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5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야는 경로당 무상 점심 제공 등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공약을 앞다퉈 내놓으며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다만, 양당 모두 공약 실현을 위한 재원 마련 계획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체 유권자의 31%에 달하는 60세 이상 고령층을 공략하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공약개발본부는 12일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 공급을 늘리고, 노인 일자리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어르신 든든 내일 2호' 총선 공약을 공개했다.
여당은 실버타운의 승인·건축과 관련한 절차 및 규제를 재정비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실버타운 공급을 대폭 늘리고, 당초 2027년까지 총 5000호를 조성하기로 한 국토교통부의 취약 어르신 주거 복지 사업 '고령자복지주택'을 2만 호로 대폭 상향해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정부의 노인 일자리 사업도 2027년까지 전체 노인 인구의 10% 수준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6일 경로당과 노인복지관의 점심 제공을 주 7일까지 늘리고, 간병비를 급여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어르신 든든 내일' 1호 공약을 발표한 바 있다. 국민의힘 유의동 정책위의장은 고령층 관련 공약을 두 번에 걸쳐 발표한 것에 대해 "어르신들만을 위한 내용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현재와 미래에 연결된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연말부터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총선 공약을 내놓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총선 1호 공약으로 요양병원의 간병비를 급여화해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같은 해 12월에는 최소 주 5일 경로당 점심 제공을 공약하기도 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에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라는 수치스러운 통계도 실제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력과 경제 수준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만큼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고, 국가 의지에 관한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앞다퉈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공약을 내놓고 있는 데에는 올해 총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들의 영향력이 확대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투표권이 있는 만 18세 이상 인구(약 4425만 명) 중 60세 이상 인구는 약 1399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1.6%에 달한다. 이는 20대와 30대 인구를 합친 1274만 명(28.8%)보다도 많은 수치로, 총선에서 60대 이상 유권자가 2030세대를 역전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앞서 21대 총선이 치러졌던 2020년 기준 60대 이상 유권자 수는 1244만 명으로, 2030세대(1367만 명)보다 적었다.
문제는 양당 모두 공약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재원 마련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국회에서 의결된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현재 전국 6만8000여 개 경로당의 냉·난방비와 양곡비를 지원하는 예산은 총 800억 원이다. 현재 전체 경로당의 약 40%에서 주 2~3일가량 지급되는 경로당 점심을 양당의 공약에 따라 5~7일로 확대할 경우, 몇 배 이상의 예산 확대가 불가피하다. 아울러 냉·난방비와 양곡비 외에도 부식비와 부식 담당 인건비를 중앙 정부가 부담하도록 하는 민주당의 공약을 이행할 경우에도 추가 예산이 소요된다.
간병비 급여화 또한 연간 10조 원 이상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환자·보호자들이 간병비로 지출한 비용은 지난해 기준 10조 원으로, 2008년 3조6000억 원에서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아울러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 인상이 유지될 경우 건강보험 재정수지는 올해부터 1조4000억 원 적자로 전환되며, 2028년에는 25조 원 규모의 적립금이 모두 고갈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강보험 재원으로 간병비를 지원하려면 사실상 건강보험료 인상 등 재원 마련이 불가피한 것이다.
노인 일자리를 확대할 경우에도 재원 마련 계획이 필요하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조176억 원의 재정을 투입해 노인 일자리를 기존 88만3000개에서 103만 개로 늘릴 예정이다. 여기에 최근 여당이 내세운 공약에 따라 2027년까지 노인 일자리를 전체 노인 인구의 10% 수준인 약 120만 명까지 대폭 확대할 경우엔 추가 재정 소요가 예상된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총선 때 맞춤형 공약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공약했는데 실현도 하지 않고, 재원 조달 방안이나 정책 추진 의사도 없이 '선거용' 공약으로 반복해 내놓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시점에서 포퓰리즘과 진짜 민심이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정책을 구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