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철의 아하!] 되살아나는 외환위기 악령

입력 2014-10-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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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논설실장

외환위기의 악령이 다시 어른대고 있다. 세계 7위에 빛나는 외환 보유고와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 행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덧없는 기우에 불과할까. 천만에. 환율은 예리한 양날의 칼이다. 쓰는 사람에 따라 복덩이가 되기도 하고 대적하기 힘든 흉기가 되기도 한다. 요즘 위험한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악령이 발호하면 악몽 같던 외환위기나 2008년 리먼 사태보다 훨씬 더 매서울 것이다. 버팀목인 가계 부문이 1000조원대 빚더미에 깔리면서 복원력은 약해진 반면 폭약은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환율은 1980년대엔 복덩이였다. 1985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발단이 된 플라자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후 국제 공조로 일본 엔화가치가 수직급등하는 동안 한국경제는 원저(원화가치 하락), 저금리, 저유가 등 이른바 3저 호황을 구가했다. 국제적 변화에 잘 올라탄 경우다.

반면 1990년대는 국제적 흐름에 역주행하다 벼락을 맞았다. 1995년 일본에서 고베 대지진이 나면서 엔고가 강한 엔저로 급선회했다. 같은 해 취임한 로버트 루빈 미국 재무부 장관은 강한 달러ㆍ고금리 정책을 밀어붙였다. 강한 달러와 약한 엔화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지구촌은 신흥국의 달러 부족 사태에 떨어야 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억지스러운 원화 고평가를 고집했다. 2년 뒤 파산 위기에 몰렸다. 동남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거쳐 브라질까지 이어진 루저의 비참한 행렬에 한국도 끼어야 했다. 새로운 출제 경향에 적응하지 못해 우등생이 낙제생으로 추락한 것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극복에 관한 한 발군의 모범생이다.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빌린 302억 달러를 44개월 만에 다 갚았다.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은 ‘배째라’ 수법으로 꾼 돈의 절반 이상을 떼먹었지만 한국은 온 국민이 금을 팔아 이자까지 청산했다. 리먼 사태 때는 미국 중앙은행(FRB)에서 융통한 410억 달러도 15개월 만에 깨끗하게 갚았다. 베스트 채무자였다.

또한 자기 반성문을 쓰는 심정으로 발병 원인을 찾아 개혁했다. 금융은 물론 기업 문제까지 과감하게 수술대에 올렸다. 그렇다고 국내 요인이 환란의 전부라고 여긴다면 너무 자학적이다. 음모론을 포함해 다양한 이유와 해석이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원화를 둘러싼 국제 환율 흐름이다. 수출 의존도는 높은데 원화는 동네 화폐에 불과하고 시장도 작아 환율 변화에 따른 충격파가 크기에 더욱 그렇다.

20년 전 한국경제를 외환위기로 몰아넣었던 강한 달러-약한 엔화 구조가 재현되고 있다. 리먼 사태로 지존의 자리가 흔들렸던 달러화가 6년 만에 슈퍼 달러로 귀환할 채비를 하고 있는 반면 일본과 유로존은 경제회복의 실마리를 잡지 못해 추가 양적 완화를 해야 할 처지다. 고약한 박자에 스텝이 엇갈리면 또다시 개미지옥에 빨려들 수 있는 위험한 구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 바람에 사실상 달러·엔 환율의 지배를 받고 있는 원·엔 환율이 지난 6년 만에 최저 수준인 950원대로 떨어지며 엔저 피해가 본격화하고 있다. 엔화가 아베노믹스로 원화보다 더 빠르게 절하됐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수출 상위 100대 품목 중 서로 겹치는 품목이 55개나 된다. 내년엔 800원대 중반까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내년엔 원화 고평가에 따른 역J커브 영향이 본격적으로 나타나 경상수지가 급락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수출 주력 품목 기업들의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의 금리 인상은 가장 경계해야 할 뇌관이다. 경기회복에 힘입어 양적 완화를 종결한 뒤 내년쯤 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본격적 경기회복에 앞서 거품을 빼기 위한 정지작업이다. 그러나 인상 드라이브가 시작되면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 중심으로 외국인 투자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미·일 간 금리차로 인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하면서 엔저가 더 고착화될 수 있다.

환율은 국가대항전 같아 대응이 무척 어렵다. 외환당국은 더욱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나 최근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인하 등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양대 기관의 한가한 기싸움 같다. 외환위기의 악령을 차단할 단단한 공조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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