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 중 상당수가 인공위성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 상공에서 작동 중인 인공위성과 사용하지 않는 인공위성을 합하면 총 1만여 개에 달한다.
인공위성은 인류 고도 문명의 결정체로 통하지만, 임무를 다하면 골칫거리로 전락한다. 오래되고 낡은 인공위성은 언젠가 지구에 떨어지는데 어디에 추락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ERBS(지구관측위성)’가 우리나라와 6000여 ㎞ 떨어진 알래스카에 추락했는데도 국내 전역에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난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나라에 미국 인공위성 잔해가 추락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정부의 공식 발표가 나온 9일 온 나라가 들썩였다. 언제 어디로 추락할지 장소를 알 수 없어 ‘야외 할동을 자제해달라’는 막연한 권고였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ERBS’가 한반도 인근에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전 7시 경계경보를 발령하고 우주위험대책본부를 소집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도 했다.
ERBS는 1984년 10월 5일 챌린저 우주왕복선에서 발사된 뒤 지구 열복사 분포를 관측하고 분석하는 임무를 수행한 무게 2450㎏의 위성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수행한 궤도 분석 결과에 따르면 ERBS은 낮 12시 20분에서 오후 1시 20분 사이에 추락할 가능성이 높고, 추락 예측 범위에 한반도가 포함돼 있었다.
과기정통부는 “추락 위성은 대기권 진입 시 마찰열에 의해 해체되고 연소돼 대부분 소실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일부 잔해물이 넓은 범위에 걸쳐 낙하할 수 있어 최종 추락 지역에서는 주의가 요구된다”라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한반도 통과 예측 시간 전 재난문자 등을 통해 국민에게 안내했다. 그런데 과기정통부조차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모호한 발표는 시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이 와중에 인천 송도 인근에서 정체 불분명의 물체가 하늘을 가르는 모습을 봤다는 목격담까지 등장하며 긴장감을 높였다.
시민들은 미 우주군이 “ERBS는 9일 오후 1시 4분께 알래스카 서남쪽 베링해 부근(위도 56.9도, 경도 193.8도)에 최종 추락했다”라고 발표하고서야 안도할 수 있었다.
인공위성은 크게 지구의 적도 상공 위에 떠 있는 정지궤도 위성과 정지궤도 이외의 궤도를 비행하는 이동위성이 있다. 정지궤도 위성은 상공 약 3만6000㎞ 위처럼 높은 곳에 있지만, 이동 위성은 대부분 정지궤도위성보다 낮은 궤도를 비행한다.
정지궤도 위성도 추락하는 위치를 예측하기도 어렵지만, 고장 이동 위성의 추락 지점을 미리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천문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지구 궤도에서 정상적으로 작동 중인 인공위성은 7178기이고, 고장이나 임무 종료로 방치된 위성은 2964기다. 전체 인공위성 중 29%가 추락 위험성이 있는 셈이다.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은 궤도를 유지할 만한 속도를 내지 못해 고도가 낮아지다 300㎞ 고도로 내려가면 수개월 내 지구로 추락한다. 이때 잔해가 떨어지는 예상 범위는 최대 2000×70㎞에 달한다.
추락하는 우주 물체가 대기 마찰로 불에 타거나 부서지면서 지상에 충돌할 때 속도는 시속 30~300㎞로 줄어든다. 1t급 물체는 대기권에 진입하고도 100㎏ 이상 잔해가 지상에 추락할 수 있다. 2450㎏인 이번 위성은 잔해가 10~40% 정도 떨어질 수 있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1978년 당시 소련의 정찰위성 코스모스 954호 잔해물이 캐나다로 떨어졌을 때 길이 600㎞에 이르는 구간에서 흩어진 파편들이 발견됐고, 일부는 방사능에 오염됐다.
NASA는 ERBS의 추락으로 지구상의 그 어떤 사람에게라도 피해가 돌아갈 확률은 대략 9400분의 1로 매우 낮을 거라고 밝혔다.
지구 상공에 떠다니는 파편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 위크에 따르면 NASA는 현재 소프트볼보다 큰 궤도 파편 약 2만3000개, 구슬 크기 이상의 파편 50만 개, 1㎜(0.4인치) 이상의 파편 약 1억 개가 지구 궤도를 돌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NASA와 유럽우주국(ESA) 등에 따르면 지구 궤도에 남아있는 우주 쓰레기의 무게는 9000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우리 정부도 ‘우주위험대비 기본계획’을 통해 우주물체의 추락과 충돌 등에 대비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천문연은 독자 개발한 인공위성 비행역학 기술을 적용한 ‘카시오페이아(KASI’s OPEIA) 시스템’ 등을 운영 중이다. 카시오페이아 시스템은 우주물체 관측 인프라로부터 생성된 정보를 분석해 우주물체의 궤도를 결정하고, 추락 및 충돌 위험 등을 예측해준다.
실제로 천문연은 인공위성 비행역학 시스템을 통해 2018년 중국 톈궁 1호의 추락 상황과 2021년과 2022년 중국 창정 로켓 잔해의 지구 추락 등 인공우주물체의 재진입 시 지구 추락 지점 및 시간을 정확히 예측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우주 쓰레기가 지구로 떨어지기 전 미리 붙잡아 지구로 안전하게 가지고 오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지난달 열린 제22회 국가우주위원회에서는 ‘포집위성 1호’의 개발을 추진하기로 했다. 포집위성은 이름 그대로 지구 궤도 상에 있는 우주쓰레기들을 포집해 지구로 가져온 뒤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27년 누리호 6차 발사를 통해 발사되는 차세대소형위성 3호가 포집위성 1호로서 수명이 다한 뒤 지구 상공 800㎞ 궤도를 돌고 있는 우리별 2호를 지구로 데려오는 ‘우리별 귀환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도 우주군(USSF)과 민간업체가 함께 진행하는 우주 쓰레기 청소·재활용 프로그램인 ‘오비탈 프라임’을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로봇 팔 등을 통해 작은 위성을 포획해나가는 방안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도 2021년 우주 쓰레기 청소 위성 ‘스젠 21호’를 발사해 고장난 위성을 포획해 ‘위성 묘지 궤도’로 던져버리는 데 성공했고, 일종의 우주 돛인 ‘드래그돛’을 우주발사체에 탑재해 임무 완료 이후 이른 시일 내 대기권에 재진입시키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이외에도 전 세계는 우주 시대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우리나라에서 제40차 국제우주쓰레기조정위원회 총회(IADC)를 개최하고 우주 쓰레기로 인한 지구 궤도 상 환경문제와 관련된 전 세계 우주청 및 우주개발기관들의 기술적·과학적 연구 활동을 협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