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에 대한 우려가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새로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내수 살리기’를 전면에 내걸었다. 한국은행은 최근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4.0%에서 3.8%로 0.2%포인트 하향조정하며 ‘내수부진’을 이유로 들었다. 수출 실적이 곧 경제 성적과도 같았던 과거와 달리 내수 부문이 국가경제 성장률의 발목을 붙잡은 셈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내수 부문을 현 시점에서 한국경제의 ‘보루’로 꼽는다. 정부의 재정지출 여건은 날로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수출도 대외여건의 악화로 경제 전반의 회복세를 선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내수마저 침체된다면 경기부진이 ‘소프트패치’를 넘어 ‘더블딥’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소프트패치는 경기 회복 국면에서 회복세가 일시적으로 둔화되는 현상을 말하지만 더블딥은 경기가 회복력을 다시 상실하는 심각한 상황을 말한다.
◇‘소비불능’ 빠진 가계… 쓸래야 쓸 돈이 없다 = 전문가들은 내수 침체의 원인을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진행된 가계소득의 정체와 그에 따른 가계소비의 심각한 부진에서 찾는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수출기업이 좋은 실적을 기록할 때는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던 고질적인 불균형 문제가 수출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표면화됐다는 시각이다.
2005~2007년 연평균 4.7%였던 가계소비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09년 감소했다가 2010년 4.4%로 잠시 오른 뒤 2011년 2.7%, 2012년 1.2%, 2013년 1.4%로 급격히 하락했다. 경제성장률이 2011년 3.7%, 2012년 2.3%, 2013년 3%인 것과 비교하면 가계소비 증가가 경제성장 속도의 절반 수준으로 위축된 셈이다.
소비가 이뤄지지 않았던 이유는 당연히 ‘돈이 없어서’다. 우선 들어오는 돈 자체가 줄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GDP 대비 민간소비 비중이 2003년 55.7%에서 2013년 50.6%로 10년 새 5.1%포인트 감소했다. 다시 말해 지난 10년간 나라 전체의 돈벌이에서 가계가 가져가는 파이가 10분의 1이나 줄었다는 뜻이다. 여기에 ‘번 돈 가운데 실제 쓸 수 있는 돈’(가처분소득)과 ‘씀씀이’(소비성향)도 지난 10년간 모두 크게 하락했다. 가계가 번 돈의 대부분은 가계부채 상환, 불안한 노후대비, 자녀의 사교육비 등으로 사실상의 고정지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쓸래야 쓸 돈이 없는 것이다.
가계의 소비여력을 확충하기 위해 현오석 전 부총리의 1기 경제팀에서는 고용률을 높이는 것이 한 가지 접근방식이었다. 하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다. 취업자 수는 늘렸지만 임금상승률은 작년보다 오히려 줄어 전체적인 구매력 상승 효과가 미비했던 것. 저임금을 받는 임시직이나 비정규직 등의 일자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기변동으로 이들의 실직이 뒤따르는 경우 민간소비가 더욱 정체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경제 단물 기업쏠림 심화… 가계소득 늘려야 = 가계로 향하는 돈이 줄었다는 것은 그만큼 GDP성장의 단물이 기업으로 쏠렸다는 얘기가 된다. 실제 정부와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법인의 가처분소득 증가율(9.4%)은 개인(5.5%)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사실 투자와 고용을 통해 정상적으로 시장에 풀리기만 한다면 기업이 개인보다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지난해 내내 정부 경제팀의 내수활성화 접근 방식이 ‘기업투자 유도’에 초점이 가 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업으로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금고에 쌓였다. 투자는 정부의 기대만큼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최근에는 최경환 부총리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는 가계가 저축을 하고 기업이 그 돈을 적절히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가계에 돌려주는 것이 정상적인 구조임에도 지금은 가계가 빌려 쓰고(가계부채) 기업이 저축(사내유보금)하는 게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기업의 과도한 현금비축을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내수활성화를 위한 정책으로 재정·통화정책을 통한 단기부양을 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최 부총리는 가계소득을 높이기 위해 대기업에 잠겨 있는 자금을 가계 쪽으로 돌리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같은 구상에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가 따른다. 현 시점에서 규제완화를 통한 투자 촉진보다는 서민의 구매력을 높이는 정책이 효과적이라는 시각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그동안 공급주의 경제정책을 폈지만 이제는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