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노예제’ 오명 고용허가제…‘개선’ 한목소리

입력 2023-0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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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3-01-03 18: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이(웃)주(민) 노동자] 3-2. 전문가들 “‘단계적 노동허가제’ 도입”

비전문취업(E-9) 비자, 아시아권 16개국과 MOU 체결
사업장 변경·고용연장·재취업 사실상 사업주에 있어
임금체불·과노동·산업재해·성폭력 야기하는 요인 전락

▲지난해 12월 6일 포천시에 위치한 한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모습 (출처=정성욱 기자)
▲지난해 12월 6일 포천시에 위치한 한 이주노동자 기숙사의 모습 (출처=정성욱 기자)

올해로 시행 19년째를 맞은 고용허가제를 두고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동안 내국인이 기피하는 사업장에 안정적인 노동력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왔으나 과도한 제약이 이주노동자들의 임금체불, 과노동, 산업재해, 성폭력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서다. 사업주들도 체류 기간이 짧아 발생하는 공백과 경험을 쌓은 숙련노동자 고용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기 어려운 국내 사업장에 이주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정부는 아시아권 16개국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비전문취업(E-9) 비자의 형태로 국내 사업장 취업을 중개한다.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은 14일, 농·축산업과 어업은 7일간 구직 공고를 낸 후 내국인 고용에 실패하면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 고용연장, 재취업의 권한이 사실상 모두 사업주에게 주어지는 게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어도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으면 옮길 수 없는 것이 대표적이다. 고용허가제가 ‘헌대판 노예제’라는 오명을 받는 이유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2020년 양주 가죽공장 폭발사고 당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이주노동자는 동료의 죽음을 목격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다”며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지만 사업주는 폭언과 협박을 하며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16일 군산시 앞 바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탄 배가 김양식업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정성욱 기자)
▲지난해 12월 16일 군산시 앞 바다에서 이주노동자들이 탄 배가 김양식업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정성욱 기자)

또 고용허가제가 제조업 위주로 설계돼있다 보니 농업과 어업 이주노동자들의 휴식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근로환경이 방치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호철 성요셉노동자의집 사무국장은 “5인 미만 사업장들의 경우 사업자등록증이 없어도 농업기업체만 있어도 고용허가를 받을 수 있다”며 “농림, 수산산업은 근로시간, 휴게와 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제외되는 근로기준법 63조가 있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을 늘려도 최저임금으로 끝이다. 농어업은 야간수당, 휴일수당은 받는 제조업과 달리 제대로 쉰다는 개념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주와인권연구소에 따르면 2020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월 평균임금은 제조업 225만 원, 농업 175만 원, 어업 170만 원 순으로 나타났다. 주휴일의 경우 제조업 1.5일, 농업과 어업 0.8일, 주 노동시간 제조업은 52.7시간. 농업 58.9시간, 어업 67.5시간으로 집계됐다.

(출처=이주와인권연구소)
(출처=이주와인권연구소)

체류기간이 4년 10개월씩 최대 두 번(9년 8개월)으로 제한되다 보니 일손이 귀한 사업주들 사이에서는 기한이 짧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해 어촌에서 일하는 어민 A씨는 “이주노동자가 기한이 다되서 본국으로 돌아가면 분기별로 정해진 기간에 신청해서 새로 (인력을) 받는 데까지 3개월 걸린다”며 “한국사람들은 절대 일을 안하려고 하니 외국인이 더 들어오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E-9 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이주노동자가 최대 10년 이상 체류할 수 있는 ‘장기근속특례’를 도입키로 한 상태다. ‘중숙련인력’을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숙련요건을 갖춘 경우 E-9 비자를 ‘외국인 숙련기능 점수제 비자(E-7-4)’로 쉽게 전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다만 사업장 변경제도 등의 개선 없이 체류기간만 확대할 경우 사업주의 권한 강화로 이주노동자들의 근로환경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김달성 목사는 “사업장 변경 조항을 그대로 둔 상태에선 장기근속특례가 도입 되어도 고용주의 권한이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다”며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변경을 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사업장 변경이 원칙적으로 제한되는데 이를 최초 2년은 제한하더라도 그 이후엔 풀어주는 등 ‘단계적 노동허가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아울러 비자 이동 체계를 좀더 간편화·체계화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이기호 이주노동 연구활동가는 “복잡한 비자 이동 문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며 “단계적 노동허가제를 도입해 이주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으면 노동생산성이 높아져 기업의 부가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면 더 열심히 일해 한국에서 소비도 할 것이고 경제적 선순환과 문화적, 사회적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노동 연구활동가가 논문을 통해 제안한 ‘단계적 노동허가제’와 기존 고용허가제의 차이. (자료=경계(境界)의 이주정책: 고용허가제의 쟁점과 과제’ 논문(2015))
▲이주노동 연구활동가가 논문을 통해 제안한 ‘단계적 노동허가제’와 기존 고용허가제의 차이. (자료=경계(境界)의 이주정책: 고용허가제의 쟁점과 과제’ 논문(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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