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강국]실력보다 ‘三緣’...이공계 기피 경쟁력 좀먹어

입력 2011-01-05 12:11 수정 2011-01-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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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공무원 응시자 수는 대략 40만명 수준. 이에 반해 공무원 채용규모는 1만7000명을 넘지 않는다. 38만명이 공무원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채 공시족으로 떠돌고 있는 셈이다. 노량진 수험가에서는 공무원을 열망하는 수험생들의 뜨거운 학습열기를 느낄 수 있다. 사진은 국가공무원 9급 채용시험 대비반을 꽉 채운 강의장의 모습.

혈연, 지연, 학연 등 이른바 ‘3연(三緣)’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용되는 영원불변의 진리로 통한다.

고질적 병폐라고 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요람이라 칭하는 미국에서 조차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시카고 사단이 정부 고위직을 장악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情)의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사회의 연고주의는 이와 사뭇 다른 양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말은 실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어떤 분야에서든 실력과 재능 하나 만으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혈연은 기본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단적인 예다. 지연과 학연 등을 동반하지 않으면 제 아무리 실력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라도 해도 성공하기 힘든 곳. 그곳이 한국이다.

◇ 우린 ‘영웅’을 꿈꾼다 = 지난해말 뮤지컬 음악감독 박칼린의 리더십이 화제가 됐다. 소위 당나라 군대와 같은 오합지졸 아마추어 합창단을 불과 2개월 만에 전국합창대회에서 장려상에 올려놓은 그녀의 리더십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방송은 끝났지만 박칼린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그녀의 인기는 곧 신드롬이 됐다. 방송 광고 모델로 기용될 정도다.

박칼린이라는 이 이국적인 여인을 통해 우리 사회가 무엇에 그토록 목말라 하고 있는지, 어떠한 인재를 원하고 있는 지 새삼 짐작할 수 있다.

만일 그녀가 한국인이었다면, 과연 우리사회의 연고주의에서 벗어나 소신 것 합창단원 개개인을 선별하고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 할 수 있었을까.

지난해 하반기 무려 134만명이 오디션에 참가해 화제가 됐던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슈퍼스타 K’. 혹독한 선발 과정을 거친 최후 11인이 매주 1~2명씩 탈락하는 서바이벌 방식의 이 프로그램에 전 국민이 열광했다.

그러나 시청자가 직접 투표해 생존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 특성상 수준 높은 기량으로 심사위원 투표에선 높은 점수를 얻고도 시청자 투표에서 밀려 고배를 마시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 시청자 투표 역시 편협한 지역주의가 지배하는 우리 정치권 선거 풍토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삼연 숭실대 교수는 “우리 국민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면서도 연대를 따질 때는 고향을 찾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때문에 실력보다 지연이 우선되는 등 편협한 지역주의가 끊임없이 재연되고 있다”고 말한다.

◇‘끼리끼리 문화’에 공정사회는 없다= 지난해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혜채용 사건은 정치권의 신데렐라로 표현됐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낙마보다 사회적 파급력이 더 컸다. 취업난, 청년실업, 부모의 능력 등 ‘청탁문화’에 민감한 한국 사회의 뇌관을 건드렸던 탓이다.

국민적 비난을 의식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란 국정과제를 제기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전국 1300여명의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청소년들의 부패인식도 조사에서 청소년 76.8%가 ‘우리 사회가 부패하다’고 보았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학생들에게까지 확산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방증하듯 지난해 한국의 투명성지수(CPI)는 세계 178개국 중 39위에 그쳤다.

투명성의 저하는 결국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그런데 우리사회의 낮은 투명성의 이면에는 3연에 의한 연고주의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대표적인 취업 청탁줄로 통한다고 입을 모은다.

예컨대 건설관련 공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국토해양위원회 소속 의원실로 ‘우리 아들이 원서를 냈으니 그 회사에 얘기 잘해 달라’는 민원이 쇄도한다는 것이다. 몇몇 의원은 취업 관련 민원을 전담하는 보좌관을 따로 둘 정도라고 한다.

우수한 인재와 품질 경쟁력을 평가한다는 포장 이면에는 청탁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취업전문업체 스카우트가 최근 기업 인사담당자 630명을 조사한 결과 47.3%가 청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중 73.2%는 ‘그 청탁에 따라 채용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인사 청탁에서 취업 청탁으로 이름만 달리했을 뿐 연줄에 의한, 연줄을 위한 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MS합동법률사무소의 김민석 변호사는 “청탁 문화는 다름 아닌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박힌 패거리 문화, 즉 인맥을 동원한 연줄에서 비롯된다”면서 “늦은 밤까지 불야성을 이루는 식당가에는 향우회, 동창회, 전우회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특정집단의 ‘끼리끼리’ 모임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김 변호사는 “우리 국민들이 이처럼 연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사회적 격변과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전통적 가치관을 대신할 새로운 사회 통합의 논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내 자식 만은 ‘전문직’이다=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열성적인 교육 투자국으로 꼽히는 우리나라는 사회 요소요소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세계인이 인정하는 경제대국을 이뤄냈다.

하지만 우리의 우수한 인재들이 특정분야에만 몰리는 요즘, ‘인재 편중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공계 기피 현상은 국가 기술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최대 현안이 된 지 오래다.

국내 공학, 산업계 인재들을 배출해 온 서울대 공대 대학원 박사과정이 3년째 대규모 미달 사태를 맞았다. 올해 서울대 대학원 전기모집에서 공대는 모집단위 14곳 중 6곳이 정원이 미달됐다. 이같은 미달사태는 박사과정 지원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으며, 직장과 사회에서 대우가 좋은 금융 및 법조계로 전공을 바꾸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아버지세대는 IMF로 실직하고 아들세대는 금융위기로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사회현상이 안정된 전문직 만을 선호하는 사회적 병리현상을 만들었다. 특히 조기 실직의 아픔을 경험한 기성세대들이 자녀들에게 법조, 의료계 등 전문직을 권하고 있다.

정부도 이같은 불씨에 기름을 붓듯 법학전문대학원과 의료전문대학원제도를 통해 우수 인재 대부분을 법조계와 의료계의 예비인력으로 만들고 있다. 다른 분야를 생각하지 않고 그 분야만 보더라도 순기능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른바 ‘사(士자) 직업의 평균 소득이 다른 직종보다 월등히 높고 일반 월급쟁이들을 경악케 하는 고소득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상당 수 있지만, 전문직 공급과잉 문제가 서서히 부각되고 있는 것.

모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각 방면에 고르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결정하는 일”이라며 “최첨단 IT, 국제금융, 글로벌 경영 그리고 사회의 기반을 다지는 기초학문 등에 우수한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장래는 어두울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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