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의 사회학]"야한 옷차림이 성폭력 부른다고? 편견을 부수겠다!"

입력 2012-05-31 09:25 수정 2012-06-1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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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슬럿워크 운동’붐

“내가 무엇을 입고 있더라도 심지어 네 앞에서 벗고 있더라도, ‘아니오’(No)는 ‘아니오’(No)다”.

슬럿워크 운동의 표어 중 하나다. 지난해 1월 캐나다 토론토의 요크대학에서 안전포럼이 열렸다. 포럼에 참석한 한 경찰관은 이런 말을 했다. “성범죄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은 슬럿(Slut, 매춘부) 처럼 입지 말아야 한다”고. 이 말 한마디가 슬럿워크 운동을 일으켰다.

여성들은 마치 슬럿처럼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했다. 캐나다에서 시작된 시위는 미국·영국· 스웨덴 등 30여 국가로 퍼져나갔다.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료했다. ‘어떤 옷을 입었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성적 폭력과 희롱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범죄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의 (범죄) 유발 여부가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 문제이다’, 바로 그것이다.

▲슬럿워크(slutwalk) 운동가들이 거리시위를 하고 있다. 슬럿워크 운동가들은 여성들이 어떤 옷을 입든지 성적 폭력과 희롱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 운동은 캐나다에서 시작돼 세계 30개국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의 슬럿워크 = 이러한 슬럿워크 운동은 한국에서도 진행중이다. 한국판 슬럿워크 ‘잡년행동’(슬럿워크코리아) 회원들은 지난 1일 잡년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풀 메이크업, 원더브라, 킬 힐로 등장해 화장을 문질러 지우고, 구두를 벗어던진 채 마이클 잭슨의 ‘They don't care about us’에 맞춰 맨발로 춤을 췄다.

잡년행동의 한 회원은 “누구나 자유롭게 벗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닌 어떤 옷을 입더라도 성범죄를 당하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제1회 잡년행진’이라 명명된 행사는 지난해 7월 ‘고대생 성추행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다. 당시 고대 의대생 3명이 술에 취해 잠든 같은 학부 여학생을 노골적으로 집단추행한 사실이 알려졌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은채 피해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고, 그 반응에서 ‘여대생이 평소 성추행을 당할만한 행동을 하고 다녔다’는 당위성을 이끌어내고자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학교 측의 미온한 징계태도가 계속되자 졸업생을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이 SNS를 통해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피켓은 주로 가해자들의 출교를 주장하는 문구였지만, “다음 중에 성폭행해도 되는 여성은?”, “어떤 옷차림이든 성추행·폭력 허락은 아닙니다!”의 질문을 던지는 여성들이 등장해 사회에 퍼진 잘못된 인식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가해자들이 출교조치 된 후에도 피해자를 탓하는 시선이 많자 한 여성이 슬럿워크 운동을 제안했다. SNS를 통해 확산된 이 제안은 낯선 용어를 한글로 바꾸고 행사의 방향을 정하는 과정에서 100명이 참여한 시위로 진화하게 된다.

이들은 망사스타킹, 핫팬츠,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로 여성을 ‘성녀 또는 창녀’의 이분법적 사고로 평가하지 말 것을, 여성도 자유롭게 옷을 입고 당당하게 활동할 권리가 있음을 역설했다.

◇성범죄는 벗는 여성탓? = 슬럿워크 운동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은 이 시위의 명칭과 방법이 ‘국내외를 막론해 막장’이라고 지적하며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기 적절치 않다고 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슬럿워크 운동이 피해자에 대한 편견으로 성범죄를 합리화 하려 하는 사회 분위기를 환기시켰다는 주장은 귀기울여볼만 하다.

잡년행동의 한 회원은 “잡년행동은 야한 옷차림과 늦은 귀가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는 성범죄의 불합리한 정당화에 대한 반성폭력 운동”이라고 못박았다.

옷을 통한 자신의 표현, 신체의 자유, 그리고 일이나 상황에 따라 늦게 귀가한다고 해서 성범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것. 성범죄의 책임은 성범죄자의 욕망과 부도덕성에 있는 것이지 피해자에게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성의 옷차림이 성범죄와 연관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주문은 전문가들의 견해와 일정 부분 일치한다.

실제로 2010년 서울 서부지검 성폭력범죄대응센터에 따르면 성폭력범죄 월별 발생 빈도는 △1월 4건(3.6%)△2월 5건(4.5%)△3월 3건(2.7%)△4월 12건(10.9%)△5월 11건(10%)△6월 13건(11.8%)△7월 8건(7.2%) △8월 13건(11.8%)△9월 8건(7.2%)△10월 10건(9.0%)△11월 5건(4.5%)△12월 6건(5.4%)으로 늦은 봄과 여름에 발생비율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언뜻 여성의 노출과 성범죄와의 연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여름에는 술도 자주 마시게 되고 밤에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전체적으로 범죄가 증가하기 때문에 자연히 (성범죄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경기대 범죄심리학 이수정 교수는“야한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라며“정상적인 남성이라면 야한 옷차림의 여성을 보고 성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건 억제력에 달린 문제”라고 설명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다미 활동가는“여성의 옷차림과 범죄를 연관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성폭력 피해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려는 함의가 존재함을 의미한다”면서 “어떤 행동을 하거나 어떤 복장을 한다 해도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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