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도 조만간 채권자 60곳 소집
금융지주·윤세영 만남 성사 미지수
태영건설의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당초 약속했던 자구계획을 지키지 않은 태영건설의 행보에 금융당국마저 등을 돌린 모습이다. 금융당국은 태영그룹이 채권단의 동의를 얻을 만한 계획안을 이번 주말까지는 다시 내놔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했다. 하지만 태영 측이 끝까지 배짱을 부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13위 건설사인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이 좌초되면 사회적 손실 및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당국과 채권단도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게 되는 만큼 압박이 통할지는 미지수라는 평가다.
4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채권단 입장에서는 태영건설 자구계획이 아니라 오너 일가 자구계획”이라며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뼈를 깎는 자구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채권단 입장에서는 남의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워크아웃 절차가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자율적인 협약과 신뢰에 바탕을 둔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국이 답을 제시할 수 없다”면서도 “태영건설의 자구안이 매우 부족하다는 KDB산업은행의 입장과 같은 생각이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가정해 다양한 플랜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열린 채권단 설명회에서 태영건설의 알맹이 없는 자구계획안에 대해 강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협력사와 수분양자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당국 차원에서도 다각도로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채권단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데, 정작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태영건설)는 기본적인 신뢰조차도 저버렸다”며 “앞으로 워크아웃 추진 과정에서 한 번 잃은 신뢰가 큰 타격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금융당국 입장에서 마냥 손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국은 시장 안정화 조치를 충분하게 하고, 만일의 사태까지 대비해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만일 태영건설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선택하면 협력업체 공사대금 등 상거래채권까지 동결돼 대다수가 중소기업인 협력사들의 피해가 막심해질 수 있다.
채권단 역시 태영건설의 행보에 셈법이 복잡해졌다. 현재 태영건설 채권단은 총 609곳으로, 새마을금고나 신협, 단위 농협 등을 제외하면 300~400곳이 된다. 이 중 500억 원 이상의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있는 곳들을 계산하면 약 60곳가량이 된다. 산은은 11일 1차 채권자협의회에 앞서 조만간 주요 채권자 약 60곳을 첫 소집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태영건설의 턱없이 부족한 자구안에 강도 높게 압박하는 동시에 실질적인 자구안에 대한 논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의 피해가 우려되면서 금융지주사들도 긴장 상태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4대 금융지주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구체적인 일정 등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지난해 11월에도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이 SBS 관계자를 대동해 금융지주사와의 만남을 요청했고, 일부 지주사는 당시에도 어쩔 수 없이 만난 것으로 안다”며 “이번엔 윤세영 창업회장이 다음 주 초 면담을 요청했는데 지상파 방송사를 거느린 태영 측의 요구를 마냥 거절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 성사될지는 미지수”라고 귀띔했다.
금융지주사 입장에선 윤 창업회장과의 만남 자체가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단순히 윤 창업회장이 지주 회장을 설득한다고 해도 지주 회장이 실무자에게 봐주기식 지시를 내렸다간 자칫 배임에도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채권단 관계자는 “이 정도면 사실상 회생절차를 밟는 게 맞다”며 “워크아웃은 힘들어 보이고, 차라리 쪼개서 살릴 수 있는 곳은 살리고 하는 것이 채권단 입장에서도 유리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사실상 태영건설과 TY홀딩스상에 연결고리가 없는 입장에서 오너 일가는 도덕적 지탄을 받을지언정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 같다”며 “총선을 앞둔 상황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도 경색돼 있는데 ‘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워크아웃을) 안 받아주면 말고’식 마인드라면 상당히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