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놈, 건방진 놈” 정말 후지네요…막말의 정치학 [이슈크래커]

입력 2023-11-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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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한 야권 발언 수위가 높아지다 못해 ‘막말 릴레이’로 치닫고 있습니다.

한 장관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간의 설전을 중심으로 한 여야 인사들의 설전은 9일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날 송 전 대표는 한 장관을 향해 “건방진 놈”이라고 선제공격을 날렸는데요. 한 장관은 이틀 뒤 입장문을 내고 “시대착오적인 운동권의 도덕적 군림”이라고 맞받았습니다. 그러자 민형배·유정주 민주당 의원 등 야권 인사들이 연달아 ‘한동훈 때리기’에 나섰죠.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피로감은 높아지고만 있는데요. 사실 한 장관을 향한 목소리가 커지는 데엔 다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 ‘송영길의 선전포고’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어린놈, 건방진 놈, 후진 놈”…여야 간 ‘놈놈놈’ 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9월 이후 민주당은 한 장관을 향해 거친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비난 수위가 한층 더 세졌는데요. 이 같은 움직임에 불을 댕긴 건 송 전 대표입니다.

송 전 대표는 9일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한 장관을 향해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냐”며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 300명, 지보다 인생 선배일 뿐 아니라 한참 검찰 선배인 의원들을 조롱하고 능멸하고, 이런 놈을 그냥 놔둬야 되겠냐”고 말했습니다. 그는 “내가 물병이 있으면 물병을 머리에 던져 버리고 싶다”고 비난하기도 했죠.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서는 “저 때문에 지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불려가서 조사를 받으니까 너무 괴롭고 힘들고 죄송스럽다”며 “이게 무슨 중대한 범죄라고 6개월 동안 이 XX을 하고 있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XX놈들 아닌가”라고 말했는데요. 검찰을 향해선 김건희 여사 관련 수사나 하라며 “뭐 하는 짓이야, 이 XX놈들이”라고 다시 한번 욕설을 했죠.

이에 한 장관은 11일 입장을 내고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이 엄혹한 시절 보여준 용기를 깊이 존경하지만, 일부가 수십 년 전의 일만 갖고 평생 대대손손 전 국민을 상대로 전관예우를 받으려 한다”며 “어릴 때 운동권 했다는 것 하나로 시민들 위에 도덕적으로 군림하며 대한민국 정치를 수십 년간 후지게 만들어왔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설전엔 제3자도 끼어들었습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은 13일 페이스북에 한 장관의 발언을 인용해 “단언컨대 정치를 후지게 한 건 한동훈 같은 XX들”이라는 글을 올렸고, 유정주 의원도 같은 날 “그래, 그닥 어린넘(놈)도 아닌,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는, 한때는 살짝 신기했고 그다음엔 구토 났고 이젠 그저 #한(동훈)스러워’라는 글을 게재했죠.

송 전 대표는 14일엔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 또 한 장관을 향해 “이렇게 법무부 장관을 후지게 하는 장관은 처음”이라며 “후지게 정치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후지게 법무부 장관을 하고, 수사도 후지게 하고 있다”고 비난을 이어갔습니다. 같은 날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을 한 장관이 민주당의 잇따른 탄핵 추진을 비판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공유하면서 “금도를 지키지 못하면 금수”라며 “한동훈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으로 결국 윤석열 대통령을 물 것”이라고 썼죠.

막말이 야권에서만 나온 건 아닙니다.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한 장관을 ‘금수’라고 표현한 김 의원을 향해 “정치 쓰레기”라는 막말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그는 “만취가 의심되는 폭언을 쏟아낸 송영길, 위장 탈당으로 흑역사를 쓴 민형배 같은 586 운동권도 짐 싸서 집에 가라”고 일갈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2024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2024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야권서도 비판…“한동훈 체급만 키워주는 꼴”

이어지는 막말에 야권 내에서도 자제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비명(비이재명)계인 이원욱 민주당 의원은 15일 KBS 라디오 ‘특집 1라디오 오늘’에 출연해 “‘어린놈’, ‘후지다’ 이런 표현이 막 나오는데 정치인으로서는 해야 하지 말아야 할 역할 아닌가 싶다”며 “586(5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 486 정치인을 몰락시키고 있는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했습니다.

이 의원은 “개인의 문제를 떠나서 우리 586이라고 해도 좋고 486이라고 해도 좋은데, 그 정치인들 전체를 몰락시키고 있다”며 “최근에 보여주는 행보가 진짜 우리 586 대표 정치인으로서 저런 용어를, 저렇게 혐오 정치를 (해도 되나 싶다)”고 지적했죠.

류호정 정의당 의원도 이날 ‘김태현의 정치쇼’서 “꼰대라는 말을 붙이는 것도 부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냥 좀 인간이 덜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습니다.

친명계도 막말에는 거리를 뒀습니다. 친명 좌장 격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1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송 전 대표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이 굉장히 과도하게 이뤄지고 있다”면서도 “(송 대표는) 지금은 국회의원이 아니고 자연인이지만, 한 장관에 대해 어린놈, 이런 식으로 발언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죠.

정치인들이 강한 어조를 사용하는 건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우선 지지자들에겐 호감을 살 수 있는데요. 송 전 대표의 출판기념회 당시에도 객석에선 매번 웃음이 터졌습니다. 일각에선 발언이 시원하다며 ‘사이다’라는 평가도 나왔죠. 그러나 비호감도 역시 높아질 수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됩니다.

역효과도 문제입니다. 현재 한 장관은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한 장관의 배우자인 진은정 변호사가 연말 이웃 돕기 적십자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모습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한 장관의 총선 출마설엔 힘이 실렸습니다.

민주당은 한 장관을 견제하기 위해 막말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한 장관의 체급만 키워주는 꼴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때릴수록 단단해진다’는 건데요. 실로 윤석열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추미애·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등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반문(반문재인) 이미지를 구축했고,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여권이 ‘윤석열 때리기’에 힘을 쏟을 때마다 지지율은 올라갔죠.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클레어몬트 유세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해충(vermin)” “폭력배(thugs)”라고 부르는 등 막말을 퍼부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 보도했다. 사진은 트럼프가 연설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는 모습.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뉴햄프셔주 클레어몬트 유세에서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해충(vermin)” “폭력배(thugs)”라고 부르는 등 막말을 퍼부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3일 보도했다. 사진은 트럼프가 연설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오면서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는 모습. (AP/뉴시스)
역사 긴 ‘막말 정치’…발언 수위 남다른 트럼프

우리 정치사에서 막말의 역사는 깁니다. 일례로 김홍신 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은 1998년 6·4 지방선거를 앞둔 5월 27일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많이 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박아야 한다”고 해 파문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회의는 이 발언에 총공세를 벌였고, 그해 한나라당은 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을 모두 내주면서 사실상 패배했죠.

또 2004년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극단까지 결성, 연극 ‘환생경제’를 통해 극중 인물 ‘노가리’를 향해 원색적인 욕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빗댄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정치권에서도 막말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막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죠. 바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인데요. 그의 막말은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반대 세력을 ‘해충’에 비유하는 건 물론, 재임 시절 자신의 군 최고 참고였던 미군 합참의장을 향해서도 험악한 말을 쏟아냈죠. 트럼프 전 대통령은 9월 마크 밀리 전 합참의장이 지난 대선을 전후해 중국 측과 두 차례 통화한 점을 지적하며 “과거였다면 사형에 처해야 하는 반역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9월 중순 공화당이 주도하는 하원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가 거론됐을 때는 “이 불량배들은 나를 두 번이나 탄핵했고 4차례나 기소했다”고 했고, NBC 방송과 MSNBC에 대해선 보도 불만을 이유로 “국가를 위협하는 반역”이라면서 당선 시 이들 매체의 방송 전파 접근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막말을 두고 ‘독재자의 언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티머시 나프탈리 컬럼비아대 국제관계 부문 선임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WP)에 “그 언어는 독재자들이 공포를 심기 위해 쓰는 것”이라며 “반대 세력을 비인간화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안정적으로 참여할 그들의 헌법적 권리를 박탈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루스 벤-기아트 뉴욕대 교수도 “사람을 ‘해충’이라고 부르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사람들을 비인간화하고, 추종자들의 폭력 행사를 조장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꼬집었죠.

막말은 결국 표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공화당 전략가 짐 메릴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막말이 여성과 도시 주변지역 유권자 등 중도층의 심기를 건드릴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실로 지난해 한 여론조사에서는 정치 폭력이 증가한 데에 트럼프 전 대통령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답변이 72%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과격하고 거친 언행은 표심을 잡을 수 없을 뿐 아니라, 혐오를 키우는 데 일조한다는 겁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의 공개 발언은 신중해야 하지만, 최근 우리 국회에서는 생산적인 논의가 절제된 언어로 오가는 대신 ‘나이 갑질’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송 전 대표는 불과 2년 전 당 대표 출마 선언 당시 ‘꼰대 정치 극복’을 외친 인물입니다. 그러나 한 장관을 향해선 ‘어린놈’ 등 나이를 운운하며 위계를 따지려 드는 모양새라 의문을 자아내고 있는데요. 막말과 고성으로 강성 지지층에게 안길 수 있는 일시적인 쾌락보다는 소통과 타협을 추구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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