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무대의 막이 내린 후

입력 2012-05-0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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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인터파크INT 과장

유난히 감성적으로 변하게 되는 봄이다. 봄꽃들이 하늘하늘 손 내밀고 바람은 시원하고 공기는 달콤하다.

이렇게 특별한 날씨 한가운데 서 있다 보면, 평범하고 반복적인 내 삶에서 도망쳐 특별한 누군가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쉬는 일상 대신 화려하고 열정적인 삶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기분이 들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대학로로 향한다. 복잡한 강남을 벗어나 대학로 행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 마냥 설레고 들뜨게 된다. 비록 퇴근 시간의 만원버스지만 그 틈에서 잠시 후 만날 또 다른 세상을 그리다 보면 40여 분의 시간은 빨리도 지나가 버린다.

극장에 들어서서 가쁜 숨을 내쉬며 잠시 후 막이 오를 공연을 기다린다. 무대 위로 배우들이 들어서고 객석의 불이 꺼지는 순간, 마음은 온통 무대 위의 그들을 향해 달려간다. 무대 위의 그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내고, 무대 아래의 나는 그 삶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애를 쓴다. 그렇게 배우와 관객, 그리고 무대는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며 스며든다.

세익스피어가 그려낸 활자 속의 ‘햄릿’은 배우의 몸과 얼굴을 빌어 우유부단한 덴마크의 왕자로 되살아나고, 체호프가 만들어낸 ‘갈매기’ 속 니나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 무대 위를 서성인다. 희곡 속에, 소설 속에 갇혀 있던 인물들은 무대와 배우를 만나 생명력을 얻게 되고 그 에너지를 무대 아래의 관객들에게 전해 준다.

그렇게 울고 웃으며 2시간 여를 보내고 나오면 이미 극장 안에 들어설 때의 지치고 피곤한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열정과 활기를 띈 새로운 내가 나타난다. 그렇게 공연은 내게 응급처방전처럼 아프고 힘든 곳을 시원스레 긁어 주는 것이다.

나 또한 여러 작품들을 통해 내 인생의 힘든 고비를 잘 넘겨왔던 것 같다. 시험에 실패하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느꼈을 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보며 마음 편히 울 수 있었고, 서울 생활의 퍽퍽함에 지쳤을 때 ‘빨래’를 보며 위로 받을 수 있었다. ‘야끼니꾸 드래곤’ 속 가족들을 보며 내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고, ‘돈키호테’를 보며 잊고 지낸 꿈과 열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렇게 공연은 오래도록 내 삶에서 중요한 안내판의 역할을 해 주었다.

쳇바퀴 돌 듯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탈피해 특별한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면, 세상에 지치고 삶에 힘겨워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하다면, 뻔한 데이트나 반복된 만남 대신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면 한 편의 공연을 선택해 보는 건 어떨까? 특별한 공연이라는 건 없다. 대신, 어떤 공연을 본 후의 당신의 마음이 특별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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