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옥 금호터미널 대표는 지난 7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두 번이나 같은 말을 했다. 순간 기자는 귀를 의심했다. 실언이 아니었다. ‘동양그룹 처럼 안 되려면 무조건 금융지원 받아서 살리고 봐야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날 기 대표의 발언 배경은 200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호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산업은행과 약정을 체결했다. 금호는 대우건설의 지분 72.19%를 주당 2만6200원씩 6조4200억원에 인수하면서 절반이 넘는 3조5000억원을 재무적투자자(SI)들로부터 조달했다. 이때 금호는 SI들에게 2009년 11월까지 연이율 9%를 보장하는 풋백옵션을 체결했는데, 같은 해 6월 대우건설 주가가 1만1000원대까지 떨어지자 보존해줘야 할 차액이 4조원에 달했다.
재무상태가 극도로 악화됐다. 하지만 금호는 계열사들의 회사채 발행과 금융권의 힘을 빌려 대한통운을 인수하는데 또 다시 4조1000억원을 쏟아붓는 무리수를 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빚에 허덕이던 금호는 결국 대우건설, 대한통운을 2009년, 2011년에 각각 매각했지만 깊은 상처가 남았다. 그 여파로 현재 금호는 2010년부터 4년째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 중이다.
최근 벌어진 동양그룹 사태를 보면 기 대표의 이날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동양은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산업은행 등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금융권이 이를 받아줬다면 계열사간 ‘부실 돌려막기’에 따른 금융권 피해 등 더 끔찍한 상황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2004년 이후 최고경영자(CEO)로서 금호와 부침(浮沈)을 함께한 기 대표 발언의 ‘위험 수위’가 높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