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다이어트약'으로 불리는 위고비가 국내에 상륙했습니다.
17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위고비는 15일 국내에 정식 출시됐는데요.
위고비는 펜 모양의 주사입니다. 주 1회, 1개월(4주)씩 투여하도록 개발된 비만 치료제인데요. 미국에서 2021년 출시된 후 3년 만에야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위고비의 이름이 완전히 낯설진 않습니다. 인플루언서부터 할리우드 스타, 대기업 총수까지 위고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인데요. 실제 체중 감량에서 높은 효과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에 이번 국내 상륙 소식에 '드디어'를 외친 이들도 적지 않았죠.
그러나 위고비를 '아무나' 맞을 순 없습니다. 처방 기준, 의사의 적절한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기 때문인데요. 이를 제쳐놓더라도 물량을 구하기조차 어렵다는 전언이 벌써 들려오고 있습니다.
위고비의 유통을 맡은 쥴릭파마코리아는 15일부터 본격적으로 위고비 물량의 주문 접수를 시작했습니다.
쥴릭파마의 위고비 출하가격은 1펜(4주분)당 37만2025원에 책정됐습니다. 주사제인 위고비는 0.25㎎, 0.5㎎, 1.0㎎, 1.7㎎, 2.4㎎ 5개 용량으로 구성됐으며, 5개 용량의 출하 가격은 같은 것으로 알려졌죠.
위고비는 1펜당 4회 쓸 수 있는데요. 일주일에 한 번 투여하는 위고비 특성상 한 펜으로 약 한 달(4주)을 쓰는 셈이죠.
일부 물량은 14일부터 2~3차 유통업체로 출하가 시작돼 16일부터 일부 병·의원·약국에 공급됐습니다. 이어 17일 병·의원·약국 공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요. 벌써 동네 병원과 약국에는 위고비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위고비는 임상시험에서 높은 효과성을 입증했습니다. 위고비는 68주 투약에서 약 15%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는데요. 이는 앞서 국내 출시된 노보노디스크의 또 다른 비만 치료제 삭센다가 56주간 임상에서 평균 7.5%의 감량 효과를 나타낸 것보다 뛰어난 수치입니다.
삭센다는 이미 한국에서도 비만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위고비와 마찬가지로 글루카곤 유사 펩티드-1(GLP-1) 계열 치료제입니다. GLP-1은 음식을 섭취했을 때 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당 조절에 중요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합니다. 즉 이 치료제를 맞으면 GLP-1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해 적게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욕을 억제한다는 겁니다.
위고비는 삭센다보다 편리해졌습니다. 삭센다는 매일 한 번씩 자가 주사해야 하지만, 위고비는 일주일에 1회만 주사하면 되죠. 성분은 각각 리라글루타이드, 세마글루타이드로 다릅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일찍이 위고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2022년 10월 한 트위터(현 X) 사용자가 머스크에게 "살이 빠져서 건강해 보인다. 비결이 뭐냐"고 묻자 머스크는 "단식, 그리고 위고비"라고 답해 화제가 됐습니다. 당시 머스크는 14kg가량을 감량한 것으로 알려졌죠.
유명 인플루언서 킴 카다시안은 메릴린 먼로의 드레스를 행사에서 입기 위해 3주 만에 살을 빼야 했는데요. 그 역시 위고비 처방을 받아 7kg 정도를 감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셀럽들이 애용한 위고비. 당연히 입소문도 대단했는데요. 위고비 흥행에 힘입어 지난해 노보노디스크가 세계 최대 명품 그룹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시가총액을 넘어서면서 유럽 시총 1위에 등극했죠.
위고비의 국내 초도 물량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이미 품귀 현상을 빚고 있는 만큼 공급이 충분하지 않을 텐데요. 실제 신규 거래 병·의원의 경우, 용량당 2펜씩만 주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위고비 주문이 시작된 날 '피켓팅'(피 튀기는 티켓팅)도 벌어졌습니다. 위고비 국내 유통을 담당하는 쥴릭파마코리아의 주문에 전국 곳곳의 병·의원과 약국이 뛰어든 건데요. 오전 한때 접속자가 몰리면서 주문 사이트 서버가 마비됐죠.
수요 대비 부족한 공급으로 위고비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을 가능성도 커졌습니다. 위고비는 비급여 의약품이라 병원 재량대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습니다. 병·의원·약국 공급가격은 1펜당 37만2025원인데, 환자가 실제 부담해야 하는 금액 제약사 출고가에 유통사 마진, 세금과 진료비가 합쳐지게 되죠.
이날 서울 강남 소재의 병·의원 10여 곳을 확인해 보니 벌써부터 품귀 현상이 나타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가격도 높은 편이었는데요. 가장 저렴한 곳이 1펜당 70만 원대, 가장 비싼 곳이 100만 원대였습니다. 처방전 미포함 가격입니다.
다수 의원에서는 '패키지 상품' 예약도 받고 있었습니다. 위고비 1펜에 진료비, 상담과 사후 관리, 수액 등을 포함한 한 달짜리 프로그램 등이었는데요. 할인 가격이 120만 원에 달했죠. 200만 원대에 달하는 프로그램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한 의원 관계자는 "위고비 사전 예약을 받고는 있지만, 물량 입고는 이달 말~다음 달 중순쯤 이뤄질 것"이라며 "사전 예약 건수와 문의가 많아 정확한 처방 기간은 안내가 어렵다"고 전했습니다.
다이어트는 현대인의 공통 과제와도 같습니다. 장시간 앉아 있는 생활에 익숙해졌고, 지방 함량이 높은 고칼로리의 불안정한 식습관도 영향을 줬죠. 여기에 과도한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니 비만이나 당뇨병, 우울증,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도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마른 몸'이 이상화되는 추세입니다. 10대 여성 사이 거식증은 일종의 '문화'로까지 번졌는데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프로(Pro, 찬성)'와 '거식증(Anorexia)'을 합친 '프로아나' 관련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anabuddy(프로아나를 함께하는 친구)를 구하고 #물단식(물과 소금만 먹으며 하는 단식), #먹토(먹고 토하기) 등 잘못된 식습관을 '인증'하면서 서로를 독려하고 자신의 몸을 몰아붙입니다.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심화한 상황에서 위고비가 상륙한 만큼 관심도 뜨겁습니다. 그러나 위고비는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엄밀히 말해선 여러 질환의 대사를 개선하기 위해 사용하는 치료제입니다. '한 2㎏ 빼고 싶다, 5㎏ 정도 빼볼까?' 하고 쉽게 맞을 수 없다는 건데요. 초기 체질량지수(BMI)가 30kg/㎡ 이상 또는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한 가지 이상의 체중 관련 동반 질환이 있으면서 초기 BMI가 27∼30kg/㎡인 환자만 처방이 가능합니다.
부작용에서 자유로운 치료제도 아닙니다. 메스꺼움, 구토, 또 드물게는 담석 또는 췌장염을 일으킬 수 있는데요. 한 번 쓰다가 중단하면 다시 살이 찌는 요요 현상도 감안해야 하죠.
그런데도 제약업계는 위고비에 큰 관심이 쏠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비만 치료제는 꾸준히 인기를 끌었는데,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거치면서 수요가 급증했습니다. 의약품 시장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 규모는 1757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죠. 2018년 국내에 출시된 삭센다는 품귀를 빚으며 2019년 매출 426억 원에서 지난해 668억 원으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큐시미아(펜터민·토피라메이트)도 팬데믹 이후 더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2019년 발매된 큐시미아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355억 원으로, 2021년 262억 원에서 2년 만에 35.4% 매출이 증가했습니다.
SNS를 중심으로 횡행한 오남용 문제는 그늘입니다. 이른바 '나비약'으로 불리는 식욕억제제 펜타민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뒤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인데요.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해 오·남용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어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청소년 사이 이 약물이 유행하면서 펜타민을 병원에서 처방받은 뒤 복용하지 않고 SNS를 통해 판매하거나 구입하는 행위가 벌어진 겁니다.
오남용 가능성이 있고 온라인 불법판매, 처방 꼼수 등 문제도 이미 불거졌던 만큼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위고비를 예의주시하고 있는데요. 한국의약품안전관리원과 위고비 사용에 따른 부작용·이상사례를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안전성 조치를 추진하기 위한 신속 모니터링 대응반을 구성해 운영할 예정입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도 협의해 위고비의 개별 의료기관별 공급량과 증감 추이를 확인·분석한 후, 다빈도 처방 의료기관 등을 중심으로 과대광고 여부 등 현장점검을 실시합니다.
'넥스트 위고비'에도 귀추가 주목됩니다. 업계에서는 비만 치료제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국내 제약사들도 비만 치료제 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유한양행은 국내 바이오 벤처기업 인벤티지랩과 비만·당뇨 치료 목적의 장기 지속형 주사제를 공동 개발하고 있고, 동아에스티, 대원제약 등은 피부에 붙이는 패치 형태의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입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위고비 같은 약물은 비만 치료를 위한 보조적 수단일 뿐이라는 겁니다. 막연히 손쉬운 다이어트, 미용 목적으로 오남용하는 건 금물인데요. 아무리 효과가 좋고 부작용이 덜하다고 하더라도, '만병통치약'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