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아동 인권 보고서 ③ 팔레스타인] 영안실 트라우마에 냉장고도 못 여는 아이들

입력 2024-08-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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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4-08-27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유니세프 팔레스타인 대변인 인터뷰
전쟁 직후 사지 절단 어린이 1000명 이상
보호자 없거나 분리된 아동 1만9000명 추산
가자지구 인도적 지원 화물 급감 추세
재정 붕괴 위기에 아동 피해 악화 불가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지난달 6일(현지시간) 한 어린이가 쓰레기 더미 옆을 걷고 있다. 가자지구(팔레스타인)/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칸 유니스에서 지난달 6일(현지시간) 한 어린이가 쓰레기 더미 옆을 걷고 있다. 가자지구(팔레스타인)/AFP연합뉴스

아홉 살짜리 아이가 있는데, 집안 냉장고에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한대요. 이 친구 전쟁 초반에 자기 사촌을 영안실에서 봤거든요. 시신들 있던 영안실이 냉장고처럼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더는 집에서 냉장고를 열지 못하고 밤에는 부엌 근처에도 못 간다고 하더라고요.

유니세프 팔레스타인의 조너선 크릭스 대변인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녀가 겪는 트라우마를 걱정하던 한 어머니의 사연을 꺼냈다. 그는 “가자지구 어린이와 가족이 10개월간 공포에 떨었지만, 상황은 전반적으로 계속 악화하고 있다”며 “여성과 어린이의 고통이 계속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쟁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말 기준 팔레스타인에서 사지 중 하나 이상이 절단된 어린이는 10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로는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집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크릭스 대변인이 소개한 전쟁이 아이들에게 가져온 폭력과 학대 사례를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네 살 실라는 하룻밤 새 부모와 세 자매, 할아버지를 잃었고 자신의 다리마저 잘라내야 했다. 일곱 살 와히드는 전투기 소리만 들려오면 표정이 변한다. 와히드는 유니세프와 면담하던 중에도 굉음이 들리면 겁에 질려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나마 품에 안길 어머니라도 있어 다른 아이들보다는 사정이 낫다.

크릭스 대변인은 “가자지구에서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와 분리된 아동이 약 1만9000명인 것으로 추정한다”며 “아이들 각각이 상실과 슬픔이 섞인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라고 한탄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에 따르면 작년 10월 전쟁 개전 후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숨진 어린이는 1만4000명을 넘는다. 부상자도 수천 명. 또 가자지구 인구 10명 중 9명꼴인 190만 명이 전쟁 후 주거지를 떠나 이주했는데, 그중 절반이 어린이라고 한다. 많은 아동이 여러 번 이주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집과 부모, 친척 다수를 잃었다.

가자지구가 아닌 이스라엘에 수감 중인 아이들도 상황은 좋지 않다. 볼케르 튀르크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작년 10월 7일 이후 엄청난 수의 남성과 여성, 어린이들이 기소나 재판 없이 비참한 환경에 구금됐고, 이들에 대한 학대, 고문, 법 위반 행위 관련 보고가 있었다”며 “구금된 어린이 중 어떤 경우엔 (분리되지 않고) 성인과 함께 구금돼 있다”고 비판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가자지구(팔레스타인)/로이터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어린이가 1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의 한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가자지구(팔레스타인)/로이터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가자지구에선 최근 백신 유래 소아마비 바이러스 2형(cVDPV2)이 검출되면서 비상이 걸렸다. 백신 유래 소아마비는 면역력을 만들기 위해 독성을 약화시킨 바이러스가 오히려 병을 퍼뜨리는 것으로 지역사회의 취약한 환경에 따른 집단면역 약화가 그 원인이다. 유니세프는 이달 말과 내달 가자지구 전역에서 10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밖에도 유니세프는 수만 명의 어린이와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에게 영양 보충제를 제공하고 1만7000명의 어린이에게 12개의 임시 학습 공간을 제공했다. 또 깨끗한 식수 제공과 화장실 설치, 하수 펌프장 복구 등 팔레스타인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노력도 외부 지원 없이는 탄력을 받기가 쉽지 않다. 지난달 유니세프가 발간한 최신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경 폐쇄와 치안 악화, 가자지구 내부에서 벌어진 법질서 파괴 등으로 인해 가자지구에 유입되는 인도적 지원 화물은 4월과 비교했을 때 56%나 감소했다.

크릭스 대변인은 “가자지구 어린이들에게 교육과 인프라, 위생, 면역 시스템, 정신 건강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며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즉각적인 휴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아가 “나중에, 전쟁이 멈추고 가자지구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지면 많은 분야에서 자금과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지금은 우선 즉각적인 휴전을 지지해야 할 때”라고 재차 강조했다.

붕괴 직전인 팔레스타인 국가 경제로 인한 피해도 아동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팔레스타인 정부의 수입과 지출 격차는 6억8200만 달러(약 9064억 원)에 달한다. 현재로서 정부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은 대외 원조를 확대하거나 공무원 급여를 추가로 체납하는 것뿐이라는 게 WB 측의 설명이다.

또 지난해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이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50만 개의 일자리가 팔레스타인에서 사라졌다. 전체 빈곤율은 32.8%로 집계됐다. 서안지구는 12% 수준이지만, 가자지구는 64%에 육박했다. WB는 “팔레스타인 재정 상황이 3개월 사이 극적으로 악화해 재정 붕괴 위험이 상당이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조너선 크릭스 유니세프 팔레스타인 대변인. 출처 유니세프
▲조너선 크릭스 유니세프 팔레스타인 대변인. 출처 유니세프

아동학대에 관한 보도가 매년 쏟아지고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주로 가정이나 교육시설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국한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선을 넓히면 내전과 쿠데타, 국가 간 전쟁으로 인해 학대를 당하는 전 세계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은 부모를 잃거나 팔다리를 절단하거나 길가에 방치되는 등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지만, 우리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체감하지 못한다.

한국은 세계 곳곳의 이러한 문제로부터 동떨어진 곳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지정학적 갈등이 국가와 대륙을 가리지 않고 확산하는 상황에서 더는 그저 남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게 됐다. 아울러 한국도 규제 사각지대 속에서 가정 폭력으로 고통에 빠진 어린이들이 많다.

이에 본지는 한 주간 전 세계 아동이 겪는 학대와 피해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군사 쿠데타로 얼룩진 미얀마와 여기에 빈곤, 기후변화까지 맞물린 아프리카,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가자지구 전쟁을 겪는 팔레스타인에 거주 중인 현지인들의 목소리를 통해 아동학대의 실태와 해결 방법을 살펴본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동 학대와 가정 폭력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인 아동 학대 의심사례 신고자 보호가 유명무실하게 된 이유를 짚어보고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본다.

순서

① 미얀마: 쿠데타 이후 3년 반…길 위로 내몰린 아이들
② 아프리카: 어린이 미래 울리는 학습 빈곤…폭염·빈곤·쿠데타에 심해지는 교육 격차
③ 팔레스타인: 영안실 트라우마에 냉장고도 못 여는 아이들
④ 우크라이나: 전쟁 속 아이들 목소리를 담는 사람들
⑤ 한국: 갈 길 먼 아동 인권…사회는 ‘선진국’, 가정은 ‘후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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