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위기를 향해 서서히 전진하는 대한민국

입력 2024-03-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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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ㆍ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선진국형 저성장…구조조정 급한데
규제발목에 포퓰리즘·좌파성향마저
왜곡된 구조적 문제 풀 혜안 절실해

대저 경제위기의 원인은 세 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흔한 위기의 원인은 기후, 질병, 전쟁과 같은 외생적 요인이다. 14세기 초 유럽에서는 오랜 홍수 때문에 기근이 만연하였다. 그 와중에 1337년부터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소위 백년전쟁이 발발하였다. 그 여파였던 것으로 막연히 추측하지만 1346년에는 흑사병까지 유행하여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사망한 도시가 비일비재하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유럽에서 스페인 독감이 많은 인명을 앗아간 것은 1918~1920년이다. 근래에는 기후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이에 더해 코로나 역병과 함께 여기저기서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경제가 잘 돌아갈 리가 없다.

경제위기의 두 번째 원인은 관리부실이다. 그 때문에 발생한 대표적인 위기가 2008년에 터진 세계 금융위기이다. 새 천년 들어 미국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끼기 시작하였다. 중국과 인도의 자금이 유입되면서 새 천년 처음 7년 동안 미국의 전국부동산가격지수가 80% 이상 급등하였다. 새로운 금융기법이 등장하고 그림자 은행(shadow banking)의 변칙 영업이 극성을 부렸다. 신용이 낮은 소비자에게 부동산담보대출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졌다. 소위 서브프라임모기지이다. 이와 같이 위험이 높은 자산을 다른 자산과 섞어서 재발행한 채권 곧 주택저당채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y)이 만연하였다. 이와 같이 자산 섞어 팔기가 계속되면서 높은 위험이 어디에 들어있는지가 불분명해졌다. 끝내는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버블이 터지고 대형 금융회사들이 파산하면서 위험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경제위기의 세 번째 원인은 장기와 단기의 혼동이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 우리의 1인당 소득은 2023년 화폐가치로 미화 598달러였으나 2023년에는 3만3128달러였다. 70년 사이에 물경 55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와 같이 긴 기간에 걸쳐 경제가 장족의 발전을 이루는 경우에도 시대마다 경제의 발전단계와 유형이 다르다. 우리의 경우 1950년대 저성장에서 벗어나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25년 정도 1인당 실질소득이 연 10% 가까이 성장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는 지금의 잠재성장률 2% 정도로 약 8%포인트 하락하였다. 매년 약 0.4% 포인트씩 하락·수렴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많은 기업과 관료들은 과거의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1990년대 전반 분별력을 상실한 기업과 정부는 투자율을 지나치게 높게 유지하였으며 그 결과 국제수지는 큰 적자를 보였다. 변동환율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개입으로 고정환율제도와 다를 것이 없을 정도로 환율의 변동을 억제하였다. 고평가된 환율을 고정시키면 달러로 표시한 소득은 증가하겠지만 투기적 공격이 일어나고 외환이 유출된다. 더군다나 당시 이미 기능을 다한 단기금융회사들은 일본과 같이 이자율이 싼 나라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려 이자율이 비싼 동남아에 장기로 빌려주는 위험천만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정부의 빚보증까지 받아 가면서. 1997년 12월 터진 우리의 위기에는 이러한 사건들이 파노라마처럼 얽혀 있다. 그러나 본질은 장기적인 구조 변화를 단기적인 투자와 총수요관리 그리고 외환정책으로 해결해 보고자 한 혼동에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선진국형 저성장 국가이다. 그에 걸맞은 구조조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장기의 문제를 단기의 처방으로 모면해 보고자 하는 묘한 곡예를 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눈에 훤히 보임에도 갑론을박 이외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국가부채는 빠르게 증가하고 가계부채 또한 그에 못지않게 증가 중이다. 산업은 몇몇 대기업에 기대 연명하는 비대칭 구조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서비스 산업의 저생산성 문제의 해결은 온갖 규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이 모든 왜곡된 구조적 문제의 끝은 위기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지구의 뜨거운 중심을 뚫고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 포퓰리즘이 만연하고 있는 와중에 중심을 잡아야 할 40~50대는 죄파 성향이라고 한다. 그들이 70대가 되면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의 후과를 뼈저리게 되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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