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경제]⑩'우물 안 개구리' 금융산업

입력 2011-10-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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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M&A 통한 대형화로 '글로벌 IB' 거듭나야

# 지난해 6월 우리나라는 터키와 원자력발전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원전수출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같은해 12월23일 터키가 일본에 우선협상권을 부여하면서 부풀었던 꿈은 날라갔다. 결정적인 원인은 한국 금융의 취약한 경쟁력이었다. 4기의 원전을 짓는 데 건설비만 약 20조원이 드는 만큼 70% 가량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빌려야 하지만 국내 금융회사들은 이런 PF 거래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산업은 제조업 등에 비해 현저하게 낙후돼 있어 ‘경제의 혈맥’으로서 다른 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금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제경쟁력도 형편없는 수준이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에다 삼성전자 등 세계 1등 기업이 다수 포진한 우리나라에서 세계 50위권 내에 든 금융회사는 단 한곳도 없다는 현실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김태준 한국금융연구원장은 “국내 최대 은행의 규모는 세계 70위, 아시아권에서는 17위 정도 수준”이라며 “국내 최대 증권회사의 자본금은 대형 국제 투자은행(IB)의 2%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선 ‘빅3’, ‘빅4’ 등 금융회사에 대해 줄을 세우고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우물 안 개구리’였을 뿐이다.

실제로 금융산업이 국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비중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처졌다. 한국의 금융자산잔액을 명목 국민총소득(GNI)으로 나눈 비율인 금융연관비율은 8배로 선진국의 1980년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국제회 지수인 초국적지수(TNI)도 4.9로 UBS(76.5), 도이체방크(75.2), 씨티그룹(43.7)에 비해 매우 낮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국내 금융회사, 특히 은행들은 예대금리차와 수수료 인상에만 의존해 손쉽게 수익을 올리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증권사 역시 미국, 일본 등에 비해 위탁매매수수료 수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력 높여라= 따라서 수익구조 다변화를 위한 투자은행(IB) 업무 활성화와 대형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금융회사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금융기관의 영업형태를 개선하고 과감한 외국 진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점을 설립하거나 현지법인을 설립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공통된 목소리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성장을 위해 현지 금융회사에 대한 인수합병(M&A)를 택했다. 스페인 산탄데르은행은 영국의 4위 은행을 사들여 자신감을 얻은 뒤, 이후 언어가 같은 중남미 은행을 수십 개 인수하면서 세계 톱10 은행으로 발돋움했다. 스웨덴 한델스은행은 유럽권, 싱가포르 DBS는 동남아권 등 언어나 문화가 유사한 인근 지역은행들을 상대로 영토를 확장 중이다.

김 원장은 “국내 금융회사들이 포화 상태인 국내시장에서 경쟁을 확대해 서로 유사한 수익구조를 갖게 됐고 단기적인 성과평가 경향으로 장기적인 전략경영을 추진하지 못했다”면서 “활동 범위를 국내로 제한하지 말고 소매금융처럼 비교우위가 있고 문화적으로 동질성이 있는 지역부터 진출해 수익원을 다변화하고 국제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 톱클레스의 금융회사로 거듭나기 위해선 자신만의 창조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로열뱅크오브스코트랜드(RBS)는 금융산업에서 경쟁력있는 M&A를 위해 자동차산업에서 활용하는 M&A기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변형시켰다. 경쟁기업들이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전략개발 능력과 실행 역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RBS는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간 합병 시에는 지점망을 통폐합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RBS는 운영 및 정보기술(I)망을 통합하는 메뉴책처링 부서를 설립해 예상을 초월하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규제도 개선돼야= 문제는 국내외 금융당국의 규제다. 우리나라 자본시장법에서는 M&A를 위해 공개매수할 때 해외 어느 나라 금융사를 대상으로 하든 동일한 규정이 적용된다.

예를 들어 국내 A은행이 태국 B은행을 공개매수할 때 어떤 가격에 언제 공개매수를 하겠다고 발표해야 하고, 발표한 다음 중간에 상황이 달라져도 조건을 바꾸기 힘들다. 반면 미국이나 영국은 해외 기업을 인수할 때 현지법만 따르면 되도록 규정돼 있다.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을 만드는 이 같은 규정을 정비해서 해외시장 공략을 손쉽게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서근우 금융연구원 박사는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들은 불과 2~3년만 지나도 이익을 내라고 다그치는 예가 많다”며 “해외에 새로운 지점을 내면 조급해하지 말고 10년, 20년 길게 내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진출하고자 하는 현지 금융당국의 규제도 극복할 과제다. 예컨대 국내 은행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재는 외국자본이 인도네시아 현지 은행 지분을 99%까지 소유할 수 있지만 이를 49%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외국자본에 매각하지 않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가 외국자본의 진입을 직접적으로 규제한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시아 등 주요국가의 감독당국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감독 네트워크를 구성, 해외 M&A가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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