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김영신 기상청 지진관리관 "지진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각"

입력 2012-10-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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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 기상청 지진관리관.
아내와 같이 산행 후 자투리 시간이 남겠다 싶어 아들에게 요즈음 볼만한 영화를 예약해 달라고 했다. 이런 주문을 받으면 아들은 으레 흥행이 잘되는 영화중에서 폭력영화나 공포영화를 제외하고 선택을 해준다. 그날 우리 부부가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보게 된 것은 그래서였다.

영화 초반,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장면이 나왔다. ‘로맨틱 코미디라더니 웬 지진이람?’ 의아해하면서도 나는 지진이 일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현상이라 영화의 배경이 일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인 줄 알았다. 그 후에도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면 영화 속에서는 어김없이 지진이 발생했다.

그런데 남자주인공의 직업이 내진설계 전문가라는 설정을 보고서 나는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평소 ‘지진’이라는 말만 들어도 귀가 번쩍 뜨이는 내가 지진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으니 말이다.

지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땅이 흔들리고 심하면 대재앙을 일으키듯이, 인간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부 사이가 흔들리고 심지어는 파국으로 갈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었다. 지진과 인간 삶을 이렇게 명쾌하게 비유하다니! 영화는 전설 속의 카사노바까지 등장시켜 부부 사이가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놓았지만 결국 파국에 이르지 않은 것은 남자 주인공이 지진으로부터 안전을 담보하는 내진설계 전문가였기 때문이리라. 내진설계를 제대로 하면 가정도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흔히 지진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이므로 보다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성적 주장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감성적 접근으로 지진에 대해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지구는 인간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다. 따라서 지구 내부 또한 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영화 속 아내가 끊임없는 잔소리를 하는 것이 스트레스 때문인 것처럼, 지진은 지구 내부의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작용 가운데 하나다. 현재 우리나라는 영화 속 아내처럼 내면의 스트레스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잔소리가 잦은 걸 나 몰라라 방치하면 파국에 이를 수도 있다. ‘삼국사기’, ‘고려사’, ‘승정원일기’ 등 옛 문헌에 기록된 15~18세기의 역사지진들이 그 가능성을 대변한다.

지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진설계를 잘하면 부부관계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음을 관객들에게 전파하고자 하는 작가와 감독의 혜안이 감탄스럽다.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관객이 감독의 의중에 공감한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내진설계를 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속마음까지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알기 위한 대화가 필요한 것처럼 지구에 대해서도 지진파를 세심히 관찰하고 특성을 이해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내면에 대한 연구는 항상 불확실한 면이 많아 어려움이 존재한다. 필자는 관련 업무에 종사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소홀했던 지진연구에 이제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해왔지만 공감대 형성에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작가를 초청하여 감성적 아이디어를 빌려 와야 할 모양이다. 많은 분들에게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였겠지만 내게는 지진의 인문학적 관점에 대한 교육영화로 보였다. 아무튼 지진업무에 종사하는 한사람으로서 원만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내진설계 연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대중에게 상기시켜준 이 영화의 허성혜 시나리오 작가와 민규동 감독 및 스패프 여러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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