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최근 들어 대기업들이 정문을 활짝 열고 임원들을 배웅하고 나섰다. ‘경기 침체 장기화’는 기업들에게 구조조정의 명분을 제공하며 때 아닌 임원 감축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대규모 임원 감축으로 임원들을 바들바들 떨게 한 삼성전자는 파격적인 인사로도 업계를 긴장시켰다. 최악의 경제위기 상황에 대비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5월 유럽 방문 이후 심각성을 체감해 1년 6개월 만에 삼성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수장을 김순택 부회장에서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으로 과감히 교체했다.
1000명이 넘는 대규모 임원들도 최근 3자리수로 줄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삼성전자 임원 수는 지난해 말 1033명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994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목숨을 부지한 임원들도 출근시간이 6시 30분으로 무려 한시간 이상 앞당겨져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이 같은 비상경영체제 돌입으로 내년 경영전략도 앞당겨 수립할 계획이다.
스마트폰 실적 개선에 실패한 LG전자의 임원 감축도 예견된 일이었다. 특히 지난해 3분기의 경우 319억원의 영업적자로 3분기 만에 적자전환하며 재무구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당시 차입금 비율도 2010년 말 기준 56%에서 68%까지 확대됐으며 151%에 머물던 부채비율도 173%로 상승했다. 이에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LG전자의 휴대폰 사업 수익성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렵다며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강등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LG전자는 2010년 말 290명이었던 임원수를 지난해 말에는 277명으로 대폭 줄였다. 삼성-LG전자 국내 양강구도는 옛말이다. 이제는 삼성-애플의 패권전쟁이 대세로 이 사이에 LG전자가 비집고 들어가기에는 버거운 현실이다.
LG디스플레이도 예외는 아니다. 단기간 내 임원수를 상당수 줄였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111명에서 95명으로 약 14%에 육박하는 임원수가 줄었다. 지난 2분기 기준으로 7분기 째 적자를 기록한 회사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처럼 매년 되풀이되는 인사시즌이 사라지고 불시에 퇴출되는 ‘묻지마 인사’ 사례가 늘고 있다. 심지어 당일 통보 받고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대기업 임원들의 세계는 상상 그 이상으로 냉정하고 가혹하다.
A기업 한 임원은 “대기업 임원이라 하면 상위 0.01%로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일지 모르지만 퇴직의 문턱에 선 이들은 그야말로 파리 목숨”이라며 “앞으로도 정기적이 아닌 상시적 인사가 지속된다면 1년 내내 맘을 졸이며 회사를 다니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하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