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쪼개지듯이 아프고 눈이 빠지는 것 같았다. 으슬으슬 춥고 온몸의 살이 다 아팠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 보니 A형 독감이란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서 가볍다는 증상이 이 정도인데, 예방주사를 안 맞은 사람은 어떨까 싶었다. 연말 송년 모임에도 가지 못하고 해를 넘겨서까지 헤매고 있다. 그런데 아내까지 감기에 걸려 손녀도 못 만나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집 팔기’, ‘아들 배우자감 확정’, 이 두 가지가 2016년 우리 가족 목표였다. 딸아이는 결혼을 했고, 아들도 언젠가는 결혼을 할 테니 집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해서 세운 ‘집 팔기’ 목표는 무난히 달성했다. 하지만 아들의 목표이면서 우리 가족의 목표이기도 했던 배우자감은 확정하지 못했다. 소개팅이 들어오면 만나고는 있지만 아직 결혼을 생각할 만큼의 상대는...
부부지간에는 어떤 비밀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다. 전문가와 학자들조차도 비밀은 부부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으므로 아예 만들지 말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자기 노출’이 지나치면 부부관계에 금이 간다.
비밀에는 순기능도 있다. 비밀은 타인의 비판이나 비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배우자나 부모, 자녀의 24시간을...
교문 밖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은 매년 수능 때가 되면 텔레비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뉴스다. 전국의 사찰과 교회, 성당에서 100일 기도다, 30일 기도다 해서 자식들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린다. 영험이 있다는 기도 명소를 묶어 관광상품으로 내놓는 여행사도 나타나고, 합격을 기원하는 보신각의 타종행사에도 신청자들이 쇄도했다고...
문 봄! 봄이가 왔다. 딸아이가 내 생일날, 손녀를 안겨 주었다. 내 생애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다. 갓난애가 이목구비가 얼마나 또렷한지! 새털처럼 가벼운 봄이를 안고, 새근새근 잠자는 모습, 방싯 웃는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보고 또 보게 되었다. 사위와 딸이 수시로 보내주는 사진을 자기 전에도 보고 아침에 눈뜨면서도 본다. 사돈 양반들, 외삼촌...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의 ‘졸혼’이 요즘 화제다. 혼인 관계를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개념이다. 작년에 일본의 유명한 코미디언이 텔레비전에 출연해 “졸혼을 졸업하려고 한다. 아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말하면서 졸혼이 떠올랐다. 최근 졸혼이 ‘또 다른 이혼인가, 새로운 결혼인가’로 우리나라에서도...
‘혼밥’, ‘혼술’이 요즘 화제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보다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훨씬 난이도가 높다는 ‘혼밥 레벨 테스트’라는 것도 나왔다. 혼자 영화를 보는 ‘혼영’, 혼자 여행하는 ‘혼행’, 노래방에서 혼자 노래 부르는 ‘혼창’까지, 신조어 따라잡기가 만만치 않다.
이런 말들이 생겨나기 전부터 난 혼자...
방송사에서 라디오 출연 요청이 왔다. ‘자식 뒷바라지, 어디까지 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자식의 사업 자금을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해 주었다가 전 재산을 날린 사연, 손주 뒷바라지로 허리가 휘었지만 그 공도 모르는 자식 때문에 몸져누운 부모들의 사연이 낯설지 않은 요즈음이다.
중학생, 초등학생 두 아들을 대학교 입학 때까지만 도와주자는...
바다낚시를 갔다온 후, 오랜만에 동네 목욕탕을 찾았다.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와 때를 밀어드리는 중년의 아들에게 자꾸 눈이 갔다. 물장구를 치는 개구쟁이 아들을 잡아 앉혀 몸을 씻기는 아빠도 보였다.
‘아버지도 날 저렇게 씻겨 주셨는데….’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중학생 때였던가, 내 등을 밀어주던 아버지가 예전 같지 않게 힘들어하시던 모습이...
전 세계인의 축제요 체육인의 꿈이었던 올림픽이 끝났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응원을 하면서 참으로 뜨거웠던 폭염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경기 결과나 메달에 관계없이 모든 선수와 그 가족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여자 마라톤에 출전한 북한 쌍둥이 선수를 비롯해 부부와 형제자매, 부자와 모자 등 가족이 함께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가 많았다. 여자 골프에...
아이들이 어릴 때 더워 죽겠다고 칭얼대면 난 늘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춥니? 하나도 안 춥지? 추웠던 지난 겨울을 떠올리면서 ‘춥지 않으니 얼마나 좋은가’ 생각해 봐. 아빤 그렇게 생각하면 더위, 참을 만하더라.”
그런데 올해는 그런 우스갯소리를 할 엄두가 안 날 정도로 덥다. 연일 찜통더위다 가마솥더위다 불볕더위다 불판더위다라며 야단들이다. 입추(立秋)를...
“학생 확실히 잡는 독사 선생, 초중고 개인 과외”.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아파트 게시판의 광고에 눈이 갔다. 스파르타식 수업을 통해 일류(?)대학교에 합격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다. 학원보다 수업 속도가 두 배나 빠르고 숙제로 일주일에 150~200문제를 풀게 한다고 했다. 숙제를 안 해 오면 잠을 안 재운다는 내용까지 버젓이 광고하는 과외 선생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눈을 뜨자마자 창밖을 보니 자전거 타기에 최적의 날씨였다. 비 온 뒤의 상쾌한 공기에, 해도 없었다. 간단하게 고양이 세수를 한 다음 자전거를 끌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신문을 뒤적이고 자전거 전용 옷과 배낭, 물을 챙기느라 미적거리다 보면 비가 쏟아지기도 하고 해가 쨍쨍 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타이어 공기도 미리 확인하고 브레이크도 점검해 두었기에...
배우 김성민이 마흔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부부싸움 후 욕실에서 넥타이로 목을 맨 뒤, 뇌사 판정을 받았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다 마약 복용 혐의로 연예 활동을 중단하고 자숙했던 김성민이었다. 2013년엔 네 살 연상의 치과의사와 결혼까지 했다. 하지만 다시 필로폰 상습 투약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지난 1월, 출소한 뒤에는 다시 재기하려고...
아내와 함께 포천의 광릉수목원을 찾았다. 양평으로 사무실을 옮기기 전에는 매주 갔던 수목원이다. 선생님을 따라 손에 손을 잡고 수목원을 견학하러 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병아리마냥 예뻤다. 유월이라 다소 더운 날씨인데도 숲으로 들어서니 전혀 덥지 않았다. 우리 부부가 가장 사랑하는 전나무 숲길은 여전히 한적하고 품위가 있었다. 즐겨 찾는 숲생태관찰로와...
“새벽/아버지의 칼을 피해 도망치던 어머니처럼/고주망태 아버지의 잠든 틈을 타 잽싸게 칼을 숨기던 형처럼/빠르게 지나가는 녀석의 그림자//돌아보면/모든 속도가 슬프다”
김주대 시인의 ‘슬픈 속도-도둑고양이 3’이라는 시다. 인기척을 느끼면 깜짝 놀라 번개처럼 몸을 숨기는 고양이의 ‘속도’에 가슴이 아프다고 시인은 얘기한다. 공포에 떠는 생명체가 자기...
어버이날, 마음 한구석이 헛헛했다. 사위와 딸이 마련해 준 첫 번째 어버이날인데도 어머님 없이 맞은 어버이날의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장모님을 위해 우리 부부가 마련한 식사 자리에서 처형이 굳이 계산을 하겠단다. 고아가 된 내가 불쌍해서 자신이 계산하는 거라고 해서 마주보며 웃었다.
재작년, 40년 만에 아버님 옆에 묻히신 어머님은 자식을 삶의 전부로...
딸이 입덧이 심하여 집에 한 1주일 와 있었다. 속이 메스꺼워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음식을 만들면 입덧이 더욱 심했다고 했다. 그런데 친정에 오더니 입덧도 덜하고 잠도 잘 잤다. 딸아이는 모든 것이 친정의 힘이라고 했다. 엄마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편하다는 것이다.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가 그것이 그리웠단다. 아내와 무슨 얘기가...
아이들 직장 때문에 서울로 이사를 갔다가 5년 만에 분당 집으로 다시 들어왔다. 결혼 35년에 스무 번도 넘게 이사를 한 셈이다. 지방 발령과 유학 때문에 이사를 하기도 했지만 전셋집에 문제가 생겨서도 두어 번 집을 옮겼었다.
“결혼 후 이사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한 거냐?”며 아내는 한번 세어보자고 했지만 내가 극구 말렸다. 그 많은 이사에 도움을 준 게 별로 없었기...
누가 뭐래도 이제 봄이다. 나비가 창을 두드리던 지난주, 두 평도 채 안 되는 텃밭을 갈아엎었다. 매년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을 테지만 작년과 올해 봄은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았다. 연구소를 1년 전 양평으로 옮긴 탓일 게다. 사는 집이야 아내에게 결정권을 주지만 사무실은 자연 가까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퇴근을 어떻게 거꾸로 하느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