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법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입력 2013-12-2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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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법원은 늘 바른 판단을 할까? 그리고 그 결정은 늘 정당할까? 그렇지 않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던 일에서부터 전관예우 관행에 여론 눈치 보기 등 믿지 못할 구석이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법원과 그 법원의 판단과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부당한 압력을 행사해서도 안 되고 그 판단이나 결정을 무시하거나 무력화해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쟁을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결정짓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는 상상하기조차 두렵다.

법원은 힘이 약한 사람에게, 또 진보적 입장을 지닌 사람에게 더 소중하다. 진보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의회는 늘 표와 정치자금을 따라간다. 소수를 위한 결정이나 진보적 결정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행정부 역시 정치인이 그 수반이 되는 데다 그 아래에는 보수적 성향의 관료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다르다. 선거를 의식할 이유도 없고, 관료체제나 조직 내의 집단문화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롭다. 자연히 소수를 위한 결정이나 진보적 결정의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된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소수를 위한 진보적 결정이 법원에 의해 이뤄져 왔다. 학교에 있어 흑백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하는 등 인종차별과 관련해 진보적 결정을 내려 온 미국 대법원은 그 좋은 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국의 법원들이 노동자와 소수인종 그리고 동성애자 등 소수를 위한 진보적 결정들을 내어 놓고 있다. 의회와 행정부는 꿈도 꿀 수 없는 결정들이다.

지난 일요일 하루 종일 경찰과 민주노총의 대치상황을 봤다. 착잡한 마음에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우리에게 법원은 무엇인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저렇게 어렵게 집행돼야 하는가?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나 이제 막 제 걸음을 시작하는 법원, 만일 끝내 집행하지 못하게 되면 법원의 권위는 어떻게 되나?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노조의 주장이 100% 옳다고 하자. 철도 민영화는 무조건 나쁜 것이고, 정부는 실제로 민영화할 것이면서도 마치 하지 않을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하자. 또 성탄절과 새해를 앞둔 시점에 제대로 대화도 하지 않은 채 체포다 뭐다 하여 야단을 친다고 하자. 그러나 어쨌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하지 않았나. 누가 옳든 그르든, 또 무엇을 두고 어떻게 대립했든 일단 이에 응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노조의 주장처럼 스스로 약자라 생각했다면, 그리고 자신들보다 약자인 사람들을 생각했다면 법원의 권위를 좀더 생각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혁명을 해서 다 뒤집어엎는 상황이 아니라면 힘없는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찾아가야 할 곳이 어디겠는가. 국회? 대통령? 법원의 권위를 내려앉혀 놓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법원이 늘 약자를 위한다는 말도, 늘 진보적 입장을 지닌다는 말이 아니다. 그나마 그 가능성이 크기에 하는 말이다. 부탁이다. 노조는 그 가능성을 죽이지 말았으면 한다. 스스로를 위해, 또 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법원의 권위를 함부로 해치지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법원의 결정이니 두말 없이 따르겠다고 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하여 법원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한편, 약자와 소수를 위한 진보적 결정의 가능성을 더 키우면 어떨까. 필요하면 시위도 싸움도 그냥 그대로 계속하면 될 일이다. 노조 간부 몇 사람 체포되었다고 더 이상 못할 시위고 싸움이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노조 입장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야당도 그렇다. 법원의 영장 발부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영화가 어쩌느니, 대화를 더 했어야 했다느니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따지면 된다. 그러나 그런 문제 이전에 법원이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법원이 잘못한 부분이 없다면 영장집행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법원의 권위를 세우는 데 일조해야 한다.

소동의 한가운데서 자칫 흘려보내기 쉬운 질문 하나를 던진다. 법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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