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물가 책임실명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이 난처해졌다. 정부는 물가 안정에 강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지만 한은은 당장 대외여건을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은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준금리 외에 다른 정책수단은 마땅치 않다.
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물가 안정을 가장 강조했다. 농식품은 농림수산식품부, 공공요금은 국토해양부, 공산품은 지식경제부가 각각 실무진에게 품목을 할당, 관리키로 했다. 실무진이 담당하는 품목의 물가가 오를 경우 그 책임 소재도 명확히 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미시적인 대책은 통화정책이 뒤따르지 않을 경우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단지 몇 개의 품목의 팔을 비틀어 가격을 억제한다고 해서 시중의 통화량이 흡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정부 물가안정 의지에 보조를 맞춰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쉽지 않다. 유로존 국가채무문제가 아직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사록을 살펴보면 그동안 강조했던 금리정상화 의지도 한풀 꺾였다.
한 위원은 “그동안 글로벌 금융·경제 여건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기준금리 정상화를 다시 추진할 것이란 방침을 시장에 전달해 왔지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때문에 한은이 지급준비제도를 활용할 것이란 관측이 커지고 있다. 한은은 현재 지급준비제도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다. 그러나 지급준비율 인상이나 대상 채무 확대는 현저한 통화팽창기에 고려되는 수단이 만큼 실제 사용될 가능성은 낮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