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밀양은 오래 전부터 ‘잎들깨’ 생산으로 유명한 곳이다. 국내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것은 물론이고, 향과 맛이 뛰어나 타 지역 깻잎에 비해 가격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 생산농가 고령화로 생산 및 품질 관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잎들깨는 다른 쌈 종류에 비해 열에 약한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신선도를 유지시키는 것이 품질관리의 가장 큰 난제다. 그러다보니 생산기간에는 온 농가들이 납품시간을 맞추기 위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작업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갈수록 생산농가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노동력은 줄이고, 품질은 유지시켜, 소득증대에 기여할 수 있는 생산관리 기술이 필요해졌다.
국립식량과학원은 고품질 잎들깨 품종을 보급하여 품질은 향상시키고, 생산 후에는 품질관리 기술(예냉처리시설)을 보급하는 연구를 추진했고, 농가에 현장 접목을 시도했다.
▲삶의 질과 잎들깨의 신선도, 두 가지를 모두 지켜라
본 사업을 통해 농가에 보급된 ‘수확 후 관리시설’ 모델은 농산물 저장 및 예냉처리 시 신선도 유지기간을 7일에서 14일로 연장되는 효과가 있으며, 일반세균의 발생을 80% 가까이 줄이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선도 유지기간이 늘어났다는 것은 농가에서 시간을 조절해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국립식량과학원 이명희 박사에 따르면 “본 연구사업은 그동안 잎들깨 생산농가의 다양한 요구사항을 모니터링 해 추진한 것으로, 농가가 원하는 시간에 깻잎을 세척하고 예냉처리하여 포장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말까지 밀양과 금산에 20여개가 넘는 관리시설을 보급하여 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며, 내년에는 경산과 밀양 내 다른 농가로도 확대 보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수확 후 관리시설 제작, 농가 현실에 ‘딱’ 맞게
본 연구사업의 현장접목은 밀양지역 서용판 농가 한 곳을 대상으로 추진됐다. 500평 정도로 영농규모가 크지 않으나, 잎들깨 재배경력은 10년 된 농가다. 병충해와 열에 약한 잎들깨의 특성을 잘 알고 있으며, 유통단계에서 신선도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숙련된 재배농가다.
연구사업은 예냉시설을 갖춘 ‘수확 후 관리시설’ 모델을 보급하여 생산되는 양을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매뉴얼을 구축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보급되는 수확 후 관리시설 모델은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만 했는데, 우선 적은 규모의 재배농가에 맞는 크기,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수시로 작업이 가능한 설비, 예냉시설과 병충해, 세균 등의 검출을 제어할 수 있는 시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설계됐다. 아울러 농가의 규모가 적기 때문에 설치비용이 높지 않아야 하며, 경제적인 관리비도 중요한 고려사항이었다.
이 때문에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한 모델을 구축했으며, 여름에는 13도, 겨울에는 10도의 적정온도유지를 위한 냉난방시설, 잎들깨 보관을 위한 예냉시설, 세척설비, 세균제어설비 등을 고려하여 제작되었다. 2~3명 정도의 가족단위 노동력이 주를 이루는 재배농가의 입장에서는 최적의 설비가 구비된 것이다.
▲품질도 오르고, 삶의 질도 오르고
본 사업에 참여한 후 무엇보다도 좋아진 것은 서용판 부부의 삶의 질이다. 수확 후 관리시설 모델을 접목하기 전에는 들어오는 주문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주문량이 많은 날은 새벽부터 생산해 밤늦게까지 포장작업을 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일주일이면 7일 밤낮을 작업하느라 개인적인 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하지만 강소농 연구사업에 참여한 이후로 계획적인 생산 및 품질 관리가 가능해 졌다. 주문량을 예상해 미리 생산해서 보관할 수도 있고, 원하는 시간에 작업할 수 있으니 시간과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힘이 부치는 게 가장 큰 걱정이었다는 서용판 농가는 “이 사업을 추진하고 나서 삶의 여유가 생겼고 체력도 좋아졌다. 이게 가장 좋은 점”이라고 말했다.
▲농업인의 삶을 생각하는 기술보급
본 연구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농업인의 삶의 질 개선이 이뤄지는 생산관리 기술의 보급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좋은 품질의 잎들깨 생산을 위한 새로운 재배법을 농가에 적용하고, 농가는 수확한 농산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소비자에게까지 전달하는 과정이 이상적으로 정리되어, 농가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엽채류의 수확 후 관리를 위한 노동력 감소가 가능하다는 점과, 유통 중 품질유지 노하우를 농가가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만하다. 7일 정도 소요되던 작업 시간이 5일로 감소하면서 생긴 여유는 노동에 지친 농촌, 고령화로 늘 노동력 문제에 고민하고 있는 농촌을 혁신하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이명희 박사는 “농가가 요구하던 기술과 설비였기 때문에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상황이며, 농민들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GAP 인증을 통한 브랜드화를 꿈꾸다
구체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본 연구사업을 시작한 밀양 지역에서는 기술을 접목할 농가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금산에서는 이미 20여개의 잎들깨 생산 거점단지를 조성을 결정했고, 경산 지역도 10여 개의 농가에 수확 후 관리시설 모델을 현장접목 할 예정이다.
본 연구사업에 참여한 서용판 농가는 이미 GAP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브랜드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최고 품질의 잎들깨 대표브랜드를 개발하여 홍보하는 체계까지 구축하면 영세했던 들깻잎 생산 농가는 사업성까지 확보하게 될 것이다.
* 소비자 기호에 적합한 잎들깨 생산에 대해 관심 있으신 농가는 국립식량과학원 이명희 연구사(055-350-1210)에게 문의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