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통상임금 기준의 안정성-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13-06-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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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임금에 상여금을 포함시키라는 대법원 판결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기업계는 추가로 발생하는 엄청난 비용 부담 때문에 죽겠다고 아우성이고, 노동계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인 만큼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버틴다. 정부는 노사정 협상을 통해서 타협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다. 모두가 당장 눈앞의 경제적 이익만을 두고 다투는 양상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3권분립의 원리, 법의 안정성이라는 커다란 원칙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에서 대법원은 대다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실질적으로 법으로 받아들여져 오던 통상임금의 정의를 뒤집고 새로운 기준을 내놨다. 실질적으로 입법부의 권한인 새로운 입법을 한 셈이다.

통상임금의 구체적 범위를 정할 권한은 입법부에 있다. 국회가 근로기준법의 조문에 통상임금의 구체적 범위를 정했더라면 이런 사태는 없었다. 아쉽게도 국회는 통상임금의 범위를 정하지 않았고 시행령에서마저 ‘정기적으로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급여’라는 애매한 정의만을 제공했다. 결국 그법을 따라야 하는 당사자들과 행정부 담당 부서 사이의 질의 응답 등의 과정을 통해서 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준이 굳어졌다.

사용자측, 노동자측 모두 그 기준에 근거 해서 임금협상을 했고 임금 항목들도 그 기준 위에서 만들어졌다. 비록 통상임금에 상여금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기준은 행정부의 실무부서에 의해서 구체화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법과 같은 지위를 가졌던 셈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이것을 뒤집고 다른 기준을 제시했다. 실질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한 셈이다. 이런 때는 사실 입법부가 나서서 입법권의 침해 사실을 적시하고 3권분립의 정신을 되살리자고 주장해야 할 텐데, 어디에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의원들이 나서서 사법부의 판결을 입법화하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행정부의 법해석에 큰 문제가 있을 때 사법부가 그것을 바로 잡는다면 월권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여금을 넣을지 말지에 대한 기준은 잘잘못을 가릴 만한 대상이 아니다. 좌측 통행이든 우측 통행이든 일관성만 유지한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듯이 상여금을 넣을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도 일관성만 유지한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 문제다. 조금만 길게 보면 통상임금의 기준을 어떻게 하든 임금 총액은 결국 노동생산성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의 범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임금의 구성일뿐이다. 즉 상여금을 포함하면 지금보다 기본급은 늘어나고 상여금은 줄어드는 임금체계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법원은 일관성을 무너뜨렸다. 이제 새로운 기준에 맞는 임금체계가 자리를 잡으려면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될 것이다. 좌측통행에서 우측통행으로 바꾸려면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과 같다. 실익도 없으면서 말이다.

게다가 임금채권의 시효가 3년이라는 사실이 이 판결의 파장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모든 기업들이 지난 3년간의 초과근로수당, 퇴직금 등을 소급해서 올려줘야 한다. 경영계가 38조원의 추가비용이 든다고 아우성을 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금액이 막대한데다가 예상치 못했던 비용이기 때문에 중소기업들 중에는 이 비용을 감당 못하고 문을 닫는 곳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

법의 생명은 안정성이다. 법이 수시로 바뀌면 사람들은 법을 믿을 수 없게 되고 세상은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헌법은 소급입법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현행 법에서 합법인 행동을 나중에 만들어질 법으로 불법화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법원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아들이던 기준을 뒤집었고, 그 결과 기존의 기준을 따랐던 기업들은 소급해서 엄청난 비용을 추가 부담하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사법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고 따르던 기준을 복원시켜 주기 바란다. 사법부는 법의 안정성을 지키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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