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은행 글로벌 경쟁력의 시작은 ‘자율’ - 김정호 연세대학교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13-05-01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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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방크, 바클레이 은행, 스미토모 미쓰이 은행… 세계적인 은행들의 이름들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은행들은 찾아볼 수가 없다. 제조업이나 건설업의 사정과는 딴판이다. 전자산업에서는 삼성전자, LG전자가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고, 자동차 산업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가 글로벌 5대 메이커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들 말고도 제조업과 건설업 기업 중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근접했거나 또는 이미 넘어선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은행들은 딴판이다. 한국 안에서는 크다고 으스댈지 모르지만, 나라만 벗어나면 존재감을 잃는 것이 우리나라 은행들의 적나라한 모습이다.

한국 사람이 제조업보다 특별히 금융에 선천적 자질이 떨어질 이유가 없음에도 은행업이 낙후한 것은 정부가 금융 발전의 가능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마다 나서서 은행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했다. 중소기업 지원, 부동산 경기 조절 등 정책 목적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은행돈을 동원했다. 그 반대급부도 있었다. 은행이 어려워지기라도 하면 정부가 나서서 살려주곤 했다.

은행의 경쟁력이란 좋은 자금을 끌어들여, 수익성 높은 곳에 투자해서 이익을 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금자의 소득이 발생하고, 자본은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어떤 돈을 누구에게 얼마나 대출해줄 것인지 정부가 다 정해줬고, 대출금을 못받게 되더라도 정부가 책임을 져주곤 했으니 경쟁력이 생길 리 없었다.

금융업의 낙후는 박정희 대통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이승만 대통령이 민영화해 놓은 시중 은행들을 국유화시켜 버린다. 그때부터 은행은 제조업, 건설업 등 주력산업 육성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은행들은 스스로 판단할 수도, 판단할 이유도 없는 존재로 변해간다.

외환위기 이후 IMF와 월스트리트 자본의 압력 덕분(?)에 우리나라 은행의 자율성이 제법 높아졌다. 상당 부분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풍토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상상하기 힘들었던 대출 경쟁까지 일어날 정도로 은행 사이의 경쟁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또 다시 은행을 제조업이나 중소기업을 위한 지원 도구쯤으로 여기는 주장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비올 때 우산을 뺏는 은행들을 손보자느니, 주택담보대출로 땅 짚고 헤엄치기 식의 장사를 한다느니…. 흔히 듣는 은행에 대한 비난들은 다 은행을 다른 산업들을 위한 종속적인 존재로 보는 발상의 표현이다.

은행을 종속적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는 박근혜 대통령도 그리 다르지 않다. 목돈 없는 전세제도, 생애 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지원제도 등 박 대통령의 중요한 공약들은 은행을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짜여진 것들이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임기도 끝나지 않은 은행장들이 자리를 떠나야 하는 작금의 상황도 은행이 일종의 정부기관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금융의 공공성 때문에 정부의 강한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금융이 중요하고 공공성이 강할수록 더욱 더 금융 기업들의 경쟁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은행에 자율성을 줄수록 은행의 경쟁력은 높아진다.

메가뱅크 정책, 은행간의 합병을 통해서 덩치를 키우는 정책으로는 은행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노조의 반대 때문에 중복된 지점을 없애지도 못하고, 중복되는 직원들을 해고도 못하면서 여러 은행을 합쳐 놓는다고 무슨 경쟁력이 생기겠나. 은행의 독점력만 높여서 경쟁력은 오히려 낮아진다. 메가뱅크라며 생긴 은행들의 실상이 어떤지 들여다 보면 쉽게 드러날 일이다.

이제 은행과 금융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전자산업, 자동차 산업과 마찬가지로 은행과 금융산업도 그 자체로 독립적인 산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각 은행들에게 자율권을 줘야 한다. 각각의 은행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할 때에 비로소 은행들의 경쟁력은 자라날 것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나라에서도 바클레이 은행, 도이체방크 같은 세계적 금융기업들이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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