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더 나은 당신을 꿈꾼 적이 있나요?

입력 2024-10-2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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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원립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명예교수

<‘서브스턴스’, 코랄리 파르자 감독, 2024년>

젊어지는 건 모든 사람이 가져봤을 꿈이다. 그래서 영화를 꿈의 공장이라고 하듯이,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가 많다. 주인공이 어떤 특수한 과정을 거쳐 젊고 아름다운 모습을 갖게 되는, 혹은 더 이상 늙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나 물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대가는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자신은 늙지 않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늙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외로워진다.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2015)이 한 예다.

대가의 또 다른 형태는, 젊어지긴 했지만 일종의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다. 여러 번 극화된 고전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에서는 주인공의 영혼이 타락한다. 코미디 영화 ‘죽어야 사는 여자’(1992)에서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몸 유지보수를 잘해야 하는데, 주인공들은 그러지 못해 신체가 급격히 노화한다. 영생하므로 목이 떨어져 나가도 안 죽지만 ‘수리’ 안 하면 더 늙는다.

영화 ‘서브스턴스’도 부작용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엘리자베스 스파클(데미 무어)은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였고 나이 든 지금은 TV 에어로빅 프로그램의 강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늙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이후 ‘당신의 더 나은 버전’을 제공해 준다는 약물, 즉 서브스턴스를 접하게 되고 그걸 시도한다. 약을 투입하자 마치 세포가 분열하듯 엘리자베스의 몸에서 분신이 생겨난다. 그 분신은 젊고 완벽한 몸매를 가졌다. 문제는 일주일씩 번갈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분신이 자신에게 붙인 이름)는 미모로 상승 가도를 달린다. 그러면서 욕심이 생겨 지켜야 할 일주일을 넘긴다. 그 결과로 엘리자베스는 급격히 노화한다.

줄거리에서 보듯 ‘죽어야 산다’와 비슷한 점이 있다. 그러나 그 영화 혹은 다른 유사한 주제의 영화들과 중요한 차이가 있다. ‘서브스턴스’에서는 젊은 버전과 이전 버전이 동일인이 아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그 약물 업체가 “당신들은 한 사람입니다”라고 강조한다(상대를 배려하라는 뜻일 테다). 그러나 둘은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듯하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상대의 일주일 행적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짐작하는 것 같다. 이렇게 기억의 연속성이 없다면 동일인이라고 하기 매우 어렵다.

노화가 심해진 엘리자베스는 실험을 종료할지 망설인다.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더 이상 피해는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망설이던 엘리자베스는 결국 수를 살려준다. 왜 그랬을까? 그녀는 지난 일주일 동안 수로 살면서 즐거웠던 기억도 없고, 일주일 후 즐거운 경험을 기대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이 순간은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녀의 갈등에 관객이 공감하면 영화에 깊이감을 줄 수 있었다. 그러나 막연한, 추상적인 ‘동일인’으로는 그런 공감이 어려워 보인다.

사실, 따지면 실험 직후부터 엘리자베스는 그걸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 일주일 동안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다른 여자가 자기 집에 살고 있고(살았고), 자신은 원했던 ‘젊음’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다. 왜 계속해야 하나? 필자 같은 관객이 그런 의문을 가지지 않은 건 처음엔 당연히 기억과 의식이 이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의 기본 골격에 허점을 갖고 있다. 칸 영화제가 각본상을 주었지만 조금 성급한 판단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건 전혀 아니다. 칸 영화제에서도 그랬지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인기작 중의 하나였다. 화려한 색감, 재미있는 카메라 앵글, 빠른 편집, 신나는 댄스 음악 등 140분이라는 꽤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분신이 태어나는 장면도 너무 엽기적이라고 여길 사람이 있겠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데미 무어가 그녀의 연기 역사상 가장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했다는 평이 있다. 다만 마지막에, 피가 튀는 장면은 너무 길다는 느낌이 있다. 그 많은 피가 다 어디서 나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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