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나에게 안부를 묻다

입력 2023-04-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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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 원장

“가슴에서 불이 나요. 잠도 못 자고 죽을 거 같아요.”

환자의 긴 한숨 소리가 진료실을 채운다. 반백(半白)의 머리, 깊은 주름과 굽은 손가락에선 오랜 삶의 노고가 느껴졌다. 예순이 갓 넘은 아주머니가 병원을 찾은 건 갑자기 체중이 빠지는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검사에선 이상이 없었지만, 정상이란 설명을 듣던 그분은 차라리 병이라도 있어 고치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넸다. 이곳에 오기 전 대학병원까지 가서 검사도 했고, 결국 우울증과 화병으로 진단받고 약도 먹는다고 털어놓았다. 이미 정신과 치료를 받는 터에 딱히 해줄 말이 없던 나는 아주머니 앞에 작은 위로를 꺼내놓았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지금부터라도 너무 애쓰지 말고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해보세요.”

그때 갑자기 아주머니의 어깨가 들썩였다. 밖으로도 내뱉지 못하는 그분의 울음 속에서 더 깊은 아픔이 느껴졌다. 잠시 정적이 된 틈을 타, 난 힘들었던 그분의 시간이 눈물과 함께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티슈를 전했다. 애처로운 눈빛의 그분은 말을 이어갔다.

“휴~ 이젠 제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조차 잊었어요. 빈 껍데기만 남은 느낌이 들어요. 전 이제 어쩌면 좋죠?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맏며느리로서 시집살이, 무뚝뚝하고 고집 센 남편과의 결혼생활과 두 아이의 엄마로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 30년이었다. 숨을 죽이고, 입을 닫고 나를 지워가던 수십 년의 삶 속에 나란 존재는 잊힌 지 오래였다. 그리고 내가 나를 잊어갈 때쯤 찾아온 건 허무와 슬픔과 우울과 화병이란 원치 않은 병이었다. 다행히, 치료하는 동안 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렸고, 또 남편과 자녀들의 도움으로 지금은 병을 이겨내고 자신의 길을 찾아 힘껏 삶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앞만 보며 바삐 걸어온 우린 지금 어떨까? 직장과 가정에서 내 감정을 꼭꼭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성공과 책임만을 가득 실은 채 끝없이 돌아가는 수레바퀴 아래 깔려, 이미 내 안의 나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늦기 전에, 깊은 수렁에 빠져 어찌할 수조차 없을 때까지 기다리진 말자.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땐 슬퍼하자. 숨기지 말고, 감추지도 말고, 내 속에 있는 감정에 솔직해져 보자.

그리고 내 안에 웅크리고 있을 지치고 힘든 또 다른 나에게 물어볼 용기를 내보자.

“오늘 너는 정말, 괜찮니?”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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