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칼럼]기술평가에 대한 오해

입력 2014-02-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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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화 한국벤처협회 명예회장

정부에서 기술 평가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 듯하다. 바로 ‘TCB(Technology Credit Breau)’라는 공공 기술 평가기관을 설립해 금융권에 반영을 의무화하고 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벌칙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술 금융의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과연 기술에 대한 객관적 단일 평가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의 금융 경쟁력이 여전히 WEF와 OECD 경쟁력 하위권에 머무르는 이유가 다시 입증되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무리한 정책 추진에 대한 저간의 사정은 이해가 된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해 기술 금융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기술가치만 제대로 평가되면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오해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는 생각과 흡사하다. 기술가치를 객관적으로 단일 수치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술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을 입증할 뿐이다.

아직도 많은 발명가들이 무한 동력장치를 만들었다며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물리 법칙에 위배되므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학자들은 알고 있다. 아직도 많은 분석가들이 과거 주식 자료를 분석하면 미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그러나 역시 복잡계에 대한 이해 부족의 결과다. 전 세계 벤처 캐피털 업계에 벤처기업의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투자하자는 주장을 펴면 우스갯소리로 들을 것이다.

기술 사업화의 주체인 벤처기업의 가치를 공공기관이 단일 평가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초기 기업은 복잡계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분석해도 객관적 가치 산정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불확실한 기술이 불확실한 기업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사업화되는 과정은 객관화가 불가능하므로 벤처 캐피털은 항상 단일 기업이 아니고 포트폴리오로 투자하는 것이다. 바로 복잡계에 대한 대처 방안이다.

특허와 기술은 벤처기업보다 더 불확실한 영역이다. 과거 모방경제 시대 산업의 추격 기술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적으므로 기술가치의 수치화가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창조경제 시대의 산업 선도 기술을 단일 수치로 객관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단지 주관적 가치 판단에 따라 수많은 벤처 캐피털이 평가하고 투자하고 있을 뿐이다. 복잡계의 대안은 바로 다수의 주관이 모여 판단하는 크라우드 평가다. 단일 평가기관이 아니라 다수의 평가기관들의 주관적 판단들이 모여 시장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금융기관들이 기술에 대한 투자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기술의 객관적 가치 부족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는 복잡계의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 선후(先後) 관계에 대한 오해일 뿐이다. 기술의 가치가 평가돼야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형성되면서 기술 가치가 접근한다는 것이 행동경제학의 결론이다.

단언컨대 공공기관에 의한 기술의 가치 단일평가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객관적 가치를 제공하려는 관료적 발상에서 기술 시장을 형성하려는 시장적 발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단일 평가 모델은 고비용 저효율의 작동이 불가능한 구조다. 지금까지 기술 금융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평가기관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 시장의 미형성에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기술 평가기관은 기술보증기금, 중소기업진흥공단, 산업은행 등 이미 10여 군데가 있다. NTB(국가기술은행) 등 활용 가능한 DB들이 있다. 이들을 활용해 시장을 만들어 가면 된다. 시장은 개방과 공유에서 출발한다. 정부3.0 패러다임에 걸맞게 국가의 기술 DB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자. 다수의 민간 벤처 캐피털과 엔젤 투자자들도 참여 가능하다. 이제 만들어질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서 크라우드 소싱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세상은 개방과 융합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정부 혹은 공공기관의 역할은 플랫폼 제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정부3.0의 기본 철학이 아닌가. 너무 친절한 정부가 되지 말자. 사전 통제에서 사후 평가로 가자. 세계 금융제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가는 패러다임 변화의 핵심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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