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형 “‘디셈버’, 너무 심한 편곡은 편곡이 아니었음을” [스타인터뷰]

입력 2014-03-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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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디셈버’ 무대 위 배우 박건형(사진=뉴시스)

아린 사랑에 눈물 짓던 박건형은 무대 밖 모습도 그대로였다.

잃어버린 사랑을 살아있는 꿈결처럼 평생 그리워했던 뮤지컬 ‘디셈버’ 속 주인공 지욱의 사랑은 박건형의 연기로 관객에 아련하게 다가왔다. 1980년대 대학생이던 지욱은 연인을 눈 앞에서 잃고 수십 년이 흘러도 마음에서 쉽사리 떠나보내지 못했다.

“1막 속 대학 시절, 지욱이 사랑한 여주인공 이연의 모습은 그에게 얼마나 선명하게 남았던 걸까요. 죽은 이연이 남긴 20년 전 편지가 전해졌을 때…지욱은 이 사람도 날 너무 사랑했다는 걸 깨닫죠. 지금 이 사람이 없어 단순히 슬프다는 게 아니라, 밀물처럼 지나간 세월이 확 마음에 들어올 것 같아요.”

사랑을 가슴에 깊이 품은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한 박건형은 무대를 회상했다. 그리고 자신이 해석한 인물의 감정을 관객에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음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내 안에 사랑이 그리고 그 사람이 분명히 남아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졌다고 얘기한다면, 그 자체로 잊혀진 것으로 선명히 기억돼버릴 것 같았어요. 그런 아픔으로만 치우치고 싶지 않았어요. 한 여자를 못 잊고 살지만, 웃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돌아가는 관객의 발걸음이 무겁게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슬픈 가운데 밝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박건형의 연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가시로 남은 아픈 감정을 애써 눌러 내리는 듯해 더욱 성숙함을 엿보이게 했다. 또, 이는 더블 캐스트인 김준수의 연기와 차별점으로 여겨졌다. 꾸준한 인기를 다져온 뮤지컬 스타와 티켓 파워를 가진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를 내세운 ‘디셈버’의 캐스팅에 개막 전부터 높은 관심이 줄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준수와 전, 나름대로 각자 고유한 매력이 있죠. 처음부터 상대평가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만일 비교된다면 제가 가진 좋은 점을 발전시키면 되죠. 그런 건 누구라도 서로 질투할 필요가 없어요.”

박건형은 ‘디셈버’ 속 앙상블을 포함한 모든 배우의 조화가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연진이 주말을 제외한 일주일의 대부분을 오전 10시~오후 10시까지 연습했기에 내 연습이 끝났다한들 그 열정을 본 이상 집에 갈 수가 없었다”고 언급했다.

“앙상블과 더불어 주연까지 조화로움이 잘 이루어져야 했어요. 너도 나도 튀어 보이려고 한다면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도리어 잘 묻혀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죠.”

▲지난해 뮤지컬 ‘디셈버’ 연습실 공개 현장에서 배우 박건형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이처럼 배우들의 열의와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높은 완성도를 향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창작 뮤지컬로서 ‘디셈버’에 대한 혹평이 쏟아졌다. 박건형은 배우로서 이 점을 아쉽게 생각했다.

“창작에 대한 기대를 많은 분이 하셨죠. 그만큼 수준에 못 미쳤을 때 느끼는 실망감이 크다는 게 이번에 확 와닿았어요. 국내 뮤지컬계는 최근 라이선스 작품이 활성화 됐고, 관객들의 수준도 높아졌다고 하죠. 하지만 창작 뮤지컬에 관해선 10년의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미 유명한 작품들이 그렇듯 말이죠. 이제 갓 태어난 작품에 터무니 없이 높은 잣대를 대는 것은 참 아쉬웠어요.”

‘디셈버’는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지난해 뮤지컬계 트렌드로서 확고한 영향력을 과시했던 고 김광석의 노래가 담긴 주크박스 뮤지컬 대작으로서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과연 서울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대극장을 채울 김광석 노래는 어떻게 재탄생할지 관심을 끌었다. 막상 작품의 뚜껑이 열리자, 일부 곡이 분위기나 상황 전개와 어울리지 않아 아쉽다는 반응도 줄이었다.

“‘너무 심한 편곡은 편곡이 아니었음을’ 이라고나 할까요. 원곡을 훼손한다기보다 창작극이 그 수위를 조절하는 게 참 어려워요. 소박한 듯 강단 있는 김광석의 노래를 살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저 역시 배우로서도 단촐하지만 외로워보일 수만은 없는 그의 노래가 가진 맛을 내기가 힘들었죠.”

박건형과 서울예대 선후배 사이인 장진 감독의 연출은 ‘디셈버’의 빼놓을 수 없는 관심거리였다. 영화 연출과 시나리오로 유명한 장진의 첫 뮤지컬 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저한테만 빼고 연습 당시 형(장진 감독)은 배우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날렸죠. 제겐 기본적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 이번 작품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형과 함께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더욱 배우들에게 장진 감독의 진심을 알리고, 그 속에서 나오는 비판이라고 다독였죠.”

최근 국내 뮤지컬계 배우들이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토로한 박건형은 작품 전체를 위한 보다 더 큰 그림을 중시했다. 이 점이 무대를 찾는 관객에게도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무대를 향한 진심을 이야기하는 그의 말은 울림을 주었다.

“연기를 한다는 게 전 만족스러워요. 공연을 만든다는 건 지우개가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사라지는 일이잖아요. 그렇지만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고 가슴 속에 남는 것이기에 제가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가슴 벅차요.”

그는 “대본 한 권, 악보 한 권 그리고 모든 동선을 숙지해 온전한 두 다리로 2~3시간을 종횡무진한다는 것”이라며 뮤지컬 연기의 참맛을 전했다.

“뮤지컬 배우로서 일을 가장 큰 매력은 한 번 시작하면 누구도 날 멈출 수 없다는 것이죠. 그만큼 모든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지만, 부담감과 압박감으로 느끼기보다 공연을 즐긴다면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보는 관객도 이러한 배우의 태도에 공연 한 편 이상의 의미를 가져갈 수 있어요. 삶의 태도로 ‘나도 저 배우처럼 열심히 살고 싶다’라고 느끼게 해드릴 수 있다면 말이죠.”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일이 관객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건 박건형을 지치지 않는 이유였다.

“무대는 살아있어요. 공연이 시작되면 살아 움직이고, 관객이 빠지고 나면 잘 준비를 해요. 종종 빈 공연장에 내일 공연을 위해 사람들이 돌아다니죠. 공연이 끝나고 귀에서 와이리어스(무선 음향장치)를 뺄 때 ‘고생했어. 수고했어’ 라고 보통 말해요. 그렇게 말하면 꼭 일한 것 같지 않나요. 그러지 말고 ‘행복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작은 것에 감사함을 느낄 줄 알고 소소한 행복함을 안다는 것 자체가 내 삶 전체를 고맙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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