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조세피난, 회피… ‘도피’가 맞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

입력 2013-06-1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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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스타파의 명단 공개로 역외(offshore) 페이퍼컴퍼니 설립 행위를 어떻게 지칭할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그동안에는 영어의 ‘tax haven’을 그대로 옮긴 ‘조세피난처’라는 말이 일상화돼 있었다. 하지만 ‘조세피난처’는 현실을 호도하는 표현인 게 사실이다. 이 같은 표현은 역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법인이나 개인이 ‘부당한 과세’라는 재난을 피하는 정당한 행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그 정반대에 가까운데 말이다. 즉, 국가의 정당한 과세 행위에 대해 매우 공격적으로 납세의무를 면탈하려는 시도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쓰고 있는 조세 회피라는 말도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세 회피는 영어의 ‘tax avoidance’에 해당하는 말로 합법적인 틀 안에서 세금을 줄이거나 안 내려는 행위를 주로 일컫는다. 불법행위인 탈세(tax evasion)와는 분명히 다른 의미다. 하지만 역외 금융거래는 합법적인 틀 안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온갖 탈세 및 규제 위반 등 불법이 횡행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에 놓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나는 현재로서는 ‘조세 도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행위 주체가 적극적으로 정부의 과세 행위를 피해서 도망가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글로벌 대기업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이전가격(transfer pricing. 세율이 높은 곳으로 비용을 몰고 수익은 세율이 낮거나 없는 곳에 몰아 세금 부담을 최소화하는 행위)조차도 과세를 적극적으로 피하려 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조세도피’라는 말이 포괄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조세도피의 많은 부분은 역외 탈세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조세도피처를 통한 역외 탈세가 갈수록 횡행하고 있고 규모도 최소 한국 GDP의 몇 배씩 될 정도로 커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도 심각하다. 영국 조세정의네트워크에 따르면 한국이 개발도상국 가운데 러시아, 중국 등에 이어 해외 재산도표 규모에서 3위로 추정될 정도다. 그렇다고 현재까지 뉴스타파가 공개한 사례와 내용만으로는 역외 탈세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다만 이들 법인이나 관계자들이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항변하고, 이를 근거로 일부 언론이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물타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세계적으로 조세도피를 실행하는 법인과 수퍼리치들은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탈불법을 포함한 모든 조세 최적화 수단을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내용적으로는 분명히 불법이거나 불법에 준하는 상황이어도 자신들이 가진 재력을 바탕으로 권력과 언론, 사법시스템을 매수해 처벌을 피해나간다. 역외에 돈을 잔뜩 쌓아놓고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세금을 왕창 낮춰주면 재산을 들고 들어갈게’라며 정부와 협상도 벌인다. 이렇게 해 해외에 도피돼 있던 자금에 대한 세율을 대폭 깎아주는 조세특례조치가 미국에서 여러 차례 이뤄졌지만 투자 증가 등의 효과는 거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세금을 적게 내는 만큼 일반 가계와 서민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반면 그들을 위한 복지예산 등은 줄어드는 것이다. 조세 도피를 실행하는 기업과 개인들은 응당 내야 할 최소한의 세금도 내기 싫어할 뿐만 아니라 “세금은 가난한 사람들만 내는 것이다”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따라서 역외 조세도피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 자체가 법적인 판단 이전에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비난 받을 가능성이 높은 행위다. 이런 행위들을 “합법적 틀 안에서 이뤄졌다”는 문제 당사자들의 항변만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국내 민자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도 세금도 제대로 안 내는 맥쿼리인프라투융자가 대부분 합법적 틀 안에서 움직이지만 그 행위에 우리가 분노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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