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문 대통령은 독립유공자 후손인 김진성 지사(건국훈장 독립장)의 아들 김세룡(재중독립유공자유족회 회장), 동진 지사(애족장, 2013)의 딸 김연령 및 손자 김과, 김산(본명 장지락) 지사(애국장, 2005)의 아들 고영광 씨 등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 인사했다.
또 문 대통령은 한중 양국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까지 중국에서 활약한 우리 국민의 역할이...
김락의 친인척 중 정부가 추서한 독립운동가는 무려 25명이나 된다. 사진 한 장 변변히 남기지 못한 그는 아내로 며느리로 어머니로 누이로, 그가 처한 자리에서 가족과 함께 항일투쟁에 열과 성을 다한 여성독립운동가다. 2001년에 추서된 건국훈장 애족장이 작으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1995년에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항일독립운동과 백산 지청천 장군’을 저술·발간하였으며, 2007년 운명하였다. 2015년 아들 이준식이 정리한 ‘민들레의 비상’으로 우리에게 다시 그의 빛을 주게 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안남[越南]인 묘지에 안장됐으나, 지금은 무덤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는 조마리아에 대해 “너그러우면서도 대의에 밝은 분이었다”고 회고하였다.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립 운동가들을 최고의 존경과 예의로 보답하겠다"라며 "독립 운동가의 3대까지 예우하고 자녀와 손자 전원의 생활안정을 지원해서 국가에 헌신하면 3대까지 대접받는다는 인식을 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석주 선생의 생가인 '임청각'을 언급하며...
포상별로는 건국훈장 63명, 건국포장 16명, 대통령 표창 49명 등이다. 특히 구한말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옥중 순국한 이영삼(1875∼1910) 선생이 포함돼 관심을 끈다. 이 선생은 전북 임피(지금의 군산) 출신이다. 그는 1909년 의병부대에 들어가 전북 지역에서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선생은 투옥된 지 약...
등을 출간하였으며, ‘여성전진 70년-초대 여기자의 회고’ 등 그의 수많은 저서들이 근대 여성사 연구의 견고한 디딤돌이 되고 있다. 1984년 별세 후 조선일보사는 그의 유지에 따라 ‘최은희 여기자상’을 제정, 후배 여기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한 독립운동가 가족의 일원으로, 넓게는 임정 관련 요인들과 가족, 나아가 임정의 일원으로 항일투쟁 독립을 위해 자신을 불살랐다. 1991년 귀천하기까지 그의 투철한 애족·애국정신은 자녀와 후손, 후배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어 새겨지고 이어지고 있다 하겠다. 198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대동강에 뿌려졌다. 일생을 공부와 항일 민족운동에 헌신한 그의 정신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빛을 발한다. 열정적인 꿈을 당당하게 실현하는 데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1947년 1월 17일 서거한 박열의 유해는 평양 애국열사릉에 뭍혀있다.
그가 사망한 후 43년이 지난 뒤인 1990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박열의 고향인 경북 문경의 생가 터에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이 건립돼 2012년 10월 9일 개관됐으며, 기념관 옆쪽에는 2003년 자리잡은 가네코 후미코의 묘소가 있다.
그는 “건국훈장 보상금이 약 525만 원인 반면 민주화운동 보상금은 이보다 10배가 많은 1인 평균 5572만 원이었다”며 “민주화 유공자 유가족들에게 부여한 공직시험 가산점에 대해서도 과도하거나 치우침이 없도록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홍 후보의 발언에 대해 일각에선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군 가산점 제도가 취업현장의 성차별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기...
(총재 김규식) 창립위원과 집행위원, 민족자주연맹(주석 김규식)의 부녀국장으로 활동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는 피어선성경학교,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서울여자대학에서 교육 활동과 이사 활동, 그리고 여전도회 활동에 주력했다. 1990년, 정부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이 단체에서 활동한 김병인·오건해·이헌경·김수현·이숙진·윤용자 여사 등 6명에게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이들은 모두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 활동으로 저명한 독립운동가의 가족이다.
이외에도 191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미국 하와이 한인 여성계의 지도자로서 한인여성의 단결과 독립운동 지원에 헌신한 황마리아 여사에게도 건국훈장 애족장이...
해방 후 1945년 8월 건국부녀동맹을 조직했고, 1946년 10월 독립촉성애국부인회 정치부장으로 선임되면서 과도입법의원 관선의원에 지명되어 최초의 여성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그해 10월 평양에서 탈출하였다. 1952년 여성문제연구회, 1956년 가정법률상담소, 1958년 대한어머니회 등의 여성단체를 창립하고 회장 또는 이사로...
이후 일본 우익교포 단체인 재일조선인거류민단을 조직해 단장을 맡기도 한 그는 1949년 고국 땅을 밟았다가 6·25 때 납북돼 북한에서 눈을 감았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최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은 출연진을 정하고 이달 본격 촬영에 들어갔다.
1947년에도 선전에서 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48년 4월에야 귀국하였다. 젊음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 열정과 용기는 간 곳 모른 채, 1976년 운명하기까지 내내 가난에 시달리는 고달프기만 한 삶이 이어졌다. 1977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34세의 짧은 생이지만 조국의 해방을 위해 다 바친 그의 묘소는 돌보는 이 없이 거의 방치된 상태이며, 헌신적인 항일 투쟁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나마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한 많은 대동강의 새벽 햇살에 지는 이슬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갔지만 한국노동운동 역사상 최초의 고공 농성자로 이름을 새기고, 노동 여성 투쟁의 총총한 빛나는 별이 되었다. 일제의 민족 차별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한 그에게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그는 새로운 독립운동을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자 극동사범대에서 교편을 잡는다.
그러던 중 1930년대 스탈린 정권에 의한 강제 이주 때 가족을 찾아 카자흐스탄으로 갔다가 간첩죄로 체포돼 강제노동 수용소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1942년 숨졌다. 1998년 정부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34세에 “나는 조선 인민이 러시아 인민과 함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달성하는 경우에만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달성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조선의 자유와 독립을 이루게 하소서. 나는 온 세상 노동자의 자유를 위해 이렇게 죽어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9월 16일 새벽 4시 총살당했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