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임영록 회장의 인사실험- 김덕헌 금융부장

입력 2013-07-22 13:16 수정 2013-08-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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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청에게 새벽을 알리는 일을 맡긴다면 늙은 닭만도 못하고, (海東靑 使之司晨 則曾老鷄之不若矣)

한혈구에게 쥐 잡는 일이나 시킨다면 늙은 고양이만도 못하다. (汗血駒 使之捕鼠 則曾老猫之不若矣)

토정 이지함 선생이 57세 때 포천 현감이 되어 어려움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방책을 임금께 상소한 만언소(萬言疏)의 내용이다.

여기서 해동청은 고려에서 바다를 건너왔다 하여 중국에서 붙인 우리나라의 매를 말하고, 한혈구는 천리마의 일종이다.

이 문장을 다시 의역하면‘천하가 알아주는 좋은 매에게 닭이 하는 일을 맡기거나, 천하가 알아주는 좋은 말에게 고양이가 하는 일을 시킨다면 일이 잘될 리가 없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토정은 사람을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쓰는 것이 결국 백성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임영록 KB금융 회장이 취임 후 처음 단행한 인사를 놓고 말들이 많다. 지주사 임원 인사에서 정치권, 언론계, 해커출신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발탁됐다. KB금융은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인사라고 설명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다.

KB금융 자회사 사장 인사는 예상을 깨는 파격이었다. 지난 2개월여 동안 거론조차 되지 않던 이건호 부행장이 막판 다크호스로 급부상해 행장에 선임됐다.

이 행장이 10여명의 후보 중 심층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게 KB금융의 설명이다. 그러나 정찬우 금융위 부위원장이 밀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관치금융 논란이 불거졌다.

관치금융 논란을 겪고 회장에 오른 임 회장 입장에선 상당히 부담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임 회장은 그동안 ‘내부출신 중용’ 입장을 밝혀 왔지만, KB투자증권 사장에 외부출신인 정회동 사장을 선임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KB자산운용에 ‘은행맨’ 이희권 사장을 선임했다. 또 부행장급 자리였지만 KB생명 사장에 김진홍 본부장을 선임했다.

임 회장의 파격 인사에 국민은행 노조는 내부출신 선임 약속을 어겼으며 외압에 의한 관치금융을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임 회장이 10명 중 7명의 사장을 교체하는 등 ‘어윤대 지우기’를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옛 국민· 주택은행 간 나눠먹기식 인사 관행을 깬 소신 인사라는 긍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임 회장도 ‘외압이 있었다.’라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철저히 능력 위주의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리스크관리 전문가인 이건호 행장을 선임한 것도 은행 수익이 악화되고 부실채권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장 적임자라는 게 임 회장의 설명이다.

임 회장은 이 행장을 일찌감치 낙점해 두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 회장은 지난달 중순 3년 동안 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누가 일을 잘할 사람인지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며 인사에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관치금융 논란을 빚은 KB금융 경영진 인사는 끝났다. 능력 검증을 통해 소신 인사를 했다는 임 회장의 인사 실험은 1년 뒤면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KB금융은 지난 7개월여 동안 CEO 리스크로 신사업이 중단되고 성장동력은 약화됐다. 금융권의 공통 과제인 성장성 정체, 수익성과 건전성 악화도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특히 금융권은 우리금융 민영화로 인한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KB금융은 우리금융 자회사 인수 여부에 따라 국내 최대 금융그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에 있다.

임 회장에 대한 금융권의 평가는 신중하고 합리적이며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전략가’라는 평가와 함께 자기 색깔이 부족해 리더십이 약하다 시각도 있다.

임 회장의 이번 인사가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해 성공적인 인사 결과를 도출해 낼지, 아니면 실패한 인사 실험으로 막을 내릴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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