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입력 2024-08-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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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정일환 부장
▲정치경제부 정일환 부장

보건의료 주무부처 장관 출신이자 윤석열 정부 탄생을 이끈 거물급 인사가 ‘응급실 뺑뺑이’를 도는 일이 벌어졌다. ‘좌파’ 소리를 들어가며 국민건강보험을 탄생시킨 주역이며, 지난 대통령 선거 때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맡았던 김종인 전 위원장은 며칠 전 새벽 집에서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구급차에 실린 그는 22곳의 병원을 헤매고 다닌 끝에 겨우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우선 김 전 위원장의 쾌유를 빔과 동시에 그에게 존경과 경의를 표한다. 전화 한 통이면 자신을 치료해줄 병상을 ‘만드는’ 일 쯤은 어렵지 않았을텐데도 그는 차례를 기다렸다.

‘쇼’ 아니냐며 정치적 망상의 나래를 펴는 이들도 있겠지만, 80대 중반인데다 이렇다할 활동도 없는 김 전 위원장이 목숨 건 정치 쇼를 할 이유가 무엇일지는 쉽게 짐작되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김종인 위원장도 뺑뺑이를 돌 정도면 심각한데....’

이제 와서 정부가 추진 중인 의료개혁의 당위성이나 방향성을 논할 생각은 없다. 의료개혁이 왜 필요한지는 의사들이 연쇄 자폭 서커스로 집중력을 높여준 덕에 많은 사람이 이해했고,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오기도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소통의 방식이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당국 어느 누구도 의료개혁 과정에서 어떤 진통이 수반되고 무슨 불편을 감내해야하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인성의 밑바닥까지 드러낸 의사들의 막말과 별로 안 아픈데 종합병원이나 응급실을 가면 의료비 폭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정부의 엄포 정도다. 설마 이렇게까지 아무런 준비 없이 "좋아! 진행시켜"를 외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파 정부와 함께 일한 공직자들에게는 전통적으로 ‘욕 먹어도 해야 할 일을 해왔다’는 자부심이 있다. 당장은 인기 없고 알아주는 이 드물어도 자신들이 묵묵히 국가를 떠받치며 여기까지 왔다는 긍지다. 그런데 이번 정부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공직자를 만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신 '대체 이게 뭐냐' 항의하기 조차 미안한 한숨만 가득하다.

의료대란으로 변하는건 아닌지 애매해져버린 의료개혁이 한창인 와중에 연금개혁 방안이 발표된다고 한다. 노동개혁, 교육개혁, 의료개혁에 이어 현 정부가 약속한 ‘4대 개혁’의 마지막 퍼즐에 해당한다. 앞선 세 가지 개혁을 추진하던 방식과 비슷하게 진행된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다른 개혁들은 ‘카르텔’로 지목된 ‘적’이 분명했다. 강성노조, 사교육, 의대정원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특정한 파괴 목표다. 폭탄이 떨어지고 총알이 날아다녀도 그들을 향한 공격이었고, 다치고 깨지는 민간인 사상자는 일부였다.

과연 연금개혁도 그럴까.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 자식이 없어 교육문제와 무관한 사람, 애초에 대형병원이나 응급실 대신 병·의원급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노후가 다가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는 메가톤급 사회문제다.

물론 연금쪽에도 분명 카르텔은 있다. 전 국민의 노후를 볼모 삼아 뒷주머니를 불리려는 ‘반국가세력’의 그림자도 어른댄다. 다만 과연 이번 정부가 그들로부터 5000만 명의 인질을 구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믿음이 서질 않는다.

연금개혁은 미룰 수 없는 일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지금 꼭 해야겠다면, 그 여정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이며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미리 알려주길 간곡히 바란다. 잘 모르겠다면, 아니 혹은 잘 알지만 잘 설명할 자신이 없다면 그냥 손 떼고 미뤄줬으면 한다.

TV 생중계용 카메라 켜놓고 대통령이 혼자 떠드는 건 소통이 아니다. 몇 명 불러다 앉혀 놓고 뻔히 보이는 질문 몇 개 주고받았다고 ‘국민과의 대화’라는 낯간지러운 이름을 붙이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아직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시기인 줄 아는 좌파 정부 조차도 소통만큼은 21세기 방식으로 했다. 1990년대식 공익예능 흉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창의적 소통의 한계치라면 아예 60~70년대로 돌아가길 권한다.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던, 나라가 가난해 힘든 일을 하게 해서 죄송하다던 우파의 미련함이 차라리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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