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오리털파카보다 소중한 것 -신병철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사원

입력 2014-02-04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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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벽안(碧眼)의 수녀 두 명이 소록도에 정착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외딴 섬으로 온 이들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40년 동안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몇 년 전 홀연히 한국 땅을 떠났다. 자신들이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할 수 없어 환자들에게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난다는 것이 고별의 이유였다. 이들의 세간은 방안에 남겨진 작은 장롱 하나가 전부. 몇 해 전 알려진 내용이지만 다시 생각해도 코 끝이 찡해진다.

필자는 수개월 전부터 오리털파카를 사고 싶었다. 꼭 없어도 되는 물건인지라 제 돈 내고 사기 아까워 가끔 마트에 갈 때마다 할인 행사장을 서성거리는데 그쳤다. 그런데 이번 설 연휴 기간, 아이들 먹일 과일이나 살 겸 들린 대형마트에서 마음에 꼭 드는 저렴한 파카가 눈에 들어왔다. 유명 메이커의 재고 상품을 무려 75%나 할인된 가격에 팔고 있었다.

“입어나 보고 가라”는 매장 직원 권유에 못 이겨 얼떨결에 걸쳐 보니 옆에 있던 아내도 “잘 어울린다”며 구매를 권했다. 가게 점원도 몇 개 안 남았다며 구매를 부채질했다.

왠지 수지 맞은 것 같은 생각에 얼른 집어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순간 문득 과거의 순간이 떠올랐다. 청년 시절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겠다’는 작은 다짐을 실천하기 위해 가지고 있던 옷들 중 몇 벌을 추려 한 지하철역의 걸인에게 건넨 적이 있다. 이후 세월의 무게에 꺾여버린 나의 다짐과 각오가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결국 파카를 포기하고 다음 날 동일한 금액만큼의 소액 기부를 했지만 마음속엔 여전히 부끄러움 반, 아쉬움 반뿐이다. 나에게는 불필요한 것들이 엄동설한을 힘들게 버티는 이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벽안의 수녀같이 정말로 멋진 봉사와 희생의 삶을 음지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사실도 참으로 기쁘고 다행한 일이다. 그래서 이 겨울마저도 훈훈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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