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국회, 박물관으로 갈 때가 됐다

입력 2013-12-1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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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ㆍ전 청와대 정책실장

우스개 하나 소개하자. ‘마누라’와 ‘국회의원’이 닮았다고 한다. 별 하는 일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닮았고, 내가 찍기는 했는데 갈수록 마음에 안 드는 것이 그렇다고 한다.

정기국회가 문을 닫는 오늘, 이 우스개가 생각난다. 그 결과가 너무 한심하기 때문이다. 예산안 처리를 못한 것은 물론, 회기 막판에 이르기까지 단 한 개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했다. 그래도 욕먹고 있는 줄은 아는지 어제오늘 건수 채우기에 바빴다.

이래서 되겠는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 매일같이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문제를 마주한다. 당연히 이를 반영하는 합리적이고 시의적절한 결정들이 내려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우리의 목을 죄고 있는 현안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병이 들어도 중병이 들었다. 덩달아 행정부까지 비실비실한다. 의미 있는 의제와 씨름을 하거나 대안을 내어놓는 모습이 아니다. 일을 하건 말건 야당은 딴죽을 걸게 돼 있고, 여당은 어정쩡 넘어 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나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일어나는 의미 없는 싸움을 따라가기 바쁘다. ‘이건 아니다’ 하면서도 보도와 토론이 다 이를 따라간다. 결과적으로 많은 경우 의미 있는 문제를 사회적 의제나 정책의제로 만드는 데 실패하고 만다.

걱정이다. 국회가 국가의사결정 체계와 생태계 전체를 오염시키고 있다. 이러다가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국가의사결정 능력의 저하는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각종 갈등을 심화시키는 등 우리 사회 전체를 흔들어 놓을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주적 질서 그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하기 좋은 말로 ‘물갈이’를 해서 못난 국회의원들을 확 쫓아내 버리면 될까? 또 정권 교체나 세력 교체를 하면 될까?

아닌 게 아니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소리를 하며 정치권과 국회로 진입했다. 여야 모두 제법 큰 폭의 물갈이를 했고, ‘혁신과 통합’이나 이런저런 연대를 통해 개혁적 인사들이 진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이렇다.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문제는 오히려 더 깊은 곳에 있다. 어찌 보면 오늘에 있어 국회 그 자체가 모순이다. 국회가 다루는 정책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의회제도가 발달했던 농경시대나 산업사회의 그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그 수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졌고, 그 속에 얽힌 이해관계와 신념의 문제도 훨씬 더 복잡해졌다. 해결에 있어 높은 전문성과 신속성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문제들, 즉 구조적으로 복잡하고 전문성과 신속성까지 요구하는 문제를 국회가 대량으로 제때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선거에 의해 구성되는 정치적 기구이자 대화와 타협의 장인 이상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하겠다고 덤볐으니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떨어지는 신뢰에 면피라도 해 볼까 상대를 욕하게 되고, 이것이 다시 정치적 냉소를 부른다. 결국 역량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점점 더 멀리하게 되고, 국회는 더 이상 갈 데 없는 막장이 된다.

‘의회는 농경시대의 유물이다. 이제 박물관으로 갈 때가 되었다.’ 나이스비츠의 책에 소개된 어느 국회의원의 독백이다. 우리는 이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이 독백에서 우리는 국회의 병을 고칠 약을 찾아야 한다. 국회가 지닌 내재적 한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결론이다.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덤비면 지금의 꼴을 면할 수 없다. 다른 나라와 같이 노사정위원회처럼 조합주의적 성격을 지닌 기구나 지방정부에 그 기능을 적절히 나눠 줘야 한다. 또 있다. 선거와 정당 등 기존의 정치 메커니즘에만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숙의민주주의 모델 등 대의민주주의의 틀을 보완하는 다양한 대안들에 관심을 둬야 한다.

국회의 문제를 사람의 문제로만 몰아가는 정치집단이나 정치꾼들이 있다. 이들의 주장은 늘 그렇다. ‘저들이 해서 엉망이다. 우리가 하면 잘할 수 있다.’ 좋게 보면 ‘무식’이고, 나쁘게 보면 ‘선동’이다.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무식’이면 깨우쳐 주고, ‘선동’이면 꾸짖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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