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지난 4월 연매출 500억원 이상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을 올리겠다고 천명하더니 불과 석달 만에 당초 계획보다 대기업 세무조사를 줄이기로 입장을 바꿨다. 경기도 안 좋은데 기업을 옥죈다는 비난을 듣던 국세청이 이젠 지하경제 양성화 의지가 후퇴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국민과 기업에게서 세금을 걷는 국세청이 좋은 소리를 듣기란 이러나저러나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무조사에 있어 국세청이 보여온 태도는 일관성 측면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세청의 오락가락 행보는 설득력 있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정부와 정치권 눈치를 보며, 혹은 세입여건에 따라 들쭉날쭉 세무조사를 벌여온 탓이다.
지난 이명박정부에선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에 맞춰 세무조사를 대폭 줄이겠다고 공언해 놓고 박근혜정부가 들어서자 지하경제 양성화를 내세워 세무조사를 강화키로 한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에서 경제활성화로 국정운영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시점에 대기업 세무조사 축소 방침을 밝힌 것도 마찬가지다.
노무현정부 이후 태광실업을 상대로 벌인 세무조사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명박정부의 수혜기업으로 꼽히는 CJ와 롯데에 대한 최근의 세무조사에도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입여건이 좋을 땐 세무조사 건수와 추징액을 낮추지만 여건이 나쁠 땐 그 반대라는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의 지적은 박근혜정부의 국세청이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서 세무조사에 열을 올리게 됐다는 점에도 유효하다.
설령 외압이 있었다 해도 국세청이 지향하는 ‘국민이 신뢰하는 공정한 세정’ 구현을 위해서라면 세무조사의 원칙을 세우고 일관되게 따라야 맞다. 세무조사는 정치적 숙적을 치거나 눈엣가시 기업을 혼쭐내는 검도 아니고, 모자란 만큼 세수를 내놓는 요술방망이도 아니다.
국세청은 23일 국회로부터 세무조사 기준이 불공정·불투명하다는 지적과 함께 개선책을 만들어오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이참에 세무조사 대상 선정 기준을 명확히 세워 국세청이 논란의 불씨를 없애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