전문가를 영입해 성장·번영 관련 문제를 설명하는 와중에 이름 석 자만 들어도 힘들어하실 분들의 입장을 생각못한 불찰에 대해 깊이 사과드렸다"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지지율이 하락한 것에 대해선 "정치한지 얼마...
윤 후보는 "역사 인식을 말했는데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들어가야 한다고 헌법 개정 시에 저는 그렇게 주장했다"며 "대학 시절에도 5.18 직전에 벌어진 12.12 군사 반란에 대해서도 모의재판장 하면서 무기 징역을 선고한 바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제가 5.18이나 12.12에 대한 인식은 변함이 없다"며 "제가...
쿠데타 지도자인 민 아웅 흘라잉이 이끄는 군사 테러리스트에 맞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자”며 전역에 비상사태를 발령했다. 이어 “이번 전쟁은 국가의 민주적 통치가 재개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현 정권 밑에서 근무 중인 모든 사람은 오늘부로 직장을 떠날 것을 촉구한다”며 “미얀마 국민은 여행을 자제하고 식량과 의료품을...
특히 국회에서도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군형법상 반란, 군무 이탈, 군사기밀 누설 등 군사 범죄로 한정하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황인 만큼 24일 예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결과에도 이목이 쏠린다.
다만, 국방부는 합동위 분과위에서 의결한 지 이틀 만에 열린 국회 국방위 현안보고 자료에서 '평시 군사법원 운영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